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만 구독자를 거느린 유튜버이자 초등맘의 멘토인 그녀, 친절한 미소로 전도지 나눠주는 교인들인 양 브런치를 들이밀었다.
글 쓰는데 브런치 먹으면서 하자는 건가? 근처에 브런치 맛집이 생겼나? 아니다, 해보라 그랬지. 나랑 같이 가는 건 싫은 건가?그러고 보니 그녀의 인스타에서 브런치 모집 어쩌고를 보았다. 블로그 비슷한 것인가 보다. 일기를 쓴 적은 창세 전이고 리포트와 자소서를 쓴 신석기시대를 지나 맘카페에긴 문장을 쓴 건 기원전 일이 되어버렸는데. 다시 글을 쓴다는 것은 뗀석기로 철검을 만드는 일과 매 한 가지이나 그녀가 '고'를 외치면 왠지 부리나케 일어나 발바닥에 땀날 때까지 날카로운 돌이라도 주워 다녀야 할 것만 같았다.
당했다. 예쁘고 똑똑한 사람한테 약하다는 걸 꿰뚫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그녀의 흘림 반 강권 반으로 브런치의 첫 포크를 들어보았다. 반찬투정하듯 끼적거리다가 완성하지 못한 2022년 12월의 첫 브런치는 작가의 서랍 속에 유통기한 지난 쓰레기가 되어썩어가는 중이었다.
예쁘고 똑똑한 그녀가 1년을 기다리다가 더 이상은 안 되겠다 싶었는지 결국 올가미를던졌고 그 자리에서 바로 납치당했다.
슬초 브런치프로젝트 2기
"여러분은 이전으로 돌아가실 수 없어요, 어제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신 거예요."
역시, 그녀가 내게 들이민 것은 전도지가 맞았다. 초등맘의 멘토를 넘어 이제는 중등 그런 거도 넘보고 계신 이은경 교주님이 줌클래스에 모인 143명의 신도들에게 전생을 잊으라 설교 중이시다. 몇몇 신도는 확신의 눈빛으로 힘차게 고개를 끄덕이고, 전도축제에 손 잡혀 온 이들은 아직 결단의 시간이 필요하다. 납치 당해 온 본인도 살짝 두려워지기 시작한다.
'응? 잠깐만요, 지금 온 길 못 돌아가요? 머리도 못 감고 나왔어요. 삼 남매 육아의 스펙터클과 백팔번뇌를 잊지 말자, 이놈들 다 크면 효도채무를 이행할 증명서를 만들어놓자는 심산으로 밥 차리다가 쓰레빠 끌며 왔는데요?'
갈팡질팡, 결단이 필요한 이들에게 은경 교주님이 마지막 선포의 세례를 베푸신다.
"욕망을 가지세요, 대형 출판사에서 새로운 작가님들과 일하려고 브런치를 지켜보고 있어요, 저도 돈 벌려고 글 쓰기 시작한 거 아시죠?"
자본주의 축복 세례였구나!
아멘, 제가 여기 있사오니 따라가겠나이다!
본업을 집어던지고 육아하며 접한 문명이란 뽀로로에서 겨우 포켓몬스터로 진화했을 뿐이니 진지하고 유식한 글은 못 쓴다. 지난 세월을 되짚으며 쓸만한 돌을 고르기 시작했다. 흔한 K 유부녀의 핸드폰 사진첩은 야채코너 오이만큼 뻔하다. 애들 사진과 커피와 빵과 꽃의 향연(어머님의 아들 사진 따위는 찍지 않는다). 그중 잘 벼려내면 쓸만 할 원석들을 주섬주섬 주워다가 작가의 서랍에 모아둔다. 인생은 역설의 반복이라고 똥꼬 발랄한 삼 남매의 난리법석을 어떻게든 희화화하기 위해 우뇌를 풀가동 해본다. 뭐라도 뱉으려면 삼킨 게 있어야 하니 책도 부지런히 읽어야 한다. 자려고 불 끄고 누우면 꼭 글감이 뇌리를 스친다. 이런 패턴이 반복이 되니 불과 4주 사이에 이전의 '나'는 결국 전생이 되어가는 중이다.
남편이 차은우가 되는 대 반전은 아니어도 현생에 많은 변화가 시작되었다.
4년간 엄마표 영어로 끌어오던 아이 둘을 학원에 등록시켰다. 작가로 살기와 엄마표의 동행을 이어 갈 깜냥이 못 되었는데 적절한 시기에 잘 넘겼다. 갑작스러운 학원비 예산을 위해서 글로 치열하게 전투를 벌여봐야겠다.
이틀 전부터는 미라클 모닝을 시작했다. 새벽반 동기님들과 함께라면 까짓 해보지 뭐. 알람시계를 5시 30분에 맞춰 놓고 12시 전엔 꼭 잠에 든다. 코로나 1년 차 때 7시 미라클 모닝 모임이 있었는데 지인들로부터 그건 그냥 '굿모닝' 아니냐, 모닝콜 모임이냐 놀림받았었다. 굿모닝 쓰니애는 잊어주시길.
대자연에 맞서 극복해나가고 있다. 달에 꼬박꼬박 찾아오시는 붉은 마법의 날이 되면 이틀은 꼬박 침대에 누워서 쑤시는 다리와 저며드는 배를 움켜쥐고 끙끙 앓았다. 애들 밥은 기어 다니며 챙겨주고 남편이 퇴근해도 웃어줄 수 없었다. 하지만 내게도 마감의 인생이 도래했으니. 약 두 알 털어 넣고 핫팩을 옷 안에 숨겨 넣고 가방에 노트북을 챙겨 밖으로 나간다. 창작의 고통과 라이킷의 엑스터시가 대자연에 맞설 힘을 주고 있다.
앞선 세 가지 변화를 합친 것보다 더 큰 것 하나 공개를 하자면, 그것은 바로 '넷플릭스 해지'. 넷플을 해지하기로 결단했을 때가 비로소 전생의 나는 버려지고 '空'을 '글'로 채울 진정한 시발점이 되었다. 안녕, 언택트의 외로움을 달래주던 너, 설거지 메이트, 빨래 개기 메이트.
붙잡고도 싶었지, 만 나도 결국엔 안 될 걸 알기에
선 순환만 있는 것은 아니다. 거실 매트 경계선을 따라 개 놓고 제 집에 들어가지 못한 옷들이 울타리를 쳤다. 건조기 안에도 꺼내주길 기다리는 옷들이 엉켜 있고 세탁실에는 다음 차례를 기다리는 빨래들이 또 한 무더기다. 관계보다는 일이 우선순위인 사람인지라 글을 쓴답시고 아이들의 마음과 루틴을 놓친 일도 일쑤다. 세대주에게 특히 미안한 점인데, 갑작스럽게 떨어진 온도를 메워 줄 외투 하나 꺼내주지 못했다.
그럼에도 글 쓰니로 돌아오게 되는 것은 먼저 밝힌 변화와 더불어 뻥튀기의 욕심을 버리고 진실되게 써야만 하는 과정에서 반복되는 '나와의 화해' 때문이다. 많이 읽지 못한 나와, 조금 더 부지런했으면 몇 자 더 적었을 나와, 자녀들에게 공부란 나이 들어도 즐거울 수 있음을 충분히 보여주지 못한 나와 빈번히 싸웠다가 다시 잘해 보자고 악수를 내민다. 동네 친구들과 비교했더라면 자괴감에 땅굴을 팠을 터이다. 타인을 배제하고 자아를 깊이 들여다보며 내일의 나로 살아갈 생각을 하니 삽질이 뚝 멈춰진다. 화해의 과정에서 바라보는 '나'는 썩 괜찮은 사람이 된 것 같다. 덕분에 글이 점점 맛있어지고 있다.
교주님, 아니 선생님은 이걸 노린 것이었나? 어제와의 다른 삶이란 돈방석에 앉을 유명 작가의 인생이라 약을 판 것이 아니었구나. 브런치 프로젝트 팀이 143인에게 파파라치처럼 붙어 끌어당기고 밀어주면서, 인생의 재발견을 하러 같이 가자고 손을 쑥 내밀어 잡아주었구나. 아, 조금 얄밉다. 예쁘고 더 똑똑해졌네. 멱살이 잡혀 들어오긴 했지만 좋은 곳으로 인도하시나니, 이곳에 다리 좀 뻗어보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