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받아들이다
얼마나 아플까, 얼마나 힘들까.
아직 더운데, 어떻게 씻을 거며 옷은 어떻게 갈아입고 밥은 어떻게 먹을 건가. 잠은 편하게 잘 수 있을까. 아들을 못 봐서 걱정만 앞서는데, 아들은 별일 아닌 듯 말한다. 엄마는 전혀 알 수 없는 미지의 세계 일이라 그저 받아들이라고만 한다.
매일 아침 현관문을 열고 나가면 나비 서너 마리가 인기척에 놀라 날아오른다. 이제 막 번데기에서 나온 깨끗하고 아름다운 나비! 주위를 날다가 다시 내려앉으면 난 조심스럽게 다가가 사진을 찍는다. 막 깨어난 나비가 알을 낳는 시늉(연습)을 한다는 것도 아들에게 배웠다.
첫째 아들의 사춘기는 조용했다. 기숙사가 있는 중학교에서 5일을 살고 돌아오면 자기 방에 들어가 나오지를 않았다. 시끌벅적 사람들과 하루 종일 함께 하는 것이 버거웠을 거라는 걸 나중에야 알았다.
첫째는 우리 집 여행을 주도하고 계획하는 인물이었다. 그런데 사춘기에 들어서자, 아무 데도 가지 않았고 방문을 잠갔다. 아들의 방문 앞에서 이야기를 건네야 하는 것은 어쩐지 자존심이 상하고 낯설었지만,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했다. 아들이 방문을 잠그는 버릇은 아직 유효하다. 셋 다 그런다.
그리고 사춘기를 마치고 스스로 방문을 열고 나왔을 때, 첫째는 마당에 풀 세 포기를 심었다. 인터넷으로 주문한 풀이라는 데 무엇인지 묻지도 않았다. 그냥 방문을 열고 나왔다는 것에 감사했던 것 같다. 아들의 풀은 영역을 넓혀갔다. 마당 한 편을 덮을 만큼 자랐으며 꽃을 피웠다. 그리고 그 꽃이 미국제비꽃(종지나물)이라는 것은 5년 후에 알았다.
드디어 암끝검은표범나비가 우리 집으로 날아왔다. 첫째는 미국에 살 때부터 나비를 잡으러 다녔다. 한국에 와서도 나비알을 찾으러 산에 올랐고 팽나무 아래에서 애벌레들을 찾아왔다. 나비 사진을 찍고 키웠으며 이제는 나비를 집으로 불러들인 것이었다. 그 미국제비꽃풀 냄새를 맡고 5년 만에 진짜로 나비가 왔다. 그리고 알을 낳았다.
그날 이후, 해마다 나비가 날아온다. 미국제비꽃풀에 알을 낳고 가면 애벌레들이 종지나물을 먹고 무럭무럭 자라서 나비가 되는 것이다. 이 동네 암끝검은표범나비는 우리 집에서 다 키워 내보는 것이다. 우리만 안다. 얼마 전에 잔디 사이 디딤돌 위에서 헤매고 있는 애벌레를 발견하고 먹이가 많은 곳으로 옮겨주었다. 혹시 나비나 애벌레가 거미줄에 걸릴까, 거미줄을 거둬주고 무더워에 풀이 말라죽을까 물을 흠뻑 주기도 한다. 행복한 나의 일이다.
“마당에 풀 좀 베어도 돼? 종지나물은 빼고 이쪽만 벨게.”
주말에 남편이 묻는다. 마당에 잔디와 풀이 숲처럼 자라 있다.
“안 돼. 남방부전나비도 매일 태어나고 알을 낳는단 말이야. ”
서당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하지 않았던가. 나도 나비박사 아들을 키우면서 서당개처럼 나비 풍월을 좀 읊는다.
아들이 깔아놓은 꽃길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니었다. 암끝검은표범나비를 위한 것이었다.
사춘기 터널을 지나온 아들은 한 뼘쯤 더 자라 있었다.
고등학생이던 첫째를 기다리다 설거지도 못 하고 거실 바닥에서 잠이 든 적이 있다. 조용히 들어온 첫째가 나 대신 설거지를 말끔히 하고 나를 깨운다.
“엄마, 나 왔어요. 들어가서 주무세요.”
한층 다정해졌다.
그리고 난 생각했다. 우리 엄마처럼 집안일을 억지로 시키지 않아도 아이들은 자라면서 스스로 할 줄 아는 것이라고. 굳이 아들들에게 집안일은 시키지 않는다. 실은 공부하라고 안 시킨다. 하지만, 아니었다. 시키고 가르쳐야 하는 아들도 있다. (공부하기 싫으면 집안일이나 하라고 말하고 싶다.)
얼마 전에 첫째가 휴가 나와서 애벌레 한 마디를 잡아 놓고 갔다. 줄점팔랑나비라나? 나는 처음 보는 애벌레였다. 식물 이파리를 돌돌 말고 있어서 애벌레는 볼 수 없었다. 잘 키워서 나비 사진을 찍으라는 이야기다. 아들은 늘 숙제를 남겨 놓고 간다.
일주일 뒤에, 남편이 거실에 애벌레가 기어 다닌다고 나를 깨운다. 줄점팔랑나비의 애벌레는 이렇게 생겼구나. 그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를 제자리에 두고 마당에서 강아지풀이랑 길쭉한 풀들을 가져다주었다.
저녁때, 애벌레가 또 탈출해 거실 바닥을 기어 다닌다. 안 되겠다. 애벌레는 풀이 다 말라서 먹을 게 없다고 온몸으로 말하고 있었다. 그리고 강아지풀 따위는 먹지 않는다고 시위하는 것이다. 줄점팔랑나비 애벌레의 기주식물은 큰기름새라고 한다. 남편에게 SOS를 쳤더니 타 지역 출장 중이다. 그래도 식물 이름을 듣고 출장지 주변에서 식물이 있으면 뽑아 오겠다고 한다.
“난 식물을 잘 구분 못 하는데?”
그래도 내가 나서야 했다.
난 아들이 보내 준 사진을 들고 천변으로 나갔다. 벼과의 큰기름새를 어떻게 찾을 것인가. 게다가 밤인데, 휴대폰 불을 켜고 풀숲을 기웃거린다. 뱀이나 벌레들이 나올지도 모르고 그 많은 풀들 사이에서 큰비름새를 찾으라니…. 벼처럼 기다랗지만 훨씬 커다란 잎이 아주 많다. 하지만 이건 갈대인지 억새인지 도통 모르겠다. 네이* 어플에서 사진을 찍어 이름을 물어봐도 매번 다르게 말한다. 아들은 기계는 엉터리니 믿지 말라도 한다. 아들과 사진을 주고받으며 확신에 차지 않았지만, 열심히 풀들을 뽑아 왔다.
우리는 안전하게 내가 뽑아온 풀과 남편이 회사 주차장에서 뽑아 온 풀을 함께 화병에 꽂아 애벌레를 옮겨주었다. 먹을지 안 먹을지 궁금해하는 내 속도 모르고 애벌레는 이틀 동안 꼼짝 않고 잠만 잔다. 잎을 말아 숨지도 않는다. 죽었나? 그리고 사흘째 아침, 애벌레는 잎 속으로 숨어 보이지 않고 똥들이 사방으로 떨어져 있다. 난 웃었다. 잘 살아 있군.
아들에게 영상을 보냈더니 줄점팔랑나비가 아니고 산줄점팔랑나비 같다고 한다. 그리고 식물 공부한 아빠의 풀을 먹은 것이라고 아빠 편을 든다. 어쨌든 남편에게 도움을 청한 사람은 나라고! 문제해결은 내가 했다고! 우기며 기어이 인정을 요구했다. 아들은 나더러 애벌레 잘 키운다고 칭찬을 하지만, 나는 우리 아들 키우는 것이라고 말한다. 아들 아니면 절대 하지 않았을 일이라고.
“너도 금명이처럼 귀한 아들이야."
하고 싶은 것 많고 사고 싶은 것도 많은 귀하디 귀한 우리 아들! 이 말 끝나기가 무섭게 아들이 망설이듯 머뭇거린다.
"나 키우기는 쉽지 않네.... 엄마, 나… 네 번째 손가락 골절됐어요.”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왜? 어쩌다? 언제?”
군대는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좋은 소식보다는 다쳤다거나 잘못되었다는 나쁜 소식만 들려오기 때문이다. 육지도 아닌 해상에서 생활하고 훈련을 하자면 얼마나 더 어려울 것인가. 늘 조마조마했는데....
해군 아들은 배를 고치기 위해 목포에서 진해로 가 있었다. 정기적으로 점검을 해야 한다고 한다. 그 작업도 아들들이 직접 한다고 얼핏 들었다.(보안상이라고 자세히 말해주지 않는다. 아마 걱정할까 봐 그러는 것 같기도.) 배에 붙은 따개비를 떼어내고 샌딩도 하는 모양인데, 새로운 분야를 알아가고 배우는 것이라고 아들은 긍정적으로 말한다. 애써 힘들지 않은 척을 하지만, 엄마 마음은 아프다.
이병 때는 좁은 배에서 걷기만 해도 부딪치는 것이 다반사라고 한다. 다리 밑으로 상처가 꽤 있다는데, 그 말만 듣고도 마음이 아렸다. 다리를 직접 보자는 말은 못 하겠다. 아니 보지 않는 것이 나을 것 같았다. 일병, 상병으로 올라가면서 배 위를 걷는 것도 익숙해지는 모양이다. 이제 곧 병장을 달 거라고 한다. 얼마 남지 않았다고 내 마음을 다독이며 기다리는데, 골절이라는 말에 대포알이 내 발등에 떨어진 느낌이었다.
배 수리가 끝나고 포탄을 다시 옮기는 작업에서 사고가 난 것 같았다. 아들이 그 작업을 주도적으로 하고 있으며 많은 부분을 감당하는 모양이었다. 너무 무리한 것은 아닌지.... 화가 났다. 좁은 배로 물건을 나르자니 장비를 이용할 수도 없다고 하는데, 포탄의 무게는 무려 30킬로그램이란다. 포탄을 맨몸으로 지어 날랐다는 건지. 폭발하면 어떡하냐는 물음에 아들은 절대 그럴 일은 없다고 대변한다.
군대 안의 세계를 여자로서는 전혀 알 수가 없기에 또 가슴이 쿵 내려앉는다. 걱정 어린 추궁에도 아들은 해군을 두둔한다. 일요일에 민간 병원에서 진료를 받겠다고 하면서도 우리는 절대 오지 말라고 한다. 목요일에 다쳤다는데 토요일에 말하다니, 군에서 직접 알려줘야 하는 것 아닌가. 여러 가지 의문과 물음들이 머릿속을 어지럽힌다.
끝내 동료와 병원에 다녀왔고 골절이긴 하나, 수술보다는 그대로 잘 붙게 두는 편이 나을 거라는 소견을 전해왔다. 아들은 내가 너무 놀랄까 싶어 엑스레이 사진도 보내주지 않았다. 그저 불행 중 다행이라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아무리 손끝이라도 아들 손가락에 영구장애가 남을지도 모르기 때문에 당분간 훈련과 일에서 열외 시키기로 한다고 들었다. 중요하고 많은 역할을 하고 있던 아들의 빈자리를 누군가는 또 메꾸어야 할 텐데. 모두가 다 괜찮을지 또 걱정이다.
금쪽같이 귀한 내 새끼를 군에 보내 놓고 노심초사 하루도 편할 날이 없는데, 제발 아들의 손가락 뼈가 단단하게 잘 붙으라고 그리고 무사히 건강하게만 제대할 수 있길 마음속으로 기도한다. 아들 둘을 더 군에 보내야 하는 엄마로서 마음이 무겁다. 내가 대신해 줄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들은 군대 안에서 또 성장하고 있는 중이라고 나는 그렇게 믿기로 했다. 작은 자기 방에서도 성장해 밖으로 나왔듯이, 많이 배우고 더 자라서 넓은 세상 밖으로 날 수 있기를~ 더 높은 꿈을 꿀 수 있기를~ 희망해 본다. 지금은 날기 위해 쉬면서 잠시 날개를 접고 있다고 아들을 믿어 보기로 한다.
그리고 나는 내 자리에서 아들이 벌여 놓은 나비와 애벌레들을 키우며 그저 받아들이고 기다리자고 다짐한다.
*주의!
줄점팔랑나비 애벌레인지, 산줄점팔랑나비 애벌레인지 비슷해 보이지만 다르답니다. 이 애벌레만 보고는 확신할 수 없었다는 점을 미리 말씀드립니다. 아들이 줄점팔랑나비가 아니고 산줄점팔랑나비 애벌레라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