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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옥 Apr 01. 2024

작은 꽃

  


  얼마 전 난蘭 화분에 물을 주다가 새싹과는 다르게 모래흙 속에서 뾰족이 내미는 싹을 발견했다. 이게 뭐지 하면서 자세히 들여다보니 꽃대였다. 

  몇 년 전에 동생이 나누어준 양란 한 촉, 화사하고 예쁜 꽃을 한 해 피워내더니 다음 해부터는 감감무소식이었다. 다시는 꽃을 피우지 않을 것 같아 버리려고 하다가 동생이 준 거라 초록 잎이라도 볼 양으로 그냥 두었는데, 너무 반가웠다. 이 난은 하나의 긴 꽃대에 여러 송이의 자주색 꽃이 줄지어 피어난다.     

  아직은 겨울이라 추울 것 같아 거실로 옮겼다가 온도가 변해서 꽃대가 놀랄까 봐 다시 베란다에 내놓았다가 부산을 떨며 하루에도 몇 번씩 들여다보아도 꽃대는 꼼짝도 안 하는 듯했다. 모든 게 때가 있는데 반가운 나머지 성급했나 보다. ‘그래, 필 때 되면 어련히 꽃이 피겠지.’ 하고는 무관심했다. 아니 무관심한 척했다고 하는 게 맞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자 참지 못하고 기어이 화분 앞에 쪼그리고 앉아서 얼마나 올라왔나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런데 양란 이파리들 사이로 보랏빛이 살짝 보였다. 

  ‘아니, 이건 제비꽃이 아닌가!’

  나는 화려하고 탐스러운 꽃봉오리를 기다리느라 내가 좋아하는 제비꽃 새순이 그곳에서 자라고 있는 줄도 몰랐다. 꽃을 보고 나서야 이 작은 생명이 무엇을 했는지 알게 된 것이다. 양란 잎 사이로 햇볕을 쬐고 떨어지는 물을 마시며 보랏빛 작은 꽃을 피워낸 것이다. 

  그저 화분 흙 속에 딸려 온 잡초 씨앗의 싹이겠거니 하면서 존재조차도 눈여겨보지 않던 여린 싹은 그곳에서 제 할 일을 다 했다는 듯이 앙증맞게 방긋 웃고 있었다. 순간 부끄럽고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추운 겨울의 끝자락에서 크고 탐스러운 꽃보다 작고 가녀린 꽃들이 먼저 봄을 알려준다. 작아서 잘 보이지 않다가 어느 날 보면 무리 지어 피어있는 걸 보게 된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하나하나가 너무도 어여쁘다. 이름도 정겨운 양지꽃, 깽깽이풀, 봄까치꽃, 제비꽃, 등등 이 작은 꽃들이 겨울을 밀어내고 햇볕을 우리 가까이 끌어당겼음을 잊고 지낼 때가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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