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체란 뭘까
서로가 없으면 존재할 수 없는 생물들이 있다.
근데 따지고 보면 인간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개개인의 이름과 얼굴, 기억을 가졌지만 사회 없이 존재할 수 없다.
개별적으로 움직이는 듯 하지만 거시적으로 보면
하나의 시스템, 하나의 행동 패턴을 따른다.
도시 하나, 국가 하나, 혹은 인터넷상에서 움직이는 거대한 정보의 흐름은
마치 하나의 생명체처럼 의사결정하고, 움직이고, 반응한다.
그건 생물학에서 말하는 초개체(superorganism)의 개념과 닮아 있다.
개미집단, 벌집처럼
수많은 개체가 모여
하나의 유기체처럼 기능하는 것.
인간 사회 역시, 초개체일지 모른다.
나 혼자 살아간다고 믿지만,
그 안에는
수백만의 인간이 내가 살아갈 수 있게 만든다.
생명은 흔히 하나의 개체로 여겨진다.
자율적인 신진대사, 독립적인 번식, 고유의 유전자.
우리는 그것이 생명의 기준이라 배웠다.
하지만 자연은 종종, 그 기준을 엉뚱하게
뒤틀어버린다.
둘이 하나로 살아간다.
그리고 어느 순간, 더 이상 어디까지가 너이고 어디부터가 나인지 알 수 없다.
어느순간 그 둘은 합체되었다.
상식적으로 식물은 엽록체를 가진다.
엽록체는 광합성을 가능하게 해주는 기관이다.
그 둘을 따로 떨어져서 생각하는 것 자체가 어색하다.
그런데 사실 엽록체는
과거에는 자유 생활을 하던 남세균이었다.
진핵세포가 그 세균을 먹었지만, 소화하지 못했고 오히려 세균은 세포 안에서 살아남았다.
시간이 흐르며 두 존재는 분리될 수 없는 관계가 되었고,
결국 세균은 세포 속 소기관(엽록체)으로 동화되었다.
이는 세포 내 공생설(Endosymbiotic Theory)로,
현재 가장 널리 받아들여지는 진화 이론 중 하나다.
실제로 엽록체는
①자체적인 이중막 구조
②독립적인 DNA
③이분법적 분열 방식
으로 세포 밖의 생명체였던 흔적을 보존하고 있다.
즉, 오늘날 식물이라는 존재 자체가
두 생명의 융합으로 태어난 결과라는 뜻이다.
지구 최강의 공생체 지의류 (Lichen)
지의류는 조류(또는 남세균)와 곰팡이의 공생체다.
곰팡이는 구조와 수분을 제공하고,
조류는 광합성으로 유기물을 만든다.
이 조합은 그 자체로 하나의 종처럼 분류된다.
실제로 지의류는 따로 떨어져서는 살아가지 못한다.
서로에게 의존하는 정도가 아니라, 서로의 생존 조건 자체가 되어버렸다.
게다가 이 구조는 무려 4억 년 이상 유지된 형태다.
지의류는 극한 환경에서도 살아남는다.
북극, 사막, 고산지대, 심지어 우주에서도 생존 가능성이 실험되었다.
학자들은 이것을『공생을 통한 생명 진화의 궁극 형태』라고 부른다.
검은 연기를 뿜는 심해 열수구 근처,
입도 소화기관도 없는 조개들이 산다.
이들은 몸 안에 사는 박테리아로부터 모든 에너지를 공급받는다.
박테리아는 황화수소를 산화해 에너지를 만들고,
조개는 박테리아가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는 집을 제공한다.
이들은 종이 다르지만 완전히 하나의 생명처럼 기능한다.
해부해도 경계를 정확히 나눌 수 없고, 서로 없으면 생존도 불가능하다.
학자들은 이들을 holobiont(홀로생명체)라 부른다.
"하나의 전체로 기능하는 다종 생명체 집합"이라는 뜻이다.
이 생물들은 독립을 포기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생존을 확장한 것이다.
진화는 생명의 개체성을 강조하는 방향만으로 움직이지 않았다.
때로는 경계를 흐리고, 함께 엉겨 붙는 방식으로
더 복잡하고 강인한 생존 형태를 만들어냈다.
그들은 합체를 선택했고, 그 합체는 생존을 가능하게 했다.
개체는 정말 하나의 생명을 의미하는가?
하나처럼 기능하는 집합의 상태를 우리는 생명이라 부르는 것일까?
개체란 것도 결국 인간의 정의일뿐이다.
추리물은 작가의 상상력을 뛰어넘어 탄생할 수 없다.
개체란 개념 역시도 인간의 상상력의 범주 안의 개념일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