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폭삭 속았수다
남편이 삐지면 나의 모든 심사가 뒤틀리고 만다. 아니, 늘 내가 문제다.
해군 아들이 휴가를 나왔다. 주말에 다 같이 외식을 하자고 제안했다. 객사 양꼬치 집에 갔다. 해군 아들이 양꼬치를 좋아하고 둘째에게도 색다른 요리를 먹여주고 싶었다. 양꼬치, 해물누룽지탕, 꿔바로우, 마라탕 그리고 공깃밥 2개를 주문했다. 양꼬치를 구워 먹는 동안 요리들이 하나씩 나왔다.
꿔바로우가 제일 먼저 나왔다. 구운 양꼬치와 꿔바로우를 포장해 학원에 간 막내에게 배달했다. 남편이 학원에서 막내를 픽업해 집에 데려다주며 음식을 전달하고 다시 식당으로 왔다. 막내는 숙제 때문에, 집으로 간 것이고 다시 수학학원에 가야 했다.
그런데 그사이 마라탕이 두 그릇 나왔다. ‘한 개 시켰는데?’ 아마도 남편이 태블릿으로 주문할 때 잘못 누른 것 같았다. 공깃밥을 두 개 시킨다는 것이 마라탕을 두 개 주문한 것이었다. 마라탕 하나는 그대로 포장해 막내 주면 돼서 포장을 부탁했다.
그날따라 마라탕은 유난히 내 혀를 마비시켰다. 해물누룽지탕이 더 맛있다. 마라탕은 둘째를 위해 시킨 것인데, 둘째도 입이 얼얼한 모양이다. 연신 혀를 내밀면서도 자기를 위해 시킨 거라고 마라탕을 안 남기고 다 먹는다. 착한 녀석. 양꼬치를 더 추가해 즐겁고 맛있게 잘 먹고 왔다.
다음날, 주방에서 나 혼자 중얼거렸다.
‘주문 잘하길래 신경 안 썼는데, 이제는 내가 다시 확인해야겠어.’
막내가 마라탕이 너무 맵다고 못 먹고 고스란히 남겼다. 버릴 수도 없고 어떡할까 하던 차였다.
“어? 뭐라고?”
남편이 되묻는다. 곧이곧대로 대답하지 말았어야 했다.
남편은 자기가 미안하다고 하지 않았느냐고 했다.
“언제? 난 못 들었는데?”
“꼭 미안하다는 말을 듣고 따져 물어야겠어?”
평소답지 않게 짜증이 섞인 말투다.
맑은 콩나물국에 마라탕을 희석하니 먹을 만하다. 문제는 해결되었는데, 남편 마음은 이미 상한 것 같았다. 나도.
“어! 난 미안하다는 말 못 들었는데, 그리고 어제는 기분 상하지 않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
“먹지 마. 내가 다 먹을게.”
별것도 아닌 걸로 싸우기 시작했다. 남편이 내 국그릇을 뺏으려 했다. 난 국그릇을 꼭 붙잡았다. 그리고 다 먹고 말했다.
“걱정 마. 더 있어!”
“내가 다 먹을 게! 먹지 마!”
“당신이 잘못한 건데, 싫은 소리 그 조금도 못 들어주겠어?”
그리고 남편은 안방으로 가 버렸다. 설거지를 마치고 안방에 들어갔더니, 남편 특유의 새우 자세로 등 돌리고 누워 있다. 잔뜩 삐짐 모드 작동이다. 이건 아니다 싶었다.
“내가 잘못했어. 나 혼자 한 말이었어. 당신이 평소 주문 잘해서 내버려 두었는데, 다음에는 내가 한 번 더 체크해야겠다고 혼자 한 말이야.”
사실이다.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요, 궁색한 변명이 되어 버렸다. 이미 남편 마음은 상할 대로 상해있었다. 그래도 내가 잘못한 부분은 바로 사과한다. 나는.
‘어제 남편도 사과했나? 정말? 평소에는 인정도 잘 안 하는데? 진짜 난 못 들었는데?’
무슨 큰일이라고…. 매번 따지려 드는 내가 항상 문제였다. 후회하고 안 그런다고 다짐하고 결심의 글을 써봐도 고쳐지지 않는다. 글은 써서 뭐 할까.
한편, 이런 생각도 들었다.
“그래, 내가 주문 잘못했더라. 손가락이 두꺼워서 그런가, 요새 잘 안 보여서 그런가 내가 그랬더라.”
라고 남편이 인정했다면 이렇게 되지 않았을 텐데…
남편은 내 말에 대꾸도 안 한다. 이번엔 또 얼마나 말을 안 할까? 일주일? 열흘? 한 달? 후회가 밀려온다.
부정적인 기운은 하루 종일 내 몸을 타고 흐른다. 결국, 사고가 터졌다!
좁은 골목을 지나가다 한 차선에서 대치를 했고 내가 상대방 차를 살짝 긁었다. 무사고 운전 경력에 첫 사고였다.
상대방 차주가 내리며 뭐라고 뭐라고 삿대질부터 한다.
“조금만 더 비켜주시지요.”
나도 죄송하다는 말보다 원망의 소리가 먼저 나왔다.
“(내 뒤를 이어 지나간) 택시는 잘만 지나가던데?”
처음이라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고 당황스러웠다. 자꾸 다그치는 상대방 차주는 택시도 지나가는데 뭘 더 비키냐고 반복적으로 이야기한다. 택시와 반대에서 차가 한 대 왔는데, 내 차보다 작은 차지만, 상대방 차주에게 차를 더 빼달라고 한다.
“이거 보세요. 좁다잖아요.”
내가 항의했더니, 상대방 차주의 목소리가 더 커진다.
억울했다. 조금만 더 비켜주었다면 이런 번거로운 다툼은 없었을 텐데. 시간을 되돌리고 싶었다. 아니다. 내가 좀 더 조심했어야 했다. 부정적인 기운은 돌고 돌아 기어이 일을 냈다. 내 입에서부터 시작된 것이었다.
“10만 원만 줘. 그럼, 갈게.”
대뜸 딜을 걸어오신다.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하나요? 하늘을 쳐다보며 외치고 싶었다. 멘붕이었다. 38도가 넘는 날씨에 땀이 줄줄 흐른다.
결국, 싸워서 말도 않는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받지 않는다.
사고 났어.
메시지를 보내자, 연락이 왔다. 남편과 통화 중에도 상대방 차주는 쉬지 않고 말씀하신다. 내가 통화를 할 수가 없다.
남편이 전화기로 듣고 있다가 “싸우지 말고 그냥 경찰 불러. 보험사도 부르고.” 남편의 답은 짧고 명확하다.
결국, 경찰이 출동하고 내 보험사가 왔다. 경찰 두 분이 오셔서 서로의 억울함을 들어주셨다. 상대 차에 검은 자국이 살짝 났다. 경찰이 봐도 지우면 지워질 것 같다 하신다. 내 차는 멀쩡한데, 상대방 차주는 검은 자국 밑에 쓸린 4줄의 흰 자국까지 내 탓을 하신다. 내 차는 바퀴 근처 아래 검은 플라스틱의 모서리나 타이어가 살짝 닿은 것 같다고 말씀하셨다. 경찰은 분쟁이 계속되면 사고 접수하라고 말하고 떠났다. 보험사들끼리 사고 확인과 협의가 시작되었다.
우리 보험사는 두 가지만 보면 된다고 했다. 상대 차가 멈춰 있었는가? 충돌이 있었는가? 나는 블랙박스도 없고 솔직히 말했다. 그 차는 멈춰 있었고 내가 움직였다고. 뭔가 닿는 느낌이 들어 차를 주차했다고(블랙박스 증거가 없으니 이것도 모호하다. 내 느낌이다.). 쌍방이 움직였다면 과실이 50대 50이지만, 내 차만 움직였다면 100% 내 잘못이란다. 못 가겠으면 차라리 그냥 서 있어야 한다고 조언해 주셨다. 한 시간 넘게 두 시간 가까이 실랑이를 벌이다 보험사는 현금지불이 더 낫다는 결론을 내렸다. 처음 상대방 차주의 말대로 10만 원을 이체하고 끝냈다.
집으로 오는 길에 손이 달달 떨리고 마음이 땅 밑으로 꺼졌다. 몇 번이나 옆 골목(더 넓은 길)으로 빠지려고 했었는데… 그 길로 가지 말았어야 했는데… 아까 그 마트에서 그냥 살 걸… 그깟 부추가 얼마나 한다고… 더 싸게 많이 사려고 단골 마트에 가려다가 그만… 후회가 거대한 쓰나미처럼 달려들었다.
식탁에 앉아 한참 동안 멍했다. 남편이 들어왔다.
“어떻게 해결 잘했어?”
“.....”
말할 기운도 없이 고개만 끄덕거렸다. 그리고 눈물이 흘렀다. 훌쩍훌쩍, 한참을. 몇 푼 아끼려다 사고를 내다니! 바보! 구질구질해! 내 삶이 너무 원망스러워! 내 마음은 갈기갈기 찢어지고 후회와 찌질함으로 부끄러워 몸 둘 바를 모르겠다.
워터파크에서 하루 종일 놀다 온 막내가 들어왔다.
“잘 다녀왔어?”
“네.”
남편과 딱 한 마디 대화가 오고 갔다. 무심한 녀석, 엄마 왜 그래 소리도 없다(영어공부로 나와 갈등 중 ㅠㅠ).
“괜찮아? 괜찮아. 그나마 다행이야.”
난 위로가 필요했는데, 남편은 한마디 말이 없다. 야속했다. 인정머리 없는 X.
혼자 선풍기를 독차지하는 남편이 얄미워졌다. 난 선풍기 위치를 바꾸고 회전으로 돌렸다. 그리고 베개를 다리 쪽으로 옮겼다.
평소라면 나는 모모 남편에게 사건의 전말을 한바탕 이야기했을 것이다. 난 무조건 양보를 하지만, 그 길은 옆에 큰 돌이 있었고 자전거가 세워져 있어서 미리 양보할 수도 없었다고. 하필 택시가 바짝 붙는 바람에 뒤로 물러설 수도 없었다고. 그분이 옆으로 조금만 더 비켜주었다면 얼마나 좋았겠냐고. 억울하다고. 요새 골목길을 너무 잘 다녀서 자신감이 있었던 건 사실이라고. 사이드 미러를 확인하지 않고 조심성 없이 직진한 내 잘못이라고. 결국, 시인했을 것이다. 더 조심해야겠다고 결론을 내리며 이만 하길 정말 다행이라고. 마침내는 나 혼자 반성하고 스스로 토닥였을 것이다.
그걸 하지 못한 아쉬움과 서운함이 남았다.
다음 날, 나는 남편 아침을 차려 주지 않았다. 아이들 밥만 챙기고 하루 종일 [폭삭 속았수다]를 봤다. 혼자 울고 웃었다. 그 안에 모든 이야기가 내 삶과 겹쳤다. 잊고 있었던 추억들이 다시 되살아나 내 곁에서 걸어 다녔다. 주옥같은 글귀들을 되새기며 엉엉 울다가 감동의 눈물을 찔끔거리며 푹 빠졌다 나왔다.
(해군 아들이 한 달간 넷플릭스를 구독해 나를 추가하고 공유해 준 덕분이다.)
남편과의 그 일은 개미 똥구멍 만도 못한 일이었다. 우리 둘 사이의 아이 셋을 낳고 지지고 볶은 서사와 역사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아름다운 드라마 작품 한 편에서 뜨거운 위로를 받았다. 글은 써서 뭐 할까? 공감과 위로를 나누며 나를 돌아보고 주변을 돌아보고 마음을 살피라는 것은 아닐까. 부끄럽지만 내 경험을 나누며 누군가에게 작은 여운이 남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내가 남편의 잘못을 들춘 꼴이었다. 남편이 받아들일 때까지 사과를 했어야 하는 쪽은 나였다는 것을 바보 같은 나는 이제야 깨닫는다. 글을 쓰며 알아간다.
남편, 미안해 하지만 당신도 너무해!
난 폭삭 속았수다를 하루 종일 보던 날. 남편이 퇴근하고 돌아왔을 때, 냉정을 되찾고 할 말을 했다! 아주 부드럽게. 아무리 싸웠어도 내가 아프거나 마음이 다쳤을 때, 위로가 필요할 때, 인정머리 없이 굴면 같이 못 산다고! 안 산다고! 듣거나 말거나 이불 덮고 취해서 누워 있던 남편에게 말이다. 그제야 난 속이 후련했고 우리는 세금 문제를 상의하며 자연스럽게 말을 했다.
(상대방 차주님, 죄송합니다. 제 잘못입니다. 사전 양해 없이 글을 쓴 점, 넓게 이해해 주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