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에서 깨면 제일 먼저 뉴스를 본다. 어제 본 것, 심지어 일주일 전 것도 뉴스라고 앵커들과 패널들이 합심해서 떠드는데도 중독처럼 채널을 돌려가며 본다. 가끔은 새로운 소식도 있지만 기분 좋은 소식보다는 나쁜 소식이 많다.
요즘처럼 바람이 날카로워지고 기온이 살을 에는 듯한 계절에는 특히 빠지지 않는 단골 뉴스가 화재(火災)다. 어느 날은 산불이, 어느 날은 대형 목욕탕에서 또는 재래시장에서, 산업현장에서 뉴스 창이 거의 매일 불타오른다. 내가 원하지 않는 불이란 얼마나 무섭고 두려운지, 불이 났다면 이미 돌이킬 수 없게 된다. 다만 불로 인해 다친 사람이 없기를 바랄 뿐이다. ‘이번 화재로 다행히 사망자는 없습니다.’라고 하는 아나운서의 말에 가슴을 쓸어내릴 때가 많다.
그날은 겨울을 닮은 무미건조한 일상에서 푹 잘 자고 일어난 성탄 아침이었다. 빛나던 한 생을 다 떨쳐내고 나목으로 서 있는 창밖 느티나무 가지에 밤새 내린 눈이 하얗게 쌓여 있었다. ‘아! 화이트 크리스마스다.’ 예수님! 주님! 하고 기도한 적은 없지만 아기 예수 탄생을 축복하는 마음으로 캐럴을 흥얼거렸다. 지난주까지 패악을 부리던 추위도 성탄을 축복하는 듯 한결 부드러웠다.
습관처럼 텔레비전을 켜니 새벽에 서울 모 아파트에서 불이 났다는 짧은 멘트와 불길이 치솟는 아파트가 화면을 채웠다. 가슴이 쿵쿵 뛰었다. 한낮이 되어서야 서울 도봉구의 한 고층아파트 3층에서 불이 났고 2명이 숨졌으며 30명 정도가 다쳤다는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종일 마음과 눈이 텔레비전을 향했지만, 저녁 9시 뉴스에서 더 자세한 상황을 알게 되었다.
불이 난 윗집에는 젊은 부부가 옆 동에서 살다가 몇 달 전에 이곳으로 이사 왔다고 한다. 둘째 아이가 태어나서 좀 더 넓은 집에서 아이들을 키우려고 이사를 했단다. 더 나은 환경에서 소중한 내 아이들이 잘 자라길 바라며 행복한 미래를 꿈꾸었을 것이다.
잠결에 숨 막히는 매캐한 냄새에 눈을 뜬 부부는 창밖으로 검은 연기가 솟아오르는 것을 보았다. 아래층에서 불이 난 것을 알게 된 부부는 아이들을 깨웠다. 이미 현관으로는 나갈 수가 없었다. 베란다 창밖을 보니 불길이 거세게 치솟았다. 소방차는 도착하지 않았지만, 창밖 아래서 주민들이 응원을 보내고 있었다. 다급함에 2살 된 큰아이를 이불에 둘둘 싸서 1층으로 던졌다. 그곳엔 아파트 경비원들이 궁여지책으로 갖다 둔 재활용 쓰레기가 쌓인 커다란 마대가 있었다.
남편은 갓난쟁이도 이불로 단단히 싸매고 꼭 껴안았다. 그리고 어린것이 조금이라도 덜 다치게 하려고 몸의 방향을 옆으로 하고 4층에서 뛰었다. 아내도 가족이 떨어진 쓰레기 더미 위로 몸을 던졌다.
“작은애는 내가 안고 뛸 테니 당신도 빨리….”라며 겁에 질린 아내를 안심시키고 독려했을 상황이 눈에 선하다.
아기를 안고 몸을 날린 4층 남자는 재활용 마대로 향하지 못하고 땅바닥으로 떨어졌다.
같은 시각, 불길보다 빠르게 연기와 탄내가 복도와 계단을 통해 아파트 고층까지 삽시간에 퍼졌다. 10층 사는 한 젊은이는 불이 난 것을 직감하고 소방서에 맨 먼저 전화를 했다. 그는 연로하신 부모님을 차례대로 대피시키고 동생까지 안전하게 대피시킨 후 필사적으로 검은 연기를 헤집고 옥상으로 향했다.
소방차가 오고 경찰차도 도착해서 다친 사람들을 병원으로 이송하고 대응 1단계로 화재 진압이 시작되었다. 주민들도 저마다 사력을 다해 화재 현장을 빠져나왔다. 화재를 진압하던 한 소방관이 11층 계단에서 심정지 상태로 질식한 젊은 남자를 발견했다. 10층 젊은이다.
아기를 안고 뛰어내린 남자도, 부모님과 동생을 대피시키고 연기 속에서 질식한 남자도 끝내 돌아올 수 없는 길로 가고 말았다.
사망자는 30대의 남자 둘이라고 뉴스를 전하는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깊게 잠겨있었다. 멍멍하게 울려오는 내 마음도 상처에 소금 한 줌 뿌려지는 것 같이 더 아팠다. 죽음 앞에 차마 입도 떼지 못한 그날, 다친 30여 명도 다 제각각의 사연으로 생사를 넘나들었을 것이다. 아무도 헤아릴 수 없는 그들의 또 다른 공포를 생각해 보았다.
꽃다운 젊은이들의 사망 소식이 너무도 허망하고 안타깝지만, 그들은 자신보다 가족을 먼저 챙기고 이웃 걱정에 화재 신고를 했었다. 죽음 앞에 두렵지 않은 이 누가 있으랴. 두 젊은이의 죽음은 불꽃보다 뜨거운 가족 사랑이었다.
우리 곁에는 수많은 사건 사고가 일어나지만, 이번 화재가 더 아프게 기억되는 것은 자기 목숨보다 어린 자식들과 아내, 부모님과 형제를 살리고자 했던 자식 같은 젊은이들의 죽음이 내 가슴 깊이 들어왔기 때문이다.
뒷날 현장 감식 중에 발화지점인 3층 집 방에서 많은 담배꽁초와 라이터가 발견되어 실화(失火) 일 가능성이 높다는 뉴스와 ‘아버지 품에서 아기가 동그랗게 눈을 뜨고 바라보더라고, 그때 아기는 살았구나.’ 생각했다는 경비원이 매체에 전한 소식도 기억의 한 단면에서 쉽게 지워지지 않을 것 같다. 새로운 화재 소식이 또 들려온다.
오랫동안 그날의 화재 소식을 떨쳐내지 못했다. 잠을 자려고 누우면 어디선가 매캐한 냄새가 코를 찌르는 듯했고 불길에 싸인 아파트가 눈앞에 어른거려서 벌떡벌떡 일어나 집안 구석을 돌아다니다가 다시 눕곤 했다. 바짝 마른 공기가 벽이나 천장을 쓰다듬어 도배종이들이 ‘뚜두둑’ 하고 신음을 낼 때도 창틀에 숨어서 덜컹덜컹 울어대는 바람 소리에도 몸을 일으키는 불면이 한동안 지속되었다.
지난해 겨울 연이어 일어나는 화재를 보고 안타까움에 적어본 글이다. 올 겨울은 이런 아픈 소식 없기를 간절하게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