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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옥 Jun 08. 2024

제주에서 만난 이중섭

      


  초여름 딸들과 함께 제주행 비행기를 탔다.

  두 딸과 함께 하는 여행은 이번이 처음이다. 오후에 제주공항에 도착하니 비가 내렸다. 제주교통이 익숙지 않아 택시를 타고 숙소가 있는 서귀포로 갔다. 짐을 풀고 창을 통해 내리는 빗줄기를 바라보며 온전히 하나이면서 모두인 우리 가족은 아름답고 그리운 것들을 밤늦게까지 이야기했다.     

  이른 아침이다. 딸들은 아직 깊은 잠에 빠져있다. 뚜렷한 일정을 계획한 것이 아니고 마음의 휴식을 위한 여행이기에 일찍 일어날 필요가 없다.

  혼자 아침 산책길에 나섰다. 바닷가로 가볼까 하다가 이곳의 아침을 여는 거리와 삶의 현장이 보고 싶었다. 숙소를 빠져나와 호텔 뒷길로 접어들어 한참을 걸어가니「이중섭의 거리」라는 팻말이 보였다.

  ‘이중섭’ 나는 그 이름을 들으면 가슴이 아리다. 그림에 대해 잘 모르는 내가 우연히 그의 그림을 본 적이 있었다. 대표작이라고들 말하는 황소 그림을 보고 그 눈빛이 너무도 간절하면서도 강렬한 분노가 함께 나타난 것 같은 느낌을 받고는 그에게 관심이 갔다. 그림만큼 그의 인생도 그의 사랑도 애틋한 연민이 되어 가슴에 깊게 새겨져 있던 이름이다.

  이중섭 거리는 서귀포시 서귀동 512번지 일대로 그의 그림과 짧은 에피소드를 표현한 모형들이 거리 양옆으로 표현되어 있었고 작고 소담한 건물들에는 각종 소품을 파는 가게들과 특색 있고 예쁜 카페가 많았다.

  이 거리 끝자락에 서귀포 올레 재래시장이 있었다. 전통시장의 소소한 볼거리는 나중에 아이들과 함께 보기로 생각하고 이중섭미술관 쪽으로 발길을 옮겼다.

  미술관에 들어서기 전 왼쪽 돌담 쪽에 연리지連理枝 나무 한그루가 있었다. 이중섭 화백과(아고리) 아내 야마모토 마사코의(아스파라가스) 애정이 담긴 사랑 나무다. 아고리와 아스파라가스는 화백과 그의 아내가 서로 부르던 애칭이다. 이른 아침이라 미술관은 개관하지 않았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미술관을 나와 돌담길을 따라 걸으니 이중섭 공원이 있었다. 공원은 작고 아담했지만 덩굴 식물과 능소화가 피어있고 붉은 칸나도 보였다. 어제 내린 비로 풀잎과 꽃잎 속에서 잠자던 물방울이 또르르 흘러내렸다. 화가는 잔디밭 돌 의자에 다리를 포개고 사색하듯이 앉아서 나를 바라본다. 빛으로 생기를 주는 아침 햇살 아래서 나는 살포시 그를 안아주었다.

  그때 툭! 하고 노란 동그라미 하나가 하늘에서 떨어졌다. 밀감이다. 그러고 보니 아주 오래된 팽나무와 백 년은 넘은 밀감나무가 공원 안에 당당히 버티고 있었다. 내 주먹 두 개보다도 커 보이는 철 지난 밀감이 서너 개 바닥에 떨어져 있는 게 보였다. 나무에도 아직 여러 개가 달려있었다.

  그가 1951년에 이곳에서 일 년 정도 살았다고 하니 그도 어느 날 이곳에 와서 저 밀감나무를 바라보며 상념에 잠겼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65년의 시공을 지나 화가와 같은 공간에서 함께 한다 생각하니 산들바람 한 줄기가 가슴속으로 슬그머니 들어왔다.

  공원을 나오니 조금 아래쪽 맞은편에 초가 한 채가 보였다. 아무도 살지 않을 것 같은 적막한 집이었지만 「이중섭 거주지」라고 제법 큰 나무 팻말이 붙어있었다. 조심스레 집안으로 기웃거려 보니 하얀 강아지 한 마리가 꼬리를 살랑거리다 어디론가 사라진다. 댓돌에는 신발 한 켤레가 보이고 「원주인이 살고 있음」이란 글귀가 마루에 놓여 있었다.

  화가의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다던 제주에서의 삶, 아내와 두 아들과 함께 부대끼며 살았던 한 평 반도 채 못 되는, 방 한쪽 벽면에 그의 시 한 편이 붙어있었다.   

   

  소의 말      

  높고 뚜렷하고/ 참된 숨결 / 나려나려 이제 /여기에 고웁게

  나려 두북두북/ 쌓이고 철철/ 넘치소서

  삶은 외롭고 서글프고 /그리운 것 아름답도다

  여기에 맑게 두 눈 열고/ 가슴 환히 헤치다.

                                              이중섭      


  일본에서 그림 공부를 하면서 만난 사랑하는 사람을 두고 고국으로 올 수밖에 없었던 처절하고 힘든 삶, 그를 찾아온 아내와 원산에서 결혼식을 하고 부산, 제주, 통영 등으로 피난살이를 하던 그의 고뇌를 떠올려 봤다.

  끝내 생활고를 견디지 못한 아내는 아이들을 데리고 일본으로 가고 그는 때로는 부두노동자로 때로는 화가로 양담배 갑의 은박지에 그의 예술혼을 쏟아냈지만 삶은 그를 더욱 매몰차게 몰아붙였다. 배고프고 사랑이 고픈 그는 1955년 끝내 정신 이상증세를 보이며 병원을 전전하다 56년에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삶은 외롭고 서글프고 그리운 것 아름답도다’

화가의 시 한 구절이 오래 기억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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