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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옥 Apr 28. 2024

9회 말 2사 후

  

  타 아 악!

  “잘 맞은 타구입니다. 넘어갑니다. 넘어갑니다. 호 옴 런입니다.” 

  “강민호의 그랜드슬램입니다.”

  야구장의 환호성이 텔레비전 밖으로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사직구장의 롯데 팬들은 머리에 오렌지색(쓰레기봉투) 모자를 쓰고 모두 일어서서 두 팔을 흔들며 강민호 송과 부산갈매기를 부른다.

  ‘롯데엔 강민호, 롯데엔 강민호, 오 오 오 오 ~ 롯데엔 강민호.’

  프로야구 개막 초반인데 오늘 하루 홈런을 3개나 친 강민호가 당연히 스타다. 아마 롯데 팬들은 치맥(치킨과 맥주)을 즐기며 오늘의 경기를 두고 온갖 이야기를 나누면서 즐거워하고 스트레스를 풀 것이다. 나도 기분이 좋았다. 야구가 끝나고 나서도 스포츠 채널에서 하는 종합 중계를 돌려가면서 보고 또 봤다.     

  내가 야구를 좋아한 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아무리 봐도 무슨 뜻인지 알 수 없는 야구용어들 야구의 룰, 그냥 아 저게 홈런이구나 하는 정도만 알았다. 진득하니 앉아서 야구 중계를 본 일은 더더구나 없었다. 워낙 야구를 좋아하는 남편 때문에 프로야구 시즌이 되면 우리 집 텔레비전은 야구중계를 하는 채널로 고정되지만 나는 그것이 탐탁하지 않고 짜증이 났었다. 내가 좋아하는 프로그램을 볼 수가 없기 때문이었다.

  어느 해 그에게 몹시 힘든 일이 생겼다. 내가 어떤 말을 해줘도 위로가 될 수 없는 그를 보면서 함께 산에도 가고 산책도 하고 고향 이야기도 했지만 그런 것을 매일 함께할 수도 없을뿐더러 마음 편한 위로가 되지 못했다. 그나마 그가 좋아하는 야구 중계를 볼 때만은 아무 생각 없이 편안해 보였다.

  어떻게 하면 남편이 잠깐이나마 더 즐겁게 지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늘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작정을 하고 야구경기를 보고 있는 그의 옆에 앉았다.

  “방망이 들고 있는 사람은 타자, 공 던지는 사람은 투순데 공 받는 사람   은 뭐라고 불러?”

  하면서 중계방송을 보고 있는 그에게 슬그머니 물었다.

  “포수”

  텔레비전에 눈을 고정한 채 하는 짧은 대답이었다.

  그 시간 이후부터 나는 그의 야구친구가 되었다. 

  외야수(外野手)나 내야수(內野手), 사사구(四死球)나 삼진(三振) 등 많이 사용되는 용어들이 자연스레 귀에 들어왔다. 안타가 나오면 나도 같이 소리를 지르게 되었다. 도루의 묘미나 적시타의 쾌감도 함께 느끼면서 처음 의도와는 다르게 나도 야구경기를 즐기게 되었다. 야구를 보면서 한 사람이 아무리 잘해도 팀이 서로 호응하지 못하면 절대로 이길 수 없다는 것과 하찮은 실책 하나가 팀을 패배로 몰아갈 수 있는 것도 알게 되었다. 잘 모르는 상황이 생기면 늘 남편에게 질문해서 그가 야구해설가가 될 수 있게 했다. 야구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는 순간만큼은 그도 얼굴에 생기가 돌았기 때문이었다.     

  야구는 아홉 명의 선수가 상대 팀과 함께 9회의 경기를 한다. 

  한 이닝(inning)에서 투수와 3명의 타자가 대결을 하면서 승부를 가르는 게임이다. 물론 타자를 아웃시키지 못하면 타자 전원 일순(一巡)하는 경우도 있다. 초반부터 잘하는 팀이 이기기도 하지만 잘 이기고 있다가 9회 말에서 두 명의 타자까지 아웃시켜 놓고 질 수도 있다. 그래서 ‘야구 모른다. 야구는 9회 말 2사 후부터’란 말도 있다. 때론 지긋지긋한 연장전 12회까지 가기도 한다. 온갖 기술과 에너지를 다 쏟아붓고도 무승부가 될 때도 있다.

  야구에서 홈런이 많이 나와도 안타를 많이 쳐도 점수가 많이 나도 경기가 완전히 끝나기 전까진 승리했다고 말할 수 없다. 실력은 물론이고 집중적인 정신력과 운도 따라야 하는 것이 야구경기인 거 같다.     

  아마 우리 인생도 그렇지 않을까? 

  아슬아슬한 게임 끝에 9회 말 투아웃이 되어도 하나 남은 아웃카운트에 만루 홈런의 희망을 품으면서 집중하고 또 집중하면서 운이 따라주기를 바라는 야구경기처럼. 대부분의 사람이 젊은 시절엔 그늘진 곳에서 그랜드슬램을 달성하는 빛나는 선수가 되기 위해 피나는 훈련을 했을 것이다. 좀 더 빨리 성공하고 싶어 위험을 무릅쓰고 도루도 하고 때론 안타를 치고 행복하기도 했을 것이다. 어쩌다 친 홈런 한 방에 득의양양하다가 지나친 욕심을 내지는 않았을까? 더 잘하고 싶은 욕망에 뛰어본 무모한 뜀박질이 9회 말에서 랜덤(random)에 걸려 끝나버릴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는 모두 지나친 욕심과 자만으로 인생을 엮어가지는 않았는지 생각해 볼 일이다.

  내 인생의 경기에서 최선을 다해서 집중해야겠지만 이제 더는 무모한 뜀박질로 남은 생을 허무하게 끝낼 수는 없기 때문이다.



*야구를 무척 좋아했던 그사람 생각 나는날 야구경기를 찾아봅니다.

  수필집에 상재한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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