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올라야 살아남는 나무
호주의 초원지대에는 불을 기다리는 식물이 있다.
대표적인 예가
유칼립투스(Eucalyptus)와 뱅크시아(Banksia)다.
이들은 잎과 껍질, 수액에까지
휘발성 기름을 다량 품고 있어
한 번 불붙으면 숲 전체가 걷잡을 수 없이 타오른다.
놀라운 점은,
이 불길이 이들에게 재앙이 아니라는 것.
유칼립투스는 껍질이 얇고 층층이 벗겨지는 구조로 되어 있어 불씨가 쉽게 붙고 잘 타도록 진화했다.
불이 지나간 후에야
씨앗을 품은 열매가 열리고,
비로소 새로운 생명이 시작된다.
뱅크시아의 열매도 마찬가지다.
단단히 닫혀 있다가 산불처럼 강한 열이 닿을 때 ‘딱’ 하고 열리며
씨앗을 터뜨린다.
이런 전략을 세로티니(serotiny)라고 부른다.
불이 모든 경쟁자를 쓸어간 뒤의 땅,
그 비워진 공간이 씨앗에게는 가장 이상적인 출발점이다.
불은 그들에게 멸망이 아니라,
씨앗을 여는 열쇠다.
불이 아니더라도, 파괴를 통해 완성되는 열매가 있다.
어떤 식물의 열매는 시간이 흐르고 수분이 마르면
내부 압력이 쌓여 스스로를 '폭발시키듯' 터뜨린다.
산사나무, 아프리카 바위식물, 박과 식물 등은
씨앗을 멀리 퍼뜨리기 위해 자기 껍질을 찢는 순간을 기다린다.
그 폭발은 실수도, 사고도 아니다.
완성의 방식이자, 전달의 전략이다.
열매는 자기를 감싸고 있던 껍질을 부수며
다음 세대를 위한 공간을 만든다.
성장의 방식이 늘 확장이 아니라는 증거.
때로는 스스로 부서지는 것만이
다른 생명을 옮길 수 있는 길이 된다.
일년생 식물 중 다수는
씨앗을 남긴 뒤 몸체 전체를 천천히 말려 소멸한다.
해바라기, 밀, 유채 같은 식물은 모든 에너지를 씨앗 생산에 쏟고,
성장을 멈춘 몸을 햇빛 아래에서 조용히 마르게 한다.
이것은 생식 후 사멸(post-reproductive senescence)이라 불린다.
어떤 생명에게는 생존 전략이 아니라 완결된 설계다.
그 무너짐은 무너짐이 아니다.
다음 생명을 위한 공간 확보,
빛과 영양을 위한 정리, 삶의 양보다.
누구보다 정교하게 자기 소멸을 설계한다.
요즘은 다음 단계의 나에게로 나아가기 위해
내 스스로를 불태워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 지키려 애쓰는 수많은 것들.
안정적인 삶, 익숙한 집, 루틴과 계획.
그것들이 어느새 나를 붙잡고,
흐르지 못하게 만든다.
움직이지 않는 물은 결국 썩는다.
불이 필요하다.
다시 흐르기 위해서는,
쌓아둔 것을 태우는 결단이 필요하다.
불이란 꼭 격렬한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건 내 안에서
멈춰 있던 것을 움직이게 하는 열기일 수 있다.
식물들이 스스로를 말려 씨앗을 남기고,
어떤 나무는 불이 지나가야 열매를 터뜨리는 것처럼, 소모는 끝이 아니라 전환이다.
지금의 나에게 ‘불’이란 모아둔 돈일 수도 있고,
붙잡고 있는 시간표나 안정된 공간일 수도 있다.
그것들을 태워야
나는 다음으로 나아갈 수 있다.
가끔은 스스로를 불태우는 선택만이 정체를 흐름으로 바꿀 수 있다.
나는 요즘, 불 앞에 서 있다.
그리고 어쩌면, 이미 조금은
타오르기 시작했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