입사지원 서류의 차별성
#1. 지원자 OOO, 저는 쓰레기통입니다.
#2. 광고를 사랑하는 지원자 OOO입니다.
당신이 광고 대행사의 면접관이라면 어떤 제목의 자기소개서를 읽고 싶을까?
개인적으로 나는 #1번의 제목에 호기심이 생길 것 같다. 과연 그렇게 말한 이유가 뭘지 찬찬히 읽어보고 싶다.
"저는 어린 시절부터 말을 잘 들어주는 친구였습니다. 친구들은 저에게 대부분 슬프고 걱정되고 고민이 되는 감정을 쏟아내곤 했습니다. ‘감정의 쓰레기통' 과한 표현 같지만 저는 친구들에게 그런 존재였습니다. 하지만 힘들 때 친구들이 찾는 게 저는 싫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당시엔 몰랐지만 그것이 저의 강점임을 알았습니다. 공감할 수 있는 능력, 그것이 저의 강점입니다. 공감을 주는 광고는 사람들의 마음을 끌어당깁니다. 저는 구누보다 소비자의....."
가상으로 써본 #1 에 대한 자기소개서의 일부다. 나는 #1의 제목과 위와 같은 자기소개서를 만나면 서슴없이 합격을 줄 것 같다.
펜타클의 인턴 모집 기간이다. 며칠 째 틈틈이 인턴 지원자들의 서류를 본다. 2백 건 가까운 지원자들의 이력서, 자기소개서, 공통질문, 포트폴리오를 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꼼꼼하게 서류들을 확인하면서 안타까움이 몰려오는 건 어쩔 수 없다.
모두들 광고가 좋다고 광고대행사의 문을 두드리는 사람들 일지 언데 자신을 광고하는 일은 서툴다.
광고대행사에 들어가고 싶은 지원자들은 펜타클이 아니어도 분명 여러 광고대행사에 문을 두드리고 결국 광고를 업으로 삼을 것이다. 그런 지원자들은 회사에 들어가 수많은 광고를 만들 것이 확실하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인생에서 가장 잘 만들어야 할 중요한 광고는 무엇일까?
나는 그것이 입사를 준비하며 나를 광고하는 일이라 생각한다.
아마 지원자들의 대부분은 영상 광고를 보면서 광고의 꿈을 키웠고 또 그런 광고를 만들고 싶을 것이다.
광고의 핵심은 무언가를 파는 일이다.
무언가를 팔기 위해, 고객을 잘 설득하기 위해 우리는 광고라는 무기를 사용한다.
광고를 만들 때 중요한 것 중 하나는 광고를 보는 사람이다. 우리는 그들을 타겟이라 부른다.
광고를 보는 타겟이 누구인지, 광고를 언제, 어떤 장소, 어떤 상황에서 보게 될 것인지는 매우 중요하다.
타겟의 상황 규정에 따라 해야 할 말이 달라지고 크리에이티브도 달라지기 때문이다.
광고가 크리에이티브해야 하는 이유는 수많은 광고 속에서 타겟의 시선을 끌기 위함이다.
광고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그래서 광고대행사에 지원하는 사람이라면 이 지점의 이해가 필요하다.
광고대행사에 처음 입사를 지원하는 인턴이나 신입 또는 경력이든 모두 마찬가지다.
광고는 무언가를 파는 일이며 입사를 지원하는 일은 나를 파는 일이다.
면접 전까지 이력서나 자기소개서, 포트폴리오는 나를 팔 수 있는 유일한 광고 매체다.
궁극적으로 나를 팔기 위한 입사지원서도 타겟을 정하고, 타겟의 상황을 이해해야 한다.
AE는 기획팀의 리더일 확률이, 제작부서라면 CD나 ECD 등이 입사지원 서류를 볼 것이다. 이 두 조직의 관점도 상당히 다르다. 아이디어 잘 내는 능력을 뽐내는 건 제작부서에는 좋으나 기획부서에선 가장 중요한능력이 아닐 수 있다.
그럼 나의 지원서류를 판단할 이들에게 나를 잘 광고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으리란 기대로 생각을 정리해보고자 한다.
첫 번 째 : 여기는 일반 기업이 아닌 광고 대행사다.
일반 기업에 넣는 형식의 서류를 그대로 넣는 건 마이너스다. 나 자신을 제품으로 규정한 광고 제안서를 만들어 보길 추천한다. 펜타클 인턴 서류에서 텍스트가 너무 많은 서류들은 보지도 않고 거르고 싶었다. 광고의 종류는 여러 가지지만 소비자가 가장 잘 보는 광고는 영상 광고다. 영상 광고에 구구절절 많은 말을 하지 않고 간결한 메시지와 유머,위트 혹은 반전의 크리에이티브를 넣는 이유가 무엇인지 잘 고민해 보면 좋겠다. 만약 누군가가 텍스트 폭탄이 아닌 영상 광고로 만든 자소서를 제출하면 높은 점수를 줄 것 같다. 하지만 그런 지원자는 한 번도 보지 못했다.
두 번 째 : 수백 명의 지원 서류를 보는 타겟의 상황을 이해해야 한다.
지원자는 담당자가 자신이 쓴 여러 서류를 꼼꼼하게 봐주리라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수 백 명의 서류를 디테일하게 보는 일은 쉽지 않다. 뿐만 아니라 회사에 들어오는 거의 90% 가까운 지원 서류들이 크게 다르지 않은 형식과 내용을 갖고 있다. 지루할 수밖에 없다. 비슷한 것들 속에서 다른 것이 등장하면 시선이 갈 수밖에 없다. 약속이나 한 듯 같은 형식으로 빼곡하게 들어찬 텍스트를 읽다가 누군가 그림을 그려 놓으면 더 보고 싶어 진다. 그러니 비슷비슷한 광고의 홍수 속에도 빛나는 광고처럼 차별성 있는 지원 서류를 만들면 좋겠다.
세 번째 : 왜 꼭 이 회사여야만 하는가의 답이 있으면 좋겠다. 어느 회사에 넣어도 되는 서류와 해당 회사에만 넣을 수 있는 서류는 차이가 있다. 이번 인턴의 지원서 중에는 펜타클에만 제출가능한, 커스터마이징 된 지원서가 많아서 놀랐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는 말이 있다. 아무래도 지원하는 회사에 대해 얼마나 애정을 갖고 있는가를 진심으로 보여줄 수 있다면 좋다. 많은 지원자들이 펜타클에 들어오고 싶은 이유를 나름 찾아서술했지만 대부분 대동소이했다. 그럼에도 포트폴리오에선 펜타클을 상품으로 규정하고 적지 않은 분량의펜타클 분석자료를 포트폴리오에 넣었던 지원자나 펜타클의 BI 다섯가지 색을 이용하여 정성껏 포트폴리오를 만든 지원자들이 기억에 남기도 했다.
신입들에게 실력의 변별력을 찾는 것은 쉽지 않다. 하지만 얼마의 열정을 갖고 있는지, 꼭 우리 회사에 들어오고 싶은 건지는 눈치챌 수 있다.
다섯 해째 인턴 서류를 보고 있다. 점점 더 봐야 할 서류가 많아지고 펜타클이 꼭 들어오고 싶은 회사가 되어가는 것이 고맙고 다행스럽다.
매 해마다 취업을 준비하는, 어쩌면 곧 같은 업을 하게 될 후배동료들의 고군분투가 느껴져 마음이 짠하다. 고생해 준비했는데 불합격 소식을 들을지 모를 후배들을 생각하면 또 마음이 무거워진다. 다음에 꼭 가고 싶은 회사에 지원할 때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광고를 만들어 보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