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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쓰니애 Jan 22. 2024

사르륵, 칼로리 휘감기는 맛

우유맛 과자 잡솨봐

여러 작가님들과 함께 글을 모으는 공동 매거진입니다 ※



 ESTJ의 삶에 포커스를 두고 문어발 글을 쓰는 중이다. 이제껏 TJ가 도드라지는 글들이 위주였다면 오늘은 S에 관한 썰을 좀 풀어봐야겠다.

 사물에 대한 인식의 방향성을 나타내는 S와 N. MBTI에 대한 이해가 어려운 분을 위해 간략히 한 번 훑고 넘어가겠다.

※인식기능 - 사람이나 사물을 인식하는 방식

                  감각 (Sensing) - 오감 및 경험에 의존. 현실주의적인 타입. 실제의 경험을 중시하고 지금에 초점을 맞추어 일처리한다. 숲보다 나무를 보려는 경향이 강하다.

                    직관 (iNtuition) - 직관 및 영감에 의존. 이상주의적인 타입. 아이디어를 중시하며 미래지향적이고 개연성과 의미에 초점을 맞추어 일처리한다. 비유적, 암시적으로 묘사한다. 나무보다 숲을 보려는 경향이 강하며 자신만의 세계가 뚜렷한 편이다.
                                                                         <출처:마이어스-브릭스 유형지표, 나무위키>

 MBTI에서 일반인들이 제일 해석하기 어렵고 가늠하기 어려운 구분이 바로 S와 N이다. 주로 상상력의 한계를 들어 이해를 시키는데 예를 들자면 이렇다.

 당신에게 로또 1등 당청금 50억이 생긴다면?

 S는 그 돈을 어디에 쓰고 어떻게 쓰고 무얼 하고 싶고 이런 상상을 한다.

 그렇다면 N은?

 이 로또가 만약 조작이 된 건 아닐까, 당청금을 들고 나오다가 택시강도를 만나서 다 뺏길지도 몰라, 당청금 받으러 가기 전 날 지진이나 우주 대폭발이 일어난다면.

아...N에 대하여 설명하고 싶은데 S라서 그들의 세상을 이해할 수가 없어서 중략한다.


 그렇다면 이 글의 주제는 간식인데 왜 여기서 S냐 N이냐 타령을 하느냐. 과자의 선택에 있어서도 S로서의 정체성이 충실한 쇼퍼임을 밝히고 독자들에게도 함께 먹자고 권하기 위함이다.


 새로 나온 과자가 흥미를 당기면 다 먹어봐야 하는 편이다. 이건 별로다, 먹지 마라 하는 조언 따위 거절한다. 맛있다 하는 추천만 받아들인다. 누가 뭐래도 직접 먹어보고 판단하지 않으면 쉽게 타인에게 권하지도 않는다. 집밥 백선생님처럼 겉만 살짝 한 입 먹어보고 다음은 모든 부분을 '' 먹어보고 그 다음은 커피랑도 먹어보고. 그래서 쓰니애의 추천은 주변에서도 평타 이상 치는 편인데, 여기에 또 특별한 자부심을 가지는 괴짜 성향이 다분하다.

 새로운 과자들을 시식해보았지만 특별히 구미를 당기는 신제품 찾기가 어려웠던 나날이었다. 과연 내 경험주의를 만족시킬 센세이션한 과자를 만나기는 어려운 것인가. 헛헛한 마음으로 과자코너를 배회하다가 드디어 만나게 되었다, 너를.


 


 


 대기업의 삘은 아닐 것 같은 정직하고 레트로한 느낌의 디자인이 일단 시선을 잡는다. 정 중앙에 자리잡은 파티쉐 일러스트가 장바구니 간택의 손길을 잠시 머뭇거리게 한다. 간판에 사장님 얼굴 실사 넣는 게 유행이었던 밀레니엄 시대를 떠오르게 한달까.

 살까 말까 할 때는 '말까'를 선택해야 한다는 현인의 지혜를 거스르고 당장 검색 엔진을 켠다. 한 두 명의 평가가 아니라 별점으로 나타나는 데이터가 필요하다.

 오호, 쿠땡 별점 5개. 직진이다.


 신나는 마음으로 집으로 데려오면서 친구에게 혹시 먹어봤냐고 물어봤다. 돌아온 건 맛의 평가가 아닌 무시무시한 경고였다.

 "정신 똑바로 차리고 먹어."

 깨어있지 않으면 넋이라도 있고 없고 무한정 비닐을 까고 있는 자아를 발견할 것이라고, 홀린듯 인터넷으로 이불만큼 샀다고.

 정신을 가다듬고 조심스레 한 봉지를 깠다. 쿠크다스 마냥 부스러기가 많이 생길 것 같은 과자는 가장자리 네 귀퉁이를 찢는 것이 아니라 중간 비닐 날개를 찢어내리는 것이 답이다. 해부하듯 비닐을 갈라 조심스레 하얀 속살을 꺼낸다. 킁킁 냄새도 맡는다. 우유향과 곡물 크리스피롤의 향기가 스친다. 한 입에 다 넣어버리면 재미없지, 길이 약 7센치에서 3분의 1만 물어본다.

 파사삭.

 겉의 맛이 달콤했는데 곧장 꼬순 맛이 올라온다. 그리고 파사삭했는데 눅진해지는가 싶더니 이내 사르륵 녹아버린다. 포장지에 적혀있던 '입안에서 사르르'가 거짓말이 아니었구나.

 분명 처음 먹는 과자인데 향수가 느껴진다. 알 듯 말 듯 밀고 당기는 과자녀석, 기억해내려면 맛을 더 봐야 겠네, 결국 한 봉지를 더 깐다. 잠 못들기 전에, 열봉지 까기 전에 도와줘요, 나의 기억 저장소 해마!




 과자가 사르르 하고 다 녹아버리기 전, 최대한 입 안에서 붙잡고 눈을 감은 채로 음미하하다가 두 눈을 번쩍 떴다. 사르륵 녹아버리는 식감의 끝, 짧은 찰나에 8~90년대로 회귀했다가 마주한 건 그 옛날 부산 달동네 골목 입구에 서 있던 형광등 조도 어두운 조그만 슈퍼.

 동네 두 개를 둘러싼 산 능선한 눈에 그릴 수 있을 정도의 높이까지 올라가려면 예닐곱살 꼬마는 슈퍼의 평상에 잠시 쉬어가야만 했다. 쉬어가자는 핑계로 평상에 앉았다가 미닫이 문 안 쪽방에서 돈통을 마주한 슈퍼 할머니의 친절한 눈과 마주치면 엄마를 졸라대기 시작하는 것이다. 어린 아이에게 과자 하나 정도는 사주라고 편 들어 줄 사장 할머니의 뒷배를 믿고서.

 호랑이같던 엄마가 모처럼 허락해주는 날엔 신이 나서 가게 안으로 쫄랑쫄랑 들어가 가판대에 빽빽하게 누워있는 과자들을 눈을 빛내며 신중히 고른다. 오늘은 무얼 먹을까 과자 한 봉지에 한참 뜸을 들여 고른 건 노오란 봉지, 사또밥.

 모양새는 팝콘같은데 포근포근하게 녹는 식감. 한 개 두개 집어 먹으면서 가루가 자꾸 손에 묻으면 손가락도 쪽쪽 빨아가며 먹던 그 맛. 가루가 침이랑 같이 찐득해지는게 귀찮아서 마지막엔 한 주먹씩 와르르 꺼내 입에 털어넣고 빨리 손 씻어버리게 되던 과자. 그래, 사또밥이었구나.


 엇, 그런데 아직 끝나지 않았다. 과자의 전지분유향이 다시 타임머신을 태우고 날 어디론가 데려간다.

 도착한 곳은 외삼촌 댁의 아기가 누워 있는 방. 갓난쟁이 사촌동생이 잠들어 있고 외숙모는 잠시 방에서 나가셨다. 조금 전까지 숙모가 분유를 타며 아기 얼굴이 크게 그려진 캔에서 분유가루 한 스푼씩 뜰 때마다 풍기던 달큰꼬순 향내가 아기냄새랑 함께 방안을 감돈다.

 분유 스푼이 떠질 때마다 침을 꼴깍거리며 시선을 뗄 수가 없었던 어린이는 숙모 몰래 분유 뚜껑을 살포시 열어 고운 가루 한 스푼을 뜬다. 가루가 떨어지지 않게 숟가락을 통 안에서 톡톡 두드려 털어내고 고개를 최대한 뒤로 젖혀 입을 크게 벌린 뒤 숟가락을 공중에서 뒤집어 입 안으로 후루룩 쏟아넣는다. 침이 닿으면 안 되니까 최대한 조심스럽게, 완전범죄를 꿈꾸며.



 사또밥 분유도둑 추억의 맛을 떠올리며 시간여행은 종료되었다.

 역시 아는 맛이 무서워. 미화되는 어린시절과 포근한 식감에 결국 넋을 잃을 뻔했다. 네번째 봉지를 까려는데 친구의 경고가 떠올랐다.

 "정신 똑바로 차리고 먹어야 해."

 다급히 칼로리를 확인한다. 총량 240g에 1360kcal. 대략 27봉지 들어있으니 다섯살 손바닥만한 얇은 과자 한 봉지가 50kcal이다. 두 봉지를 먹으면 벌써 100, 밥 한 공기인 셈. 해외 마트에 가서 무슨 과자를 사야할지 모르겠다면 무조건 칼로리가 높은 걸 고르라는 맛의 성지 순례자들이 일러주는 교훈이 맞는 것이다. 맛있으면 열량이 높다. 고로 열량이 높으면 맛있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래서 친구를 잘 사귀어야 하고 충신의 말은 새겨야 하는 법이다. 가까스로 의식의 뺨을 때려 네번째 봉지를 멈췄다.


 이 글을 읽어주시는 독자님들을 아끼는 마음에 충언을 드린다.

 이 과자를 마트에서 보거든 꼭 사서 드셔보자. 경험주의 S 쓰니애의 꼼꼼한 심사에 통과한 과자니까. 뜨끈한 아메리카노 한 사발 말아놓고 커피를 다 마실 때까지 딱 세 봉지만 천천히 음미하며 녹여먹는 것이다. 씁쓸한 여운이 끝나기 전에 과자 한 입, 달콤함이 끝나기 전에 커피 한 모금.

 새로운 과자라 낯설어하지 말고 역시 직접 씹고 뜯고 맛보고 해야 새로운 과자의 지평을 열 수 있는 것이다.

 대신에 정신을 '단디' 차리시기를 바란다. 튀기지 않은 쌀과자라는 말에 속아 이미 수십봉지 까먹은 뒤에 뒤늦게 영양성분 확인해봤자 「망우보뢰」,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다. 덮어놓고 먹다보면 지방이 내 몸이 되는 것인지, 내 몸이 지방이 되는 것인지 알 수 없는 물아일체 호접몽을 꿈꾸게 될테니.




제조사는 중국이고 수입판매원으로부터 아무 댓가도 받지 않은 순수 내돈내산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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