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죽을 생각이 없는 생명체

불사의 생명은 우리에게 무엇을 묻는가

by 공구리

모든 생명은 늙고, 죽는다.

적어도 그렇게 배워왔다.

그러나 어떤 생명은, 죽을 생각이 없다.

자라서 어른이 된 뒤 다시 어린 시절로 돌아가는 생명체.

시간을 거슬러 자신을 되감는 존재.



⁘ 시간은 그에게 직선이 아니다

투리토프시스 도오르니(Turritopsis dohrnii)
불사의 해파리라 불리는 이 작은 생명체는
지중해 연안과 일본 해역에서 발견된다.
몸길이 4~5mm 남짓의 유리알 같은 투명한 몸.
하지만 그 안에 담긴 시간의 구조는 다른 어떤 생물과도 다르다.

보통 해파리는 폴립(polyp)이라는 유충 상태에서 출발해,
성장을 거쳐 메두사(medusa)라는 성체가 되며 생을 마친다.
그러나 투리토프시스는 이 구조를 거꾸로 되돌릴 수 있다.

외부의 스트레스, 물리적 손상, 혹은 먹이 부족 같은 위기 상황에 놓이면
자신의 조직을 분해한 뒤, 다시 유충 상태인 폴립으로 ‘퇴행’한다.

이 과정은 역분화(transdifferentiation)라 불린다.
이미 특정한 기능을 담당하고 있던 세포들이 마치 시계를 거꾸로 돌리듯
덜 분화된 원래의 세포 상태로 되돌아가는 것.
그리고 그 유충은 다시 성체로 성장한다.


놀라운 점은, 이 과정을 이론적으로 무한히 반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세포 손상이나 환경 변화로는 죽을 수 있지만, 노화 자체로는 죽지 않는다.
과학자들은 이를 두고 생물학적 불사라 부른다.

물론 이 해파리도 영원히 살아있는 것은 아니다.
포식자에 잡아먹히거나 질병으로 죽을 수 있다.
그러나 스스로 ‘늙어 죽는’ 생물학적 경로를 회피할 수 있다는 사실은
생명의 시간 구조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우리에게 시간은 출생에서 성장, 노화, 죽음으로 이어지는 일직선이다.
하지만 해파리에게 시간은

되돌아가는 나선, 혹은 생명의 루프로 존재한다.

죽음을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그 개념 자체를 피해가는 방식의 생존.

그의 삶은 끝없이 순환하며, 그 안에서 매번 다시 태어난다.



⁘ 삶이 반복될 수 있다면, 우리는 무엇을 남기는가

불멸의 삶은 축복일까, 저주일까.

투리토프시스는 영원히 사는 대신, 기억을 남기지 않는다.

육체는 되돌아가지만, 과거를 들고 가지는 않는다.

과정은 반복되지만, 축적은 없다.


영원히 살아 있지만, 한 번도 늙어보지 못했고,

수없이 죽음을 피해왔지만, 한 번도 나이 든 존재였던 적이 없다.

ChatGPT Image 2025년 7월 17일 오전 10_05_56.png

⁘ 유한함은 정말 불행한 조건일까

인간은 죽음을 두려워하며 살아간다.

시계를 보고, 생일을 세고, 주름을 헤아리며 하루하루를 흘려보낸다.

그러나 그 유한함이 있어 우리는 기억을 쌓고, 흔적을 남기고, 의미를 만든다.

투리토프시스는 그런 의미를 갖지 않는다.

그는 존재하지만, 서사가 없다.

그는 살아 있지만, 시간을 살지 않는다.

그리고 우리는 그를 보며 묻게 된다.

"삶이 영원하다면, 우리는 여전히 살아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인간은 유한하기에 계획을 세우고, 의미를 부여하고, 누군가를 기억한다.
슬프고 아름답고 고통스러운 일들은 이런것들에서 발생한다.
그러나 바로 그 감정들이, 생이라는 리듬을 만들어낸다.

죽음이 없다면, 인생은 행복할까?

필멸자의 입장에서 물론, 그 답을 알 수는 없다.

그저 가진 것에 만족하며 주어진 시간을 열심히 살아나갈뿐이다.

월, 수,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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