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하고 싶은 것은 하면서 살겠어!
<내가 하고 싶은 것은 하면서 살겠어>, 브런치북 연재는 처음 해 보았다.
그것은 글 한 편에서 시작되었고 아주 즉흥적이었다. 밑천 하나 없이 시작한 연재는 궁색하기 짝이 없었다. 미리 써놓은 원고가 없다는 것은 그야말로 맨땅에 헤딩이고 무모한 도전이었다.
그러나 무엇이든 할 수도, 쓸 수도 있다는 것이기도 했다. 계획 없이 무작정 뛰어드는 것은 어쩜 내 스타일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브런치 작가님들의 응원이 없었다면 연재는 상상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몇 달 전에 세면대 수도꼭지가 고장 났었다. 남편은 기존 수도꼭지보다 작은 것을 사 왔다.
“너무 작은 거 아니야?”
내가 의문을 제기했다.
“우리 집에는 이 정도가 어울려.”
남편이 대답했다.
세면대를 볼 때마다 왜소한 수도꼭지가 왠지 초라해 보였다. 그리고 더 작고 더 저렴한 것이 우리 집에 더 어울린다는 남편의 말은 내게 던지는 말처럼 느껴졌다.
거울 속에 비친 나는 초등 때 아들이 입던 옷들을 입고 있었고 부스스한 머리에 잔뜩 부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내게는 비싼 집이나 예쁜 목걸이나 명품 가방은 어울리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처럼 들렸다. 잡은 물고기에 먹이를 주지 않는다는 말처럼 나는 이미 잡은 물고기였다. 아무것도 주지 않아도 부지런히 살림하고 헤헤거렸던 나는 너무 싼 티 나는 삶을 산 것이 아닌지, 느닷없이 불끈 올라왔다.
이 브런치 북은 전처럼 살지 않겠다는 다짐이었다. 가만히 있지 않겠다는 나의 진심이었다. 평생 너무 아끼고만 산 탓에, 이제는 쓰면서 살아도 되지 않을까. 달라지는 삶을 꿈꾸며 글을 연재했다.
추운 단독주택에 살면서 겨울 목욕은 너무 추웠다. 샤워하듯 후다닥 추위를 이겨가며 목욕을 해치워야 했다. 때를 밀던 습관으로 겨울 화장실에 오래 머물러야 했던 나에게는 곤혹이었다. 목욕탕과 찜질방을 언제 가봤는지 모르겠다고 생각하며 벼르고 별러 혼자 대중목욕탕에 갔던 기억을 잊지 못한다. (1화 까치설날에 대중목욕탕에 갔다)
나이가 들어 이제 온도가 비슷해진 남편에게 그 경험을 공유했더니 쓰레기를 태워 만든 열을 이용하는 저렴한 목욕탕, 찜질방을 알아 왔다. 그곳에서 남편과 데이트를 즐기게 되었다. 추운 겨울 온몸이 노곤해지는 잠깐의 여유는 둘이 함께여서 더 따스했다. 한 번, 두 번, 그 여운은 차츰 줄어들고 일상이 되었으며 우리 둘만의 휴일 데이트 코스가 되었다. 이제는 온 가족이 함께 찜질방에서 모이는 상상을 해 본다. (6화 찜빌방 데이트를 했다)
자질구레하고 소소한 작은 것들을 생략하며 외면하고 살았다. 없어도 된다고 생각했던 작은 소비가 생활의 편리함과 일상의 미세한 만족을 불러일으켰다.(2화 IKEA 나들이 쇼핑을 했다) 이제 나는 더 편리한 것들을 찾아 바꾼다. 층간 소음에서 자유로운 우리 집, 의자 밑에 가드 스티커 하나만 붙였을 뿐인데 의자 밀리는 소리가 줄고 의자가 부드럽게 밀리는 경험을 하고 있다. 늘 수납이 부족해 애를 먹었지만, 붙박이장을 들여놓고 어느 정도의 수납을 해결하고 매일 붙박이장을 쳐다보기만 해도 뿌듯하고 만족스럽다.(10화 십 년 묵은 때를 벗겼다)
집이 너무 좁다고 불만스러웠지만, 몇 년만 있으면 아이들이 모두 독립해 나갈 것이다. 우리 부부의 공간은 자연스레 넓어질 것이다. 오히려 텅 빈 공간으로 외로워질지도 모른다. 지금 다닥다닥 붙어 복작거림을 사랑하기로 한다.
한 달 이상을 기다려 마음에 드는 펜던트를 받은 날, 남편은 말했다.
“좀 작은 데? 목걸이 줄이 좀 과해. 얇은 줄까지 세트로 샀어야 해.”
예쁘다는 한마디면 충분한 것을 남편은 또 T기질을 발휘한다.
“아니! 난 튼튼한 내 줄이 더 좋아. 꽃 모티브라 아주 마음에 들어. 무게가 안 나가서 자꾸 빙빙 돌아가지만, 괜찮아. 예쁘잖아.”
자기 선물값에 맞추느라 펜던트만 산 건데 무슨 소리야. 난 만족해. 아주 좋다고! 남편이 비싸게 주고 샀던 볼 귀걸이는 환불했고 18K로 거의 반값에 귀걸이까지 장만했다. 올 생일 선물은 야무지게 받아 챙겼다.(15화 글을 쓰다 보니 내가 보인다) 남편이 내 맘을 알아주지 않을 때, 굳이 말로 표현해야 한다.
정말 갖고 싶은 것은 결국 사고 마는 것이다. 빚을 내서 사는 게 아니라면 진즉 사서 쓰는 것이 현명할 지도 모르겠다. 몇 년 동안 머릿속에서 동동 떠다녔던 것들을, 사고 싶지만, 갖고 싶지만, 가격이 마음에 들지 않아 때를 기다렸던 것 같다.
지난 주말에 아들 책가방을 사러 백화점에 갔다. 마침 이불이 빅 세일을 하자, 몇 년째 사고 싶었던 이불 세트를 결제하고 왔다. 몇 번을 고심한 끝에 남편의 적극적인 찬성에 힘입어 사고 말았다. 사치품도 아니고 필수품인데 왜 그렇게 망설였을까. 쓰던 이불이 찢어진 것도 아닌데, 죄책감이 들었던 것 같다.
하지만, 벌고 모으고 쓰지 않으면 삶의 재미가 없다. 얘들 학원비보다 못한 가격에 쩔쩔매는 신세에서 이제는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았다. 돈보다는 마음이 중요하다.
누군가 말려도 해 보고 싶은 것은 해 봐야 한다. 기어이 장미와 채소 모종을 사 키웠다.(9화 다시, 텃밭을 가꾸기로 했다) 상추와 적겨자채, 루꼴라는 쏠쏠하게 따먹고 풍성하게 자란 바질은 바질 페스토를 만들었다. 매번 사 먹는 바질 페스토를 다이소에서 1,000원에 산 바질 씨로 키워냈다는 것이 스스로 대견했다. 겨우 주말에 식사를 같이 하는 남편이 피자에, 스테이크에 바질 페스토를 발라 먹는다. 비싼 잣 대신 호두를 사용해 만들었는데, 다음엔 시어머님이 텃밭에서 키워 보내 주신 국산 땅콩을 이용해 바질 페스토를 만들어 보고 싶다.
실은 채소에 신경을 쓰다 수국 한 그루를 잃었다. 올해 무더운 날씨를 끝내 이기지 못하고... 꽃을 피우지 못했던 수국을 1미터쯤 멀리 두었더니 말라죽고 말았다. 나의 품은 그리 넓지 않은가 보다. 신경이 다른 데로 옮겨가면 그전에 알던 것들은 잊어버린다.
우리 부부는 말 없는 모모 남편과 수다쟁이 촉새의 만남이다. 한 번씩 삐걱대기도 하지만 어느 날 애순과 관식이 되어 낭만을 붙잡고 사는 거였다.(8화 이건 <폭삭 속았수다>의 한 장면인데?)
매일이 꽃밭일 수는 없었다. 사는 것이 다 그렇다는 걸 브런치 마을의 수많은 글을 읽고 배웠다. 아들이 깔아놓은 꽃밭이 내 것은 아니어도 나는 그 꽃밭에서 애벌레들과 나비들을 키우고 꽃을 보면서 행복하게 산다.(24화 귀한 아들이 깔아놓은 꽃길) 군대 간 아들을 그리워하며 학교에 다니는 둘째, 셋째를 생각하면서. 하루의 여백을 몇 평도 안 되는 그 작은 땅에서 채우고 즐거움을 느낀다.
남편이 출장을 가면서 나더러 따라갈 거냐고 유혹한다. 자기 일하는 동안 내가 좋아하는 서울 구경 실컷 하고 자고 가란다. 나도 진심 그러고 싶었다. 그러나 일하는 남편 두고 혼자 즐겁고 싶지가 않았다. 게다가 고1, 고3을 두고 어딜 갈 수 있겠는가. 나를 생각해 준 천진하고 속 없는 남편에게 말은 못 하고 그냥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직은 우리 새끼들을 더 키워야 한다. 조금 더 기다려야 한다.
운동만 하다 다시 공부를 시작한 막내는 지난 시험에서 수학이 껑충 뛰는 성과를 처음 맛보았다. 밸런스를 위해 영어 공부를 해야 한다는 내 말은 귓등으로도 듣지 않고 고집을 피운다. 그리고 좋아하는 과학에 목을 맨다. 심지어 재밌어하고 배운 것을 줄줄 읊어대고 내게 문제를 낸다.
좋아하는 것은 누구도 이기지 못한다. 그런 막내를 위해 난 입을 닫고 공부의 주도권을 막내에게 넘기기로 한다. 고3 둘째도 원하는 대로 살아보는 것이 백 마디의 내 잔소리보다 더 값질 거라고 믿어 보기로 한다. 간절한 마음으로 나는 행주를 빨며 기도하고 응원하기로 했다.(7화 행주를 빨았다)
그리고 내게 말한다.
“너나 잘하세요~”
16화 나를 쪼여 볼 결심에서 나는 운동하고 커피 끊는 것을 약속했었다. 결과는 반만 성공이다. 커피를 끊는 것과 6시 이후 먹지 않기는 잘 지키고 있으나 매일 운동(윗몸일으키기 100개, 스쾃 100개)은 한 달 반 동안 열심히 지키다가 지금은 중단했다. 매일 한다는 것이 어려운 것인 줄 알고 있었으나 나를 시험해 보고 싶었다. 그러나 역시 이번에는 실패다. 그래도 2Kg은 감량해서 3Kg만 더 감량하면 될 것 같다.
월, 수 줌바는 열심히 재밌게 하고 있다. 호르몬의 영향인지 탄수화물이 너무너무 당기는데, 나를 쪼여 볼 결심은 브레이크가 되어 주었다. 그 결심이 없었다면 살이 얼마나 더 쪘을지 아찔하다. 뭔가를 계획하고 목표를 세우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시 한번 깨닫는다. 연재가 끝나도 식이조절과 체중감량은 계속될 것이다.
그리고 올 초에 세웠던 영어 공부도 며칠하고 손도 못 대고 있다. 하반기에는 결심을 다잡고 지키려고 노력해야겠다. 뭉뚱 거리지 않고 영어책, 딱 한 권 끝내기가 좋겠다.
내 글을 통틀어 3화 혼자 여행, 안 했으면 어쩔 뻔했냐고 편의 조회수가 제일 잘 나왔다. 서울 광화문으로 가 희망의 씨앗을 보고 있던 날, 1,000회, 2,000회 쭉쭉 올라가더니 7,000회를 돌파했다는 알림을 받았다. 얼마나 놀라고 흥분되던지.... 검색 사이트 다음, 여행 맛집 코너에 내 글이 올라왔다고 남편이 알려 주었다. 그러나 이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나 혼자 여행은 익숙하지 않다. 아들을 군대에 복귀시키는 임무를 갖고 목포에 내려갔고 내 아들 제대로 안아 보지도 못하고 아쉽게 헤어진 것이 혼자 여행을 할 수 있게 했다. 나에게 혼자 여행을 계획하고 떠난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결심이다. 불안과 두려움이 많기 때문이다. 나는 어디를 가든 누구랑 가는가 가 더 중요하다. 혼자 즐기지 못하고 둘이 떠 있는 오리만 보게 된 것도 바로 그 이유다.
전주 새활용 센터에서 폐털실을 이용해 청바지를 새활용하는 것은 무척 재미있었다.(12화 작은 힘이라도 보태고 싶어서) 제타 안 선생님과 후속 만남을 갖고 청바지를 청치마로 만들어 수선 뽐내기 콘테스트에 제출도 했다. 아직 결과는 모른다.
그리고 드디어 재봉틀을 사기로 마음먹었다. 멋진 새 옷을 한 벌 사서 입는 게 나을지, 만들고 싶은 욕망과 재미를 충족하기 위해 재봉틀을 사는 게 좋을지, 잠시 고민했지만 나는 재봉틀을 선택했다. 올해 설날 남편과 나는 서로 세뱃돈을 나눠 가졌다. 그 돈을 어디에 쓸지 아직 정하지 못했는데, 재봉틀을 사기로 한 것이다. 버려질 뻔한 옷들에게 새 생명을 주고 싶기 때문이다. 앞으로 나의 취미가 될 것 같다.
몇 년 전에 고사리 같은 손으로 세 아들들이 모은 돈 8만 원을 아직도 간직하고 있다. 옷 만들기를 배우던 엄마가 재봉틀을 갖고 싶어 한다는 걸 어떻게 알았을까. 재봉틀을 사라고 생일 선물로 돈을 모아 준 것이다. 아이들의 마음을 모아 이제 나의 오랜 소망을 실현해 볼 생각이다.
이쯤에서 나는 연재를 끝내려고 한다. 하고 싶은 것의 목록은 아직 남아 있으나 진정으로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했는지 의문을 품고 있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난 아직도 잘 모르겠다. 길을 잃은 개미처럼 같은 곳을 돌고 있는 것은 아닌지 난 오늘도 생각에 잠긴다.
우리 집에는 이 정도가 어울린다는 남편의 말은 나를 향한 것이 아니었음을 안다. 초라한 나 자신을 보며 스스로 위축되었다는 것도. 연재를 하는 동안 소소하지만, 행복했다. 이제는 어깨를 바짝 필 수 있을 것 같다.
연재라는 툴로 마감의 압박을 느끼며 새로운 글쓰기의 맛도 보았다. 신나고 즐거운 경험을 선사해 준 브런치스토리에 감사한다.
시간이 흘러 기회가 된다면 보다 액티브한 것들을, 가슴 깊이 묻어 두었던 것들을, 진짜 하고 싶은 것들을 꺼내어 도전해 보고 싶다! 언젠가 나비처럼 훨훨 날아보고 싶다!
그동안 제 글을 읽고 좋아요와 라이킷으로 응원해 주신 모든 작가님들께 감사드립니다~
*대문사진- 마당에서 키우는 암끝검은표범나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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