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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기꺼이 운전기사가 되겠습니다!

아빠와 함께한 첫 소풍

by 꼬꼬 용미

일흔넷, 엄마가 심심하신가 보다. 친정 단톡방에 자주 음식 사진을 올리신다. 군침을 삼키며 탐을 내보지만, 그림의 떡이다.


“맛있겠어요. 아빠랑 두 분이서 맛나게 드세요~”

라고 답 할 뿐이다.


며칠 전에는 양념게장이 올라왔다. 어릴 때 할머니 집에 가면 맛보던 양념게장! 나는 그것만 먹었다. 양념게장은 역대급 밥도둑이란 걸, 난 이미 그때 알았다. 지금까지도 너무 좋아한다. ‘뭐예요. 약 올리는 것도 아니고….’


얼마 전, 게장 맛집에서 줄을 섰다가 우리 앞에서 양념게장이 똑 떨어졌다. 울며 겨자 먹기로 간장게장을 사 와 집에서 먹었다. 큰맘 먹고 간 건데, 많이 아쉬웠다. 엄마표 양념게장 사진을 보니 침이 꼴딱꼴딱 넘어갔다.


양념돌게장~/ 낙지볶음 (엄마가 올린 사진)


지난 주말에 엄마 생신이었다. 서울 사는 언니 둘과 동생이 내려오기로 했다. 올해도 휴가차 내려와 주말을 함께 보내기로 해 우리도 달려가겠다고 했다. 온 가족이 다 모이고 엄마 생신날이니 미역국 끓이고 잡채랑 불고기나 갈비찜 정도는 해가야 하는데, 날이 너무 덥다. 게다가 냉장고가 고장 나 음식을 만들 수가 없었다. 미역과 소고기 스톡 그리고 용돈만 챙겼다. 남편은 늘 운전기사 노릇을 했으나 이번에는 바빠서 못 간단다.


'맙소사! 지리산이나 남원으로 다 함께 놀러 가려고 했는데.... '


할 수 없이 나 혼자 남편이 알려준 길로 출발했다. 여유롭게 국도를 달려 잘 가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다. 뭔가 잘못된 것 같다. 남편은 직진이라 했고 내비게이션은 우회전하라고 했을 때, 순간 내비게이션 말을 듣고 운전대를 꺾었던 것이 생각났다. 아차차.... 담양이 나오고 알던 길과는 멀어졌다. 그래도 길은 나온다. 광주 시내를 가로질러 친정집으로 가고 있는 중이었다. 다른 길로 가는 바람에 엄마 단골집 정육점이 보였다. 오히려 잘 됐다! 다진 쇠고기와 국거리, 육회거리를 샀다. 친정집에서 직접 음식을 만들어 드릴 계획이었다.

금요일 저녁 밥상에 온 가족이 둘러앉았다. 엄마는 우리 온다고 머윗대를 잔뜩 넣은 오리탕을 끓여 놓으셨다. 여름마다 끓여 택배로 보내 주시는 보양식이다. 고구마 순 김치양념게장이 나왔다. 엄마가 단톡방에 올린 게장은 우리를 위한 것이었다.

“오메, 이것이 우리 먹으라고 만든 거였구만요~”


언니도 단톡방 사진을 보고 입맛을 다셨나 보다. 게다리를 쪽쪽 빠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린다. 이번 게장은 유난히 할머니 손맛이 느껴졌다. 엄마도 게장은 할머니한테 배운 것이다. 껍질 까는 게 번거롭고 손 많이 가서 엄두도 못 내는 고구마 순 김치는 아마 우리 집 한서방(남편) 먹으라고 담은 모양이다. 이번에는 작은 형부만 왔으나 볼 일이 있어 나갔다.

저녁을 먹고 났더니, 커다란 꽃바구니가 배달된다. 작은 형부의 센스였다. 사위들이 많으니, 돌아가면서 효도를 한다.

“꽃바구니네~ 어머 예뻐라. 결혼 50주년 때 한번 받고 이번이 두 번째다. 고마워~”

엄마 입이 귀에 걸려 닫힐 줄 모른다.


몇 해 전에 한서방이 친정집 근처로 마침 출장을 나와 엄마 아빠의 결혼 50주년을 혼자 축해해 드리고 왔다. 금일봉과 꽃바구니를 전달하고 기념사진을 찍어드렸던 게 첫 번째 꽃바구니다. 엄마가 꽃을 이렇게 좋아하는 줄은 미처 몰랐다. 시들면 아쉽고 돈 아깝다고 할 줄 알았으나, 아니었다. 더 자주 꽃을 사드려야겠다. 엄마의 밥상을 잘 받았으니, 엄마 생신날은 내가 책임질 차례다.


“엄마, 내일 미역국은 제가 끓일게요.” 하고 잠이 들었다.


다음날, 새벽 6시 전부터 부엌에서 뭔가 움직임이 느껴졌다. 하지만, 너무 늦게 잤고 너무 이른 시간이라 나는 선뜻 일어나지 못했다. 8시쯤 부엌으로 나갔더니 엄마가 미역국을 다 끓여 놓으셨다.


"엄마! 내가 끓일 건데요.... 아무것도 하지 마시라니까요....."


죄송해서 나의 목소리가 기어들어갔다. 엄마는 아빠 밥이 늦어질까 봐 국이라도 먼저 끓이셨단다.


"아빠, 잠깐만 기다리세요. 하와이 대표 음식, 로코모코를 만들어 드릴게요~”


나는 얼른 요리를 시작했다.


괌 여행에서 먹은 음식이다. 미국 살면서 괌이고 하와이고 비행기 탈 엄두를 못 냈다. 작년에 결혼 20주년 기념으로 가족여행을 괌으로 다녀왔다. 첫 해외여행에서 먹은 로코모코를 우리 둘째는 잊지 못했다. 아들이 먹고 싶다고 해서 만들게 되었다. 소고기 스톡을 구하고 유튜브로 배웠다. 참 좋은 세상이다. 만들고 싶은 것은 모두 유튜브에 나와 있다.

만드는 건 의외로 간단하다. 떡갈비나 햄버거 스테이크처럼 다진 소고기에 다진 마늘, 양파를 넣고 간장과 후추, 소금으로 간해서 도톰하게 패티를 만들고 프라이팬에 굽는다. 그리고 그레이비소스만 만들면 되는데, 추수감사절에 칠면조 요리와 함께 먹는 그 그레이비소스다. 소스는 버터에 양파와 버섯을 볶다가 끓은 물에 소고기 스톡과 밀가루를 넣고 푼 육수를 함께 넣어 서서히 저어가며 끓이면 끝이다. 소고기 스톡에 간이 있어서 따로 간을 하지 않아도 되나, 싱거우면 소금이나 간장으로 간을 할 수 있다. 고소한 그레이비소스의 향이 퍼진다. 그리고 계란은 써니 사이드(sunny side up) 업으로 굽는다.

따뜻한 흰밥에 구운 패티를 올리고 그레이비소스를 얹고 써니 사이드 업을 올리면 된다. 짭조름하고 담백해서 맛있다. 메시포테이토와 (무화과, 딸기) 잼, 구운 아스파라거스 등과 곁들이면 더 맛있다. 내가 먹었던 특별한 요리를 우리 원가족과 나누고 싶었다. 엄마 아빠 반응이 괜찮다. 언니들과 동생도 맛있다고 고개를 끄덕이는데, 형부는 좀 느끼한지 엄마 묵은지를 찾는다. 나의 로코모코와 엄마의 미역국, 고구마 순 김치랑 근사한 아침을 든든히 먹었다.


이제 우리는 나들이 갈 계획을 세웠다. 운전기사 우리 남편이 없으나 7인승, 내 차를 움직여야 한다. 살짝 자신이 없다.


그런데 엄마가 날이 더우니 힘들게 멀리 가지 말자고 하시고 아빠는 무등산 계곡에서 발이나 담그자고 하셨다. 언니들은 안 가본 데 가자고 하고 난 예쁜 카페에 가서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했다. 의견들이 다 다르다. 오예~ 가까우면 모두 오케이~~ 아침 먹은 걸 치우고 의견들을 모으고 예쁘게 꽃단장하느라 다시 점심때가 되었다.


우리는 무등산 근처에서 점심을 먹고 담양 죽녹원 나들이를 다녀오자고 결론을 내렸다. 스무 살이 조금 넘어 객지로 나간 탓에 난 고향이지만, 광주 지리를 잘 모른다. 길도 많이 변했다. 점심을 먹으러 가는 길, 운전대를 잡은 나는 내비가 알려주는 길을 놓치고 다시 돌아가고 자꾸 유료 도로를 탔다. 내비게이션만 따라가니 할 수 없었다. 도로에 돈을 지불한 만큼 식당에는 빨리 도착했다. 누구 하나 불만도 없이 하하 호호 즐겁게 달려왔다.


사찰음식을 하는 식당에 잘 찾아왔다. 난 운전하느라 긴장해서 음식이 잘 들어가지 않는데, 언니랑 엄마 아빠는 두 접시씩 가져와 드셨다. 식사 후에는 식당 옆 미륵사의 작은 정원을 둘러보았다. 예쁜 수국들이 우리의 나들이를 반겨 주는 것 같았다. 덥지만, 마음은 한결 가볍다.

드디어 죽녹원으로 가족 나들이를 떠났다. 전날 길을 헤매며 죽녹원을 지나왔으니 이젠 길을 잘 안다. 언니가 옆에서 내비게이션을 함께 봐주니 또 든든했다.


우리 아빠는 목수였다. 국회의사당을 지었다고 들었다. 서울에서 버스 안내양을 하던 엄마를 만나 결혼했고 광주로 내려와 자리를 잡았다. 부모님은 작은 초가에서 신혼살림을 시작했다. 비만 오면 물을 퍼내야 했던 초가를 나는 기억한다. 도로 지면보다 우리 집이 낮아서 비가 오면 발목까지 물이 들어찼다.


억수같이 비가 오던 어느 날, 우리 초가집은 무너지고 말았다. 아빠는 그 땅에 단층 양옥을 지었다. 목수 아빠가 지은 자기 소유의 첫 집이었다. 아빠는 성실하셔서 비가 와야 쉬었다. 주말도 없이 아빠는 늘 일하셨고 어린이날이면 엄마랑 우리 넷만 돗자리와 김밥을 들고 소풍을 갔다.

그러고 보니 우리 원가족, 여섯 식구만 모여 움직인 것이 이번이 처음인 것 같다. 늘 한서방이나 형부들과 아이들이 끼어 있었는데, 몇 년 만에 우리만 모인 것인가.


어느새 담양 죽녹원에 도착했다. 죽녹원은 대나무 밭이다.


오후 햇살이 강렬하고 뜨거웠다. 그런데 죽녹원 안은 키 큰 대나무가 하늘을 가려 그늘을 만들어 주었다. 덥지만, 걸을 만했다. 엄마 아빠가 지치지 않도록 카페에 들어가 댓잎 아이스크림도 먹고 잠깐 이야기를 나누며 쉬었다. 그리고 천천히 걸었다.


고향 집에서 30분 거리의 죽녹원을 나는 처음 가봤다. 어릴 적 우리 집에는 차가 없었다. 어디를 한번 가자면 늘 버스를 탔고 바리바리 싼 보따리들을 하나씩 들고 아빠 뒤를 따랐던 기억이 선명하다. 명절 때 시골 가는 버스는 초만원으로 탑승하기가 그야말로 전쟁과도 같았다. 아빠 꽁무니를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기를 쓰고 사람들 속을 뚫고 들어가야 했다. 이모부의 자가용을 처음 탔을 때, 마냥 신기했었다. 내릴 때 손잡이를 찾지 못해 한참을 머뭇거렸던 기억도 난다.


아빠는 50이 넘어 운전면허 취득에 도전했다. 여러 번 떨어진 끝에 결국 면허를 따셨다. 내가 미국면허를 따는 것 마냥 아빠도 여러 번 도전해 마침내 얻어낸 것이다. 내가 고등학교 다닐 때 가끔 아빠가 나를 학교에 데려다주셨다. 건설 현장 책임자로 우리 아빠의 첫 차는 승합차 그레이스여야만 했다. 그날 내가 직접 운전해 가족들을 태우고 나들이 간 기분이 좀 묘했다.


엄마 아빠는 죽녹원의 비탈진 곳을 올라가지 않으셨다. 아름다운 정자에 앉아 우리를 기다리셨다. 벌써 걷는 걸 무서워할 연세가 되신 것이다. 너무 늦은 것은 아닌지.

영산강 물줄기가 훤히 보이는 카페에 앉아 우리는 이야기를 나누고 사진을 찍으며 여유로운 시간을 보냈다. 수박 주스, 복숭아 스무디, 자두 스무디 등 주문한 음료 중에 커피가 없다. 벌써 오후 커피를 두려워하는 나이들이 되었다. 너무 늦은 것은 아니겠지.


말이 없는 아빠는 커다란 통창 너머 시원스럽게 뻗은 바깥 경치를 음미하고 계신다. 엄마보다 아홉 살 많은 여든셋의 아빠는 웃으라면 웃고 사진 찍는데 협조도 잘하신다. 즐겁게 웃는 우리 옆에서 아빠는 무슨 생각을 하고 계셨을지 문득 궁금하다.

“우리끼리 오니까 너무 좋다~”

"응. 꼭 소풍 온 것 같아~"

우리 차 끌고 우리끼리 처음 가족 여행이 아니었나 싶다. 그 옛날 늘 부재였던 아빠와 함께한 첫 소풍이었다. 그 과거의 날들을 보상이라도 하듯 우리 모두의 마음은 시원한 대나무 바람에 물들었다.


담양 하면 죽통밥에 떡갈비다. 아침에 먹은 로모모코 때문에, 엄마의 생일 파티 때문에 그날 죽통밥과 떡갈비는 스킵하기로 했다. 그런데 갈비 냄새가 우리를 유혹했다. 걸을 때마다 코를 자극했다.


"여기까지 왔는데... 누나, 우리 떡갈비 맛은 좀 봅시다~"


동생 말에 결국, 떡갈비를 포장해 왔다. 그리고 내가 묻힌 육회와 작은 형부가 보내 준 회와 커다란 수박으로 집에서 엄마 생일축하 파티를 열었다.


"떡갈비가 아니었어? 숯불갈비잖아!"

간판을 보고도 떡갈비가 아니라는 걸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우리 모두는 그냥 즐겁게 웃었다.


숯향이 듬뿍 배인 담양숯불갈비도 무지무지 맛있었다. 작은 형부는 끝내 가족 모임에 참석 못하고 볼 일을 보고 늦게 들어왔다. 쉿! 그 덕분에 우리 여섯 식구는 더욱 오붓했다는...... 다시없을 우리 원가족만의 하루를 보냈다.


나는 또 우리 가족의 여행을 위해 기꺼이 운전기사가 되겠습니다!


엄마는 또 바리바리 음식을 싸 주셨다. 한서방 좋아하는 고구마 순 김치와 양념게장은 내가 가져오고 오리탕은 언니네와 동생이 들고 갔다. 언제 넣었는지 얼린 낙지와 감자도 얻어 왔다. 잘 도착했다고 전화를 드렸더니, 한서방 좋아하는 오이지를 깜빡했다고 야단이시다.


"엄마, 이미 충분해요~ 잘 먹겠습니다~"


언제나 드리는 것보다 받아오는 것이 더 많다. 이번에 엄마는 얼마나 기분이 좋으셨던지 사 남매 우리 모두에게 용돈까지 쥐어 주셨다.


감사해요. 엄마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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