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동물들은 여가시간에 뭐할까

by 공구리

요즘에는 여가시간이 주어져도 딱히 취미랄게 없는 것 같다.

최근에는 건담을 만들기 시작했는데, 막상 만들어진 다음에는 즐겁다가도

또 새로운 건담을 만들어나가는 과정은 약간의 스트레스도 동반하는 듯 하다.

그렇다면 동물들은 여가시간에 뭘할까?


그림을 그리고, 무대를 꾸미고, 소리를 내어 리듬을 만드는 것.
우리는 이런 행위를 예술이라고 부른다.
숲과 바다를 조금만 들여다보면,
붓을 잡고, 악기를 두드리고, 정원을 꾸민 존재들이 보인다.


⁘ 바닷속 화가, 퍼프 피시

일본 남부 바다, 수심 30m 안팎의 모래바닥.
아무 흔적도 없던 모래 위에 어느 날 거대한 원형 무늬가 나타난다.
폭은 2m, 작은 복어의 몸집보다 수십 배나 큰 규모다.

수컷 퍼프 피시는 하루 24시간 중 대부분을 이 무늬를 만드는 데 쓴다.
작은 지느러미를 마치 붓처럼 이용해 모래를 밀고, 파내고, 정리한다.
안쪽에는 방사형 골을 만들고, 바깥쪽에는 물결처럼 굴곡진 패턴을 쌓아 올린다.
작업은 보통 7~9일 동안 계속되며,

때때로 바다 밑을 기어가며 작은 조개껍데기나 산호 조각을 주워와 장식한다.

이 패턴은 단순히 화려함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중앙의 움푹 파인 공간은 알을 낳을 안전한 자리다.
바깥쪽의 높낮이 구조는 해류를 줄이고, 산소가 알 주위에 원활히 흐르게 돕는다.
즉, 디자인과 기능이 동시에 녹아든 예술적 건축물인 셈이다.

문제는, 이 모든 작품이 파도와 조류에 의해 금세 사라진다는 것.
며칠 만에 흔적도 없이 지워진다.
그러나 퍼프 피시는 지워진 자리에 다시, 또다시 패턴을 새긴다.
암컷이 오지 않아도, 결과가 허무해도 멈추지 않는다.

그 장면은 마치 바닷속에서 매번 다시 그려지는 모래 만다라다.
일시적으로 나타나고, 곧 사라질 것을 알면서도, 순간의 아름다움과 목적을 위해 반복되는 창조.
작디작은 복어 한 마리가 매일 벌이는, 거대한 예술 프로젝트다.


⁘ 숲 속 설치미술가, 버워버드

호주와 뉴기니의 숲에는,
집을 짓지 않고 정원을 짓는 새가 있다.
수컷 버워버드는 암컷을 끌기 위해 ‘보워(bower)’라 불리는 공간을 만든다.

나뭇가지로 구조를 세우고, 꽃잎·열매·조개껍질,

심지어 사람이 버린 유리 조각과 플라스틱까지 모아 색깔별로 배치한다.
파란 물체만 집착적으로 모으는 개체도 있다.
암컷은 그 정원을 돌아보며 이 새가 얼마나 성실하고 창의적인지를 평가한다.
인간의 미술관과 다를 바 없는 설치 작품이, 숲 한가운데서 매일 열리고 있는 셈이다.


⁘ 숲의 드러머, 딱따구리 핀치

갈라파고스 제도의 숲 한켠에서, 딱따구리 핀치는 도구를 든다.
이 작은 새는 가늘고 뾰족한 선인장 가시나 나뭇가지를 꺾어 들고,
나무 껍질 속 곤충을 파내는 데 쓴다.
이것만으로도 새들 중에서는 드문 능력이다.

흥미로운 점은, 이 도구질이 단순히 먹기 위한 두드림에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핀치는 도구로 나무를 콕콕 두드리며 곤충을 찾는데,
그 두드림이 의외로 일정한 간격과 리듬을 갖추곤 한다.
사냥이 목적이지만, 귀로 들으면 마치 작은 드럼 연주 같다.

더 놀라운 건, 일부 개체들은 먹이를 다 건져낸 뒤에도
잠시 도구를 내려놓지 않고 계속 두드리는 행동을 보인다는 것이다.
먹이를 위한 실용적 이유가 사라졌는데도,
그저 소리를 만들어내는 여분의 행동이 남는다.

이것은 쓸모없는 행동일까, 아니면 즉흥적 연주일까?
숲 속의 침묵을 깨는 규칙적인 타격음은,
그 순간만큼은 새가 드러머가 되어 나무를 무대 삼아 공연하는 듯한 장면을 만들어낸다.


결국 여가란 꼭 소파에 누워 쉬거나, 취미를 위해 무언가를 완성하는 시간만은 아닐지도 모른다.
퍼프 피시는 끝없이 모래 무늬를 그리고,
버워버드는 매일같이 정원을 꾸미며,
딱따구리 핀치는 나무를 두드리며 리듬을 남긴다.

아무 대가도 없고, 금세 사라져버릴지라도,
그 순간의 몰입과 반복은 그들만의 놀이이고 표현이다.
어쩌면 우리에게도 필요한 건 완벽한 결과물이 아니라,
무언가를 즐겁게 반복하는 그 시간 자체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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