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3대 김밥과 견주어도 손색없을, 혀가 화들짝 놀라 갑자기 방언이 터질 아름다운 맛이라든가, 김밥헤븐판매실적 최고 지점의 김밥 아줌마와 손 빠르기를 경쟁할 만큼의 실력이라는 건 아니지만 분식업계 비 종사자인 셈 치고 누군가 날 뒷 줄에 세워 놓는다면 좀 속상하다."쟤 좀 오버 아냐" 할 법한 나의 김밥 마는 재주는 활동 구역에서도 익히 알려진 바, 동네 언니들이 한 번씩 돌아가며 김밥잔치를 열 때에 절대 빠져서는 안 될 품앗이 정예멤버로 활동 중이다.
그렇다면 쓰니애가 김밥 좀 마는 솜씨의 포인트란 무엇이길래 이토록 과신하는 것일까? 바로 '겁 없음'이다. 본인은 겁이 좀 없다. 모든 분야에서 그런 편은 아니지만 적어도 남들도 보통은 하는 거라면 내가 못할 이유가 없다는 좌우명을 지니고 산다. '겁이 없다'는 말을 다르게 표현하면 '무대뽀다'로 말할 수 있는데 이 또한 맞다.
취직과 함께 상경한 뽀시래기 간호사가 오프 날엔 서울 구경을 하든가 서울 남자를 만나든가 했어야지. 황금 같은 오프에 재래시장을 뒤져 오이, 고추, 무, 들통, 간장, 채반 따위들을 들쳐메고 와 5평 남짓 원룸에서 굳이 장아찌를 담그고 있어야 했을까. 자그마한 원룸엔 인덕션도 매우 귀여웠어서 요리를 본격적으로 할 만한 형편도 아니었는데 날만 맞았다 하면 병원 동기들 불러 밥 해먹이고, 교회 청년부 식구들 불러 모임을 하고, 외로운 타향살이 슬피 감상할 새 없이 5평 원룸은 시끌 복닥 했다.
원룸을 나와 교회 학사에서 살았던 시절도 있었다. 명절기간 근무는 미혼을 중심으로 근무표가 짜일 수밖에 없었는데, 나처럼 고향에 못 내려가고 있는 학사의 청년들이 짠하여 만두를 빚고 전을 부쳐 각 호실마다 날라다 억지로 안겨주며 맛의 평가는 거부한다 하였으니 무대뽀가 맞다. 이 겁 없는 아가씨가 결혼 후 무대뽀 아줌마의 참맛을 보여주게 되었으니. 그 참맛의 메뉴, 바로 김밥 되시겠다.
어릴 적 소풍날의 엄마는 사뭇 김밥공장 특공대 같았다. 한석봉 과거시험장에 문방사우 펼치듯 아랫목에 크게 한 상 차려서, 데치고 무치고 볶은 각종 재료들을 차례차례 얹어 말기를 반복하시다가 한 번씩 허리를 두드리며 "아이고야."를 부르신다. 어린 기억 속에도 손 많이 가고 잡일 많은 풍경 속의 음식인데이상하게 흥만 돋으면 강제적 망각이 되는 신비한 알고리즘. 결혼을 하고서도 툭하면 김밥 재료들을 사다가 일을 벌려 놓고 줄줄이 가득 말아서 신혼집에 사람 불러 같이 먹기도 하고, 도시락을 싸서 공원으로 나가 지인들과 도란도란 나눠먹는 것이 주말 일상이었다. 이런 것이 행복이다 여겼고많이 모일 수록 즐거웠다. 재료도 많고 준비도 복잡했지만 결국엔 한 밥 속에 어우러져 숭덩숭덩 잘라낸 김밥에는 너도 나도 모여 우리 한 데 말아져 보자는, 두루 즐겁게 지내고픈 무대뽀 아줌마의 겁 없는 친밀감이 들어있었다.
내 무대뽀 김밥엔 또 다른 의미가 있는데, 과정의 겁 없음이다. 일단 김밥 마는 발을 쓰지 않는다. 평평한 바닥만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동네 시스터즈들이 나를 정예멤버로 발탁한 이유 중 큰 하나이다. 결혼 10년 차를 훌쩍 넘겼지만 20년 차 가까운 언니들이 보기엔 한참 어린 동생이구만, 어랍쇼? 김밥 마는 폼이 예사롭지 않네. 얘 어디서 용역으로 부른 사람인가.과정에 큰 힘을 쏟지 않으니 시작도 과감하다. 재료는 집에 있는 것 아무것이든 먹을 수 있는 것이면 OK. 시래기나물도 여기선 초대받을 수 있나니. 별 반찬이 없네, 김밥이나 말까? 싶으면 이미 도마와 김 한 장 펼쳐 일은 시작된다. 이렇게 월평균 3~4회는 집김밥을 말고 있나 보다.
김을 한 장 꺼내서 반질반질한 면은 바닥으로 하고 거친 부분에 참기름 두른 고소한 밥 한 덩이를 올린다.
이제 내 손은 더 이상 손이 아니다, 밥덩이를 올리는 바로 그 순간 한 마리의 세발 낙지가 되어 다리를 유려하게 오므렸다 펼쳤다를 반복하면서 밥의 내핵을 갈라 신속하게 김 가장자리까지 펼쳐 보낸다.
재료는 예쁘고 가지런하게 한 개 한 개? 노노, 무심한 듯 툭 툭 던져야 제 맛. 시금치나 당근 같은 재료는 너무 많은 것 아닐까 싶을 정도로 가득 산을 쌓아 올린다.
김 앞쪽을 들어 올려 재료를 감싸고 양손에 균일한 힘을 분배시키며 꽉꽉 말아 싼다.
김발 없이 장갑만 낀 손으로 김밥과 교감하며 싸는 것이 주요 포인트, 진정 교감이 이루어졌다면 옆구리 터짐 사고는발생하지 않는다.
다 말아진 김밥에 참기름을 솔로 바르는 정갈한 마무리 따윈 필요 없다. 손끝에 참기름 쓱 묻혀서 앞뒤로 왔다 갔다 하면 끝.
무대뽀라 좀 투박하면 어때, 이것이 손 맛이다.
재료 준비하는 과정을 겁 없이 시작하여 무대뽀로 말아버리는 김밥 싸기는 호랑말코 같았던 코로나 시대의 일등공신이었다. 까짓 거 대충 계란 좀 부치고 단무지랑 우엉은 사면되지, 늘 대수롭지 않은 척 허세와 함께 시작은 쉽게. 결국 어묵도 졸이고 당근도 채 썰고 이왕 하는 거 참치도 넣으면 맛있겠고 하는 갖은 이유로부엌일은 점보김밥처럼 불어났지만... 어릴 적 엄마처럼 허리를 두드리며 "아, 그래도 김밥은 김밥이었지." 하며 탄식을 수차례 반복하지 않았던가. 그래도 된장찌개 김치찌개, 닭고기 소고기 돼지고기 한 바퀴를 돌고 난 뒤 다음 식단의 뾰족한 방법이 없을 땐 김밥만 한 효자가 없는 것이다.
10년 넘게 효자 김밥을 싸면서 한 가지 바뀐 점이 있다면 김밥 속이다. 신혼의 김밥엔 즐거움과 친밀감을 담았다면 이젠 거기에 다둥이 엄마의 사심도 끼워 넣는다.
성장기 어린이 셋을 건강히 키워내고 싶은 엄마의 바람, 녹황색 채소도 고루 먹이고 싶은 욕심, 몇 개 집어먹다 보면 평소 먹는 양보다 무조건 배불리 먹게 되는 마법, 세끼 정도는 반찬고민 없이 쉽게 가고자 하는 얕은수까지 김 한 장 속에 꽉꽉 말아 넣는다. '김밥아, 우리 가족의 입맛과 건강을 네가 도와주렴' 주문을 외우며 힘주어 꾹꾹 마지막 허리띠를 조여 붙인다. "또 김밥이야?"라는 외침이 들릴 때쯤엔 라면이나 떡볶이만 하나 곁들여 줘도 그 입이 쑥 들어가는, 실로 완벽한 음식이 아니던가. 반찬 걱정하다가 내 새끼들 삼시 세끼 안 굶기려 꺼낸 비장의 무기였는데, 겁 없는 김밥이 코로나 삼식이들도 살리고 나도 살렸다.역시 김밥이 해냈다.
아이들 학원비가 궁하여 생활비가 곤고한 날에 김밥아줌마 구인 글을 보면 시급이 얼마나 되는지 물어는보고 싶은 호기심으로 솔깃하다. 글 쓰니가 되겠다고 바쁜 척 하지 않았으면 분식집 유리문 안에서 머리수건 쓰고 오늘 아침에만 벌써 30줄은 싸고 있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