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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대영 Aug 06. 2024

광고에서의 네 것과 내 것

'선 넘네'

몇 년 전 둘리의 밈이 유행한 적 있다.


'Boundless'

내용적 의미는 다르지만 단어적 의미만을 보자면 회사에서 지향하는 가치 중 하나도 '경계 없음', '선을 넘자'와 같다.

도로의 경계를 나누는 차선에 점선과 실선이 있다. 이 중 점선은 때에 따라 경계를 넘나들어도 된다. 

우리의 일은 경계가 구분될 때가 필요하지만 때에 따라 경계를 넘나드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회사의 1층에는 가장 큰 회의실이 있다. 회의실 이름은 BI 색 중 하나를 사용해 Yollow라 불린다. 

펜타클의 BI를 이루는 색에는 그 색만의 의미가 있는데 Yellow는 Boundless의 의미를 갖고 있다.

회사의 가장 큰 회의실에 'Boundless'의 의미를 둔 것은 그만큼 이 가치가 중요하다는 생각에서 였다.


Boundless는 초기에 기획과 크리의 경계를 두지 말자는 의미로 많이 사용되었다.

5년 전만 해도 펜타클에는 크리에이티브 조직이 완벽하게 세팅되어 있지 못했다. 

PT를 준비하면 AE도 필수적으로 아이디어를 내야 했다. Boundless는 고육지책의 하나였다. 

지금 AE들은 아이디어를 많이 내지 않고 기획과 크리의 일에 대한 경계선은 좀 더 선명해졌다.

하지만 여전히 아이디어를 갖고 오는 기획자들이 있고 나는 이를 말리지 않는다. 

크리실 역시 아이디어를 갖고 오는 AE들이 자신들의 업무 영역을 침범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경계를 넘나들 일이 적어졌지만 기획과 크리의 Boundless는 서로의 일을 존중하고 서로의 고충에 대한 이해의 기반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크리에이티브 조직에서의 Boundless는 카피와 아트의 경계를 두지 말자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초기와는 다르게 크리에이티브실도 카피와 아트의 경계가 생기고 있으나 의식적으로 경계 없이 일하도록 유도한다.


의미는 하나지만 어디서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경계 없음'은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도가 지나치다는 의미의 선을 넘는다가 아니라 이익을 기반으로 서로의 영역을 구분 짓지 않아야 한다는 것, 서로를 이해하는 과정으로 적용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은 펜타클의 캠페인 부문을 책임지고 있지만, 회사에 입사했을 때 나의 첫 업무는 조직혁신이었다. 

펜타클을 좀 더 좋은 조직으로 만드는 일이 주 업무였다. 인사 업무를 해본 적 없던 나에게 조직 혁신은 낯설었다. 초기에는 조직 강화의 주된 아젠다를 복지에 두기도 했다. 시간이 흐르며 중요한 것은 핵심가치와 비전을 만드는 것이라 생각했고 그런 과정 속에서 조직의 몇 가지 지향점들을 만들었다. Boundless가 그중 하나다. 


Boundless를 지향하면 좋겠다고 생각한 것은 사실 대기업 근무 시절에 느낀 바를 실천하고 싶어서였다. 

나는 유독 조직 이기주의가 싫었다. 많은 부서가 자신에게 이익이 되지 않으면 협업을 하지 않았다. 어쩔 땐 같은 회사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맞나? 싶은 순간도 많았다. 내가 조직을 이끈다면 조직 이기주의만은 없애고 싶었다. 

캠페인 부문을 이끌면서 조직 이기주의의 출발점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원인은 성과였다.

회사는 성과를 측정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평가한다. 그리고 다시 평가를 통해 보수를 책정한다. 성과는 늘 상대적 평가를 기준으로 삼게 된다. 그것은 곧 경쟁을 의미한다. 경쟁에서 이기고 싶은 인간 본능을 자극하면 관리자는 큰 노력 없이 많은 사람들의 성과를 향상시킬 수 있다. 성과 향상이라는 측면에서 언뜻 긍정적으로 보이지만 사실상 그것이 개인과 조직의 이기주의를 만든다.

조직의 리더가 되면서 나는 모든 사람들이 평등한 과실을 나누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모두가 나처럼 평등하게 과실을 먹고 싶어하지 않았고 나눠주기 위한 과실을 만드는데 평등의 원칙은 방해가 될 수 있음도 알게되었다. 또한  '남들보다 더' 우월하고 싶다는 욕망은 본능에 가깝고 그것을 평등하게 만드는 것은 본능에 반하는 일임을 깨달았다.


다른 대행사가 들으면 깜짝 놀랄 일이겠지만 올해 들어 처음, AE 조직의 매출, 수익, 이익을 팀별로 공개했다. 우리가 얼마의 이익을 내야 하는지 팀장들 스스로 파악할 수 있게 하기 위함이었다. 팀별 수익률을 통해 서로를 경쟁하게 하는 도구로 사용하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아마도 타 팀의 수익을 자신의 팀과 비교하게 될 것이며 상대적 우월감이나 위협을 느낄지도 모른다. 

여전히 크리에이티브실의 각 팀에는 그들이 현재 내고 있는 매출, 수익 자료를 공유하거나 KPI를 부여하지 않았다. 중요한 PT는 가끔 다수의 팀이 함께 하기도 하며 팀 간에 서로 도울 일이 생겨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이지 않는 팀의 경계선이 자연스럽게 만들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나의 광고, 너의 광고, 우리 팀의 광고, 다른 팀의 광고.  

하물며 크리팀이 바빠 ECD를 겸임하는 내가 주도적으로 만들어 팔아온 광고를 '전무님의 광고'로 인식하는 것도 알게 되었다.

어쩌면 나의 것이기 때문에, 더 잘하고 싶은 마음은 본능에 가까운 영역일 것이다. 그래서 나의 것이 아닌 것에는 무관심하고 배척하려는 것도 당연할 수 있고 이해되는 바다. 이익을 기반으로 서로의 영역을 구분 짓지 않고 나의 일과 너의 일을 구분하지 않고 일하는 것은 요원한 일일 수도 있다. 

결국 이 지향점은 성과 측정을 통해 서로의 경쟁심을 자극하지 않게 하면서 동시에 자신들의 업무에 최선을 다할 수 있게 만들 수 있냐는 어려운 과제다. 


사실 회사의 동료들은 다른 어떤 조직보다 나와 너의 경계 없이 서로를 도와준다. 다른 기획팀의 비딩을 위해 아이디어를 내주는 AE들도 있고 문제가 안 풀릴 때 도움을 요청하면 시간을 쪼개 흔쾌히 다른 크리팀의 과제를 도와주기도 한다. 아직까지 그런 동료들을 두고 있어 다행이다. 


나는 여전히 꿈꾼다. 네 것과 내 것의 경계가 없는 조직. 그 경계를 없애거나 그럴 수 없더라도 희미하게 만들 수 있는 것은 온전히 리더가 고민해야 할 몫이다. 네 것과 내 것의 경계를 만들어 서로를 경쟁시키고 경쟁에 의해 성과를 끌어낼 방법은 너무 명확하고 잘 알겠는데 그 반대의 방법은 참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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