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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만 있지 말고 내가 직접 하자!

남들 엿보기

by 꼬꼬 용미


2000년 1월 1일. 여수에서 밀레니엄 해돋이를 보러 갔다. 오동도에서 봤던 그 영롱하고 찬란했던 주홍빛 해를 잊을 수가 없다. 그리고 여수 개인 병원을 그만두고 서울로 무작정 올라갔다. 월세를 얻고 자취방에 중고 TV가 들어오던 날을 기억한다. TV 밑에 비디오 플레이어가 달려 있었다. 세상을 얻은 것처럼 신났던 것 같다. TV와 영화는 내 친구가 되었다. 가을동화를 봤던 기억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어릴 적부터 보는 것을 좋아했다. 맥가이버, 600만불의 사나이, 초원의 집, SOS해상 구조대, 전격 Z작전 등....

그 해 <인간극장>이 시작되었다. 일반인들의 삶을 고스란히 보여 주는 휴먼 다큐였다. 평범하지만 흔하지 않은 따뜻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꾸미지 않고 그대로 전파를 탔다. 나는 그 프로그램을 즐겨 보았다.

아! 이렇게도 사는구나. 이런 사람들도 있구나.


거기에는 소설 속 사랑 이야기가 있었고 슬픈 영화 같기도 했으며 다정한 가족애를 느낄 수 있었다. 없고 부족하지만 나누고, 춥고 시리지만 온기를 전했고, 아프고 돌봄이 필요하지만 남을 돌보며 살아가는 모습에 사람들의 가슴을 울렸다. 힘든 역경 속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고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에 큰 감명을 받았다. 허구가 아닌 실제, 리얼이라서 감동은 더 컸다. 당시 이금희 아나운서의 다정하고 부드럽고 달콤한 내레이션 목소리는 아직도 날 미소 짓게 한다.


인간극장은 인기가 아주 많다. 지금도 매일 아침 방영 중인 것으로 안다. 인간극장은 25년째 승승장구 중이다.

그러는 동안 리얼 다큐가 연예인들의 삶을 보여 주는 것으로 넘어갔다. 비슷한 콘셉트의 프로그램들이 많아졌다. 연애, 결혼, 육아, 여행, 요리, 일, 수다, 술자리 등 거의 모든 것들을 그대로 보여 준다. 그 옆에 있는 비연예인이 연예인이 되기도 하고 가족들도 인기를 얻는다. 그들이 무엇을 입고 먹고 어디에 살고 가는지가 커다란 이슈가 되고 우리의 욕망을 자극한다. 자연스럽게 보여 주며 광고효과를 노리는 듯하다.


우리는 그들의 삶을 엿보고 있다.

혼자 살면서 즐기고 하고 싶은 것은 다 하며 사는 사람, 젊어서 아끼고 절약하며 짠하게 사는 모습, 고독하고 쓸쓸하지만 씩씩하게 사는 모습, 눈코 뜰 새 없이 무지무지 바쁜 모습, 어마어마하고 의리의리한 집들까지. 나는 좀 불편하다. 시청률을 위해 엿보고 싶은 사람들의 심리를 정확히 자극하며 파고들었다는 것에 강한 의심을 품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일반인 부부의 은밀한 결혼생활, 갈등, 이혼 등 남들에게 보이고 싶지 않은 모습들까지, 심지어는 다투고 싸우며 때리고 욕하는 장면들까지 여과 없이 보여 주는 것이다. 아니 까발려진다고 할까. 자극적이다.

우리는 그들의 모습을 들여다본다. 마치 결혼이 지옥인 것처럼 혼자 사는 것이 답인 것처럼 느껴지게 한다.

나 역시 본다. 나는 기안 84를 좋아한다. 성공한 부자지만 지저분하고 털털한 그의 모습들을 숨기지 않고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 좋다. 그리고 만화를 그릴 때, 열여섯 시간 이상 집중하는 모습은 가히 존경스러울 정도였다. 어려운 마라톤에도 도전하고 태어난 김에 세계일주에서는 인류애, 동료애를 보여 준다. 잘 알지 못했던 만화가의 일상을 엿보며 그의 진면목을 알게 되고 그가 추구하는 삶의 방향과 소탈함이 흥미로웠고 그를 좋아하게 되었다.


그리고 소통이 안 되는 부부가 상담가를 만나 소통하는 방법을 배우고 달라지는 모습을 보며 내 일인 것처럼 웃기도 했다. 그렇게 해피엔딩이 되어가는 것을 보고 싶었던 거다. 그들을 통해서 나 자신을 돌아보고 남편과 아이들의 마음을 헤아리고 이해해야 하는 지점을 배우는 측면이 분명히 있다. 부부 이야기는 늘 흥미롭다. 부부관계는 매일 변화무쌍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부부의 싸우고 다투고 때리고 소리치는 장면을 자꾸 보니까 나도 그 비슷한 상황에 놓이거나 소통이 불가할 때, 나도 소리를 크게 지르는 것이었다. 나는 소름이 돋았다.

모든 것에는 장단점이 있겠지만, 부정적인 것은 기억에 오래 남는 것 같다. 자체 여과가 부족하거나 판단이 서지 않는다면 시청에 주의해야 할 것 같다.

앞으로는 뭘 더 보여 줄 것인가.




오래전에 막내가 초등학생일 때, 게임 유튜브를 즐겨보았다. 막 게임을 시작한 막내는 잘하고 싶었던 것이다. 유튜버는 게임 영상을 보여 주며 해설해 주고 게임에서 이기는 전략과 전술을 가르쳐 주고 있었다. 이를 본 둘째가 말했다.

저걸 왜 보고 있는 거야? 남이 하는 거 보지 말고 네가 직접 해!

둘째는 도대체 이해되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막내는 저 게임을 잘하려고 배우는 거야.”

내가 대변했지만, 100톤짜리 해머를 얻어맞은 듯 순간 멍했다.

그래 남들이 하는 걸 뭣 하러 보고 있는가.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면 되지! 직접 해보면서 배우는 거지.

미국 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칠 때 유튜브를 자료 삼는 걸 보고 나는 유튜브를 마치 학습기처럼 생각했었다. 영어를 배우기 위해 내가 좋아하는 요리와 뜨개질은 영어로 된 영상을 보며 배웠다. 처음엔 그랬다.

그리고 몇 년이 흘렀다. 유튜브는 더욱 커지고 넓어졌다. 사람들의 남는 시간을 모조리 빼앗아 갔다. 조금이라도 기다리거나 남는 시간에 책을 펴고 생각하며 읽는 것보다 늘 손에 붙어있는 휴대폰을 열고 보게 만들어 버렸다. 너무 쉽고 편하다. 그냥 누르고 보면 되는 것이다. 심지어는 책 읽어주는 것을 들을 수도 있다.

다른 사람들 이야기가 아니다. 내 이야기다. 큰 문제다. 일이나 스케줄이 없다면 하루 종일이라도 영상을 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러고 나면 눈이 침침하고 작은 건 더 안 보이고 해야 할 일들이 쌓여 있는 것에 후회와 실망감으로 몸서리를 치지만, 매일 같이 반복된다.


올해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도 못 구했고 물리치료사 아르바이트도 별로 없다. 나이 제한이 붙으니 더 주눅이 들어 시도조차 못 했다. 쓸모없는 인간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며 더 무력감에 빠지고 숏츠를 알고부터 더 깊숙이 빠져들고 말았다. 이건 아니다 싶었을 때, 문득 둘째 아들의 말이 떠올랐다.


보지 말고 직접해!


돈 버는 것만 가치 있는 것이 아니고 집에서도 쓸모 있는 인간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번쩍 들었다. 그리고 자꾸 보니까 따라 하고 싶어졌다. (왠지 주부 일만 하는 것은 죄책감이 들게 한다.)


나는 부분 청소를 시작했다. 10년쯤 살다 보니 곳곳에 찌든 때가 보인다. 하루는 싱크대 상판의 누런 때를 벗겨냈고 하루는 화장실의 안 보이는 구석을, 창틀을, 깨끗하게 청소했다. 아이들이 만든 장난감과 소품의 먼지를 걷어내고 바닥도 하얗게 닦았다.

그리고 막걸리 술빵에 도전했다. 어릴 때 간식으로 먹었던 엄마가 만들어 준 노란 술빵이 한 번씩 생각났는데, 내 숏츠에 많이 뜬다. 사람들과 나누어 먹을 생각에 대단한 자신감으로 용량을 2배로 늘렸다.


그런데 막걸리만으로 부풀 것이라 혼자 생각하고 이스트를 넣지 않는 바람에 빵은 실패했다. 부풀지 않고 익지도 않았다. 결국 오븐에 넣어 강제로 구웠다. 갓 구웠을 때는 겉바속촉 했으나 이내 딱딱해져 버렸다. 그래도 버리지 않고 남편과 나는 아침으로 데워 먹고 있다. 다 먹고 나면 다시 도전해 볼 것이다.


그리고 한 번도 만들어 본 적 없는 기정떡(증편)찹쌀떡식혜에 도전해 볼 계획이다.



모든 것에는 장점과 단점이 있다. <인간극장>은 하루하루를 굳건히 살아내면서 웃음과 위트가 살아 숨 쉬는 우리들의 이야기라서 위로가 되었다. 어려운 가운데 사랑과 희망이 있어 자꾸 보고 싶었던 것 같다.


내 아이들을 키우며 육아에 푹 빠져 있을 때, 예쁜 아이들이 태어나 자라는 모습들을 지켜보며 간접 경험을 했고 동병상련의 마음이 든 것도 사실이다. 육아가 한창일 때 세 쌍둥이, 네 쌍둥이를 키우는 씩씩한 엄마들의 모습을 보며 나만 힘든 게 아니라는 위로를 받았다.


아기가 어려서 바깥에 잘 나가지 못할 때, TV는 세상과의 통로가 되어주었다. 지금은 유튜브가 핫한 소식과 이슈들을 신속히 알려주는 매개체가 되었다.


그러나 뭐든 과한 것은 좋지 않다!


남들이 하는 것을 보고만 있을 것인가 내가 할 수 있다면 직접 해보는 것이 더 재밌고 좋지 않을까. 설령 생각대로 되지 않고 실패를 할지라도. 그것들이 쌓여 내게는 실제적이고 소중한 경험으로 남을 테니까.

그 과정을 통해서 나를 돌아보고 좋은 경험은 가슴에 품고 쌓이면 나는 또 성장하지 않을까.


보고만 있지 말고 내가 직접 하자!

보고만 있지 말고 내가 직접 하자!


보고만 있지 말고 내가 직접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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