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맛, 정
25. Niagara Falls를 캠핑으로?
남편의 전공은 식품위생, 미생물학이다. 토마토나 오이 등 농작물에 침투해 사람의 생명을 위협하는 균들을 연구한다. 어떤 환경에서 균이 잘 자라는지를 알면 균으로부터 우리 몸을 보호할 방법을 찾을 수 있다.
특히, 살모넬라균의 생존 환경을 연구했다.
Yeast Culture Club, 남편이 대학원 친구들과 만든 클럽이다. 여러 가지 맥주를 만든다. 딸기, 호박, 복숭아 등을 넣거나 효모균들을 바꾸거나 환경을 조금씩 달리해 맥주를 만든다. 맛도, 향도, 도수도 그때그때마다 달랐다. 남편은 노간주나무 열매를 넣어 맥주를 만들어 보기도 했다. 실험정신? 위트와 유모가 있는 맥주 클럽이었다.
내가 보기엔 술을 만들어 마시고 싶은 모임 같았다.
한 번은 한국마트에서 막걸리 키트를 사 왔다. 고두밥에 누룩과 이스트를 넣고 잘 섞어 며칠 동안 숙성시키니 수제 막걸리가 되었다.
"와~ 제법 막걸리 맛이 난다! 그리운 한국의 맛이다!"
미국에서는 생막걸리가 없기 때문에 아주 귀한 것이다. Yeast Culture Club에 막걸리에 어울리는 수육과 김치를 함께 보냈다. 늘 남편은 한국 음식을 친구들에게 소개하고 싶어 했다.
한 번은 남편이 지도 교수님에게 김치 담그는 방법을 설명하자, 교수님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고 한다.
“유산균은 언제 넣어요?”
우리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질문이었다.
“우리는 유산균이든 어떤 균도 넣지 않아요!”
그래서 김치가 더 대단하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우리 김치에는 유산균을 넣지 않지만 유산균이 자라기 때문이다. 그렇게 많은 김치를 담갔는데 몰랐다. 글쎄, 어떤 과정에서 유산균이 생기는 건지?
“여보, 내일은 Yeast Culture Club의 디저트 데이야.”
저녁에 집에 온 남편이 각 나라마다 대표하는 디저트를 가져가기로 했단다.
한국을 대표하는 디저트가 뭐지??
나도 잘 모르겠다. 한과? 식혜? 수정과? 당장 내일 가져가야 한다는데 만들 줄도 모르고 재료도 없다. 한국마트가 멀어 자주 가지 못했다. 그래서 미국에는 팬트리가 꼭 필요하다. 우리나라처럼 집 앞에 마트가 있는 곳에서 팬트리는 그다지 필요해 보이지 않는다.
어쨌든 한국 전통 디저트를 준비해야 했다. 다른 재료는 없고 집에 쌀만 많았다. 그래서 백설기를 만들기로 했다. 크랜베리를 넣은 백설기! 처음 만들어 보는 거였다. 고운 쌀가루도 아니고 직접 쌀을 불려서 갈고 체에 여러 번 쳐서 겨우겨우 만들었다.
휴~
남편은 거기가 한국인줄 안다. 말만 하면 뚝딱 나오는 줄 안다. 거친 쌀가루로 모양만 그럴싸한 Rice Cake를 들고 남편은 신나서 학교에 갔다. 물론, 친구들의 반응은 나쁘지 않았다고 한다.^^
남편 친구들을 가끔 본다. 농장에서 여는 작은 파티에 초대받아 간 적이 있고 여러 명이 함께 사는 레베카 집에도 가 봤다. 레베카 집에는 넓은 정원과 마당 한가운데 벽돌로 만든 페치카(벽난로)가 있었다. 낭만적인 집이었다. Potluck 음식으로 나는 늘 김밥을 싸 간다. 핑거 푸드여서 여럿이 나누어 먹기 간편해서다. 파전이나 김치 부침개도 좋다.
레베카의 부엌에서 애플소스를 함께 만들었다. 껍질을 벗긴 사과를 잘게 썰어야 하는데 할머니 때부터 사용한 사과 으깨는 기계가 있었다. 사과를 넣고 냄비 위에서 돌리기만 했는데 사과가 갈아서 나왔다. 수동이라 신기했다. 거기에다 레몬즙, 설탕, 시나몬, 버터를 조금 넣고 끓이면 완성이었다. 후식으로 자주 먹는단다.
미국에서는 사과가 종류도 다양하고 아주 싸다. 점심 도시락에 하나씩 넣고 다니는 필수템이다. 점심 양치 대신 사과를 먹으면 입안이 깨끗하다고 한다.(미국에서는 치과의사가 양치는 하루 2번이라고 교육했던 것 같다.)
대바늘 없이 손으로 하는 뜨개질이 유행일 때, Yeast Culture Club은 세라네 집에서 모였다. 그들은 언제나 모여서 논다. 남편은 맥주를 마셨고 우리 아이들은 대학원생 누나, 형들과 어울리고 내가 팔을 이용한 뜨개질을 했다. 그녀들이 하는 대로 따라 하기만 하면 되었다. 두꺼운 털실을 이용해 전완 부분을 대바늘 삼아 목도리를 짰다. 느슨하지만 제법 목도리가 되었다.
남편은 맥주 한 캔을 들고 돌아다니며 이야기하고 웃고 즐거워 보였다. 난 아마 운전기사로 따라간 거였다. 그때는 몰랐지만, 그래도 좋았다. 젊은 미국 대학원생들과 언제 그렇게 어울려 보겠는가.
늦깎이 남편의 육아를 돕기 위해 남편 친구들은 가끔씩 우리 아들 셋을 불러 냈다.
“엄마, 세라랑 바닐라 아이스크림 만들었어.”
“정말? 집에서 아이스크림을 만들 수 있다고?”
"엄마, 우리 피자도 만들어 먹었어."
아이들은 한껏 들떠서 돌아왔다.
그 주말, 나는 FREE였다.
“여보, Yeast Culture Club에서 Sushi Day(초밥 데이)를 하기로 했어.”
“일본 친구가 있었나?”
“아니, 당신이 해야지.”
“뭐라고 내가? 나는 김밥 밖에 몰라.”
“캘리포니아 롤 있잖아! 초밥도 잘 만들고.”
캘리포니아 롤은 제대로 해 본 적이 없는데...... 김밥 말 때 아보카도랑 참치 회를 넣었을 뿐이었다. 나는 유튜브를 보고 연습했다. 김에 밥을 균일하게 펼쳐서 뒤집어 그 위에 재료를 얹고 말면 되었다. 밥이 상당히 많이 들어가야 예쁘다. 그 위에 날치알이나 소스를 더해 준다.
“만들어 가는 것이 아니고 거기서 시연해 달래.”
밥과 김밥 재료, 참치회, 날치 알, 무순 등 재료를 야무지게 준비하고 아는 언니에게 배운 데마끼소스를 만들어 갔다. 여러 사람들 앞에서 시범을 보여 주려니 손이 달달 떨린다. 말은 못 하고 그냥 보여주기만 했다. 그런데 난리가 났다. 맛을 보겠다고 앞다투어 나서는 사람, 자기도 한번 말아보고 싶다는 사람, 음식을 입에 넣고 감탄을 연발하는 사람...... 호응이 좋았다.
나는 조용히 뒤로 빠졌다.
초밥이랑 데마끼(즉석 해서 말아먹는 김초밥)를 만들어 옆에 두었다. 마음껏 집어 먹게 했다. 남편은 신이 났고 친구들 입꼬리가 하늘을 향해 있었다. 뿌듯했다. 자랑스럽기까지 했다. 그들 사이에 있으니 나도 학생이 된 것 같았다. 더 젊어진 것도 같고 많이 웃었다. 남편 덕분에 나도 많이 배우고 성장한다.
그때가 아니었으면 나는 언제 백설기를 찌고 캘리포니아 롤을 말아 봤을까.
타국에 사니까 먹고 싶은 음식들을 직접 만들어 먹게 된다. 김치도 담고 떡도 찌고 초밥과 캘리포니아 롤, 막걸리까지 만들었다. 족발과 물냉면, 김치 만두, 팥칼국수와 짜장, 짬뽕까지..... 참 많이도 만들었다. 익숙했던 한국의 맛이 미치도록 그리웠던 것일지도.
친구들과 이웃, 함께 나누어 먹는 재미와 정을 느끼고 싶었는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