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컷이 자아를 잃는 아귀의 사랑
바다는 깊을수록 사랑은 기이해진다.
빛도, 소리도 닿지 않는 심해에서는 서로를 찾는 일이 곧 생존의 문제다. 그리고 어떤 생명은, 그 생존을 위해 사라지는 것을 선택한다.
아귀(anglerfish).
납작한 몸에 기다란 촉수가 달린 이 심해어는, 위협적인 외모만큼이나 독특한 번식 방식을 가진다.
특히 Ceratiidae 계열의 심해 아귀는 암컷과 수컷의 사이즈 차이가 극심하다. 암컷이 테니스공이라면, 수컷은 쌀알만 하다.
그 작은 수컷은 깊고 어두운 바다에서 암컷을 찾으면, 그 몸에 자신의 입을 박는다.
그리고, 물러나지 않는다.
며칠이 지나면 수컷은 암컷의 살 속으로 서서히 스며든다.
피부가 융합되고, 혈관이 연결되고, 장기 대부분은 퇴화한다.
그는 더 이상 스스로 먹지도, 움직이지도 않는다.
단 하나, 생식기만을 남기고, 그는 암컷의 일부가 된다.
그 사랑은 연결이 아니라, 흡수다.
이 관계를 학자들은 '성적 기생(sexual parasitism)'이라 부른다.
하지만 그 말에는 무언가 빠져 있다.
기생이라기엔 너무 극단적이고, 생식이라기엔 너무 비인격적이다.
그것은 사랑인가? 희생인가?
아니면, 살아남기 위한 마지막 전략일 뿐인가?
심해에서는 짝을 만나는 일조차 쉽지 않다.
한 번의 만남을 놓치면, 종 전체가 소멸할 수 있다.
그래서 수컷은, 영원히 떠나지 않는 방식을 선택했다.
이 이야기는 사랑에 관한 것일까, 아니면 정체성에 대한 것일까.
아귀 수컷은 생식만을 위해 존재하며, 짝을 찾은 순간 '자아'를 포기한다.
그리고 그 소멸이 곧 생존이 된다.
그리고 그 소멸이 곧 생존이 된다.
그는 사라지지만, 그 종은 계속된다.
살아남기 위해 그는 ‘개체’를 포기했고, 그녀는 그를 받아들여 ‘종족’을 지켰다.
이것은 사랑의 이야기라기보다, 진화가 선택한 가장 확실한 계약이다.
여기엔 감정도, 주저함도 없다.
자아는 대가였고, 생존은 결과였다.
자연은 때때로 잔혹한 방식으로 균형을 만든다.
우리는 이런 사랑을 이해하지 못한다.
하지만 어쩌면, 어떤 관계는 끝까지 남기 위해 스스로를 지우는 일로 완성되는지도 모른다.
그것은 생존의 방식이자, 존재를 잃고 존재를 남기는 방식이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들은 우리는 묻게 된다.
"나는 누구의 일부로 살아가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