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혼자 떠나야만 도착하는 곳

집을 벗어나 홀로 되는 생명에 대하여

by 공구리

어떤 생명체들은 태어나자마자 어딘가로 향한다.


말미잘은 성체가 되면 바위나 산호에 붙어 평생을 살아가는 ‘정착성’ 생물이지만, 처음부터 그런 것은 아니다. 알에서 부화한 유생은 플랑크톤처럼 물속을 떠다니며 헤엄친다.

이 시기는 단순한 유년기가 아니라, 삶의 가장 중요한 선택의 시간이다.

잘못된 장소에 붙는 순간, 그 자리가 평생의 무대가 된다.

그래서 유생은 조류를 타고 더 적절한 바닥, 더 풍부한 먹이, 더 안전한 환경을 찾아 나선다.

떠남은 위험하고 고되지만, 이동 없는 말미잘은 존재할 수 없다.


이 전략은 연어, 뱀장어, 바다달팽이처럼 생애 중 서식지를 극적으로 바꾸는 생물에게서도 발견된다.

이를 『 양수성 생애 주기(diadromous life cycle) 』라 한다.

예컨대 연어는 민물에서 태어나 바다에서 성장한 뒤, 번식을 위해 다시 민물로 돌아온다.

이 과정에서 체내의 삼투압 조절 기능이 변하고, 먹이 습성·활동 패턴·몸의 화학 조성이 모두 바뀐다.

바다의 염도에 적응했던 몸이, 민물의 환경에 맞춰 재설계되는 것이다.

떠남은 단순한 이동이 아니라, 생리와 행동을 완전히 재프로그래밍하는 진화적 전환점이다.



⁜ 홀로 남겨지는 것이 전략인 생명들

청상아리(newborn sand tiger shark)의 새끼는 태어나자마자 어미를 피해야 한다.

이 종은 자궁 속에서부터 형제 포식이 일어나, 가장 강한 한 마리만이 살아남는다.

바다로 나온 직후에도 부모의 보호는 없다.

살아남은 새끼는 곧장 홀로 사냥을 배우고, 은신처를 찾아다니며 생존 전략을 익힌다.

고립은 약점이 아니라, 철저히 설계된 전략이다.

바다에서 홀로 움직이는 개체일수록 먹이와 영역을 독점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늑대 무리에서도 이탈은 존재한다. 솔로 울프(Solo Wolf)라 불리는 개체들이다.

무리에서 밀려나거나, 새로운 번식 기회를 찾기 위해 자발적으로 떠나는 경우 모두 포함된다.

홀로 떨어진 늑대는 사냥도, 방어도 혼자 감당해야 하지만,

그 고립 속에서 새로운 무리를 만드는 씨앗이 된다.

생태학적으로, 이들의 이동은 개체군 유전자의 다양성을 유지하는 핵심 역할을 한다.


이처럼 많은 생명은 태어난 곳을 영원한 집으로 여기지 않는다.

정착은 완성의 끝이 아니라, 오히려 위험이 될 수 있다.

서식지를 벗어나야, 혼자가 되어야, 비로소 진짜 삶이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



⁜ 익숙함은 안전인가, 감금인가

이처럼 자연의 생명들은
태어난 곳을 영원한 집으로 여기지 않는다.
서식지를 벗어나야, 혼자가 되어야,
비로소 진짜 삶을 시작할 수 있는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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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사회에서도 이런 이탈의 본능은 반복된다.

요즘은 캥거루족이라는 말이 익숙하다.

성인이 된 뒤에도 부모의 경제적·정서적 울타리 안에 머무는 사람들.

그 선택 뒤에는 주거 비용 폭등, 불안정한 고용, 복잡한 사회 구조가 놓여 있다.

하지만 동시에, 안정이라는 이름의 정착이 나를 감금하고 있는 건 아닌지라는 질문도 따라온다.


최근 넷플릭스 에서「한국이 싫어서」라는 영화를 봤다.
영화 속 주인공은 한국에서의 관계와 환경이 답답하다고 느껴, 뉴질랜드 워킹홀리데이로 떠난다.

익숙함을 버리고 전혀 다른 곳에서 새로운 관계, 새로운 일상을 만드는 과정 속에서

‘나’라는 존재가 다시 설계된다.


이민, 워킹홀리데이, 장기 여행 최근 젊은 세대들에서 많이들 관심을 가지는 키워드다.

이 키워드들은 본능적으로 모두 같은 질문에서 출발할수도 있다.
“여기가 정말 나의 서식지일까?”
“혹시 내가 바깥으로 나가지 않아서, 모르는 나를 만나지 못하는 건 아닐까?”


자연이 보여주듯이 혼자가 되는 건 끝이 아니라 시작일수도 있다.
말미잘 유생의 부유는 정착을 향한 몸부림이고,

연어의 귀환은 생식과 유전의 귀환이며,

솔로 울프의 이탈은 새로운 무리를 위한 길이다.

인간도 마찬가지다. 태어난 환경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때로는 그 환경을 떠날 때, 우리는 비로소 내 서식지를 만들어갈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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