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말을 잃은 새

짝짓기 노래를 잊어버린 새들에 대하여

by 공구리

새는 노래로 사랑을 부른다.
숲이 조용한 새벽, 수컷은 가지 위에서 날갯짓보다 먼저 소리를 낸다.
리듬, 진동, 톤, 멜로디.

그 고유한 노래는 짝짓기를 위한 청혼이자, 존재의 신호다.

하지만 어떤 새들은 이제, 노래하지 못한다.


▣ 도시는 그들의 소리를 지웠다

호주에 사는 작고 화려한 새, 꿀먹이새(Regent Honeyeater)는 한때 널리 퍼진 종이었다.
그들은 나무 사이를 날며 울창한 숲속을 공명시켰다.
그러나 인간이 숲을 베고 도시를 확장하면서, 꿀먹이새는 점점 더 희귀한 존재가 되었다.

현재 야생에 남은 개체 수는 250마리 이하.

그 수가 너무 적어서, 어린 수컷 꿀먹이새들은 어른 새의 노래를 듣고 배울 기회 자체가 사라졌다.

수컷 꿀먹이새는 생후 몇 달 동안

‘꿀먹이새 다운 노래’를

주변 성체에게서 배워야 짝짓기를 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 이들은 도시 소음 속에서 자라고,

자신과 같은 종의 노래를 거의 듣지 못한 채 자란다.


그 결과,

어떤 개체는 다른 새의 소리를 흉내 내고,
어떤 개체는 아예 잡음처럼 뒤섞인 무질서한 소리를 낸다.
그것은 짝짓기를 위한 노래가 아니라, 잊힌 언어의 메아리다.


▣ 말이 사라지면, 관계도 사라진다

노래를 잃은 꿀먹이새는 짝짓기에 실패하고, 짝짓기 실패는 번식 실패로 이어진다.
그 악순환 속에서, 그들은 점점 더 적어지고,
더 적어진 개체 수는 더 많은 언어의 단절을 만든다.

지금의 꿀먹이새는,
살아 있으나 자신의 존재를 표현하지 못하는 생명이다.


소리란, 곧 존재의 선언이었다

우리는 흔히 "소통이 단절되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소통은 단절되는 게 아니라, 잊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잊힘은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관계를 사라지게 만든다.


꿀먹이새는 아직 날개를 퍼덕이고 있다.
하지만 아무도 그를 듣지 못한다.

그 자신도 더 이상 무슨 말을 해야 하는지 모른다.


▣ 언어는 기억이자, 연결이다

그들의 침묵은, 종의 기억이 사라지는 과정이다.
그 조용한 단절을 바라보며, 우리는 아주 먼 이야기를 떠올릴 수 있다.

바로 우리가 언어를 빼앗겼던 시절이다.

1930~40년대, 일본은 식민지 조선에서 우리의 존재를 지우기 위해

가장 먼저 '말'을 없애기 시작했다.

그것은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끈,
세대와 문화를 이어주는 맥, 그리고 정체성을 구성하는 핵심을 끊는 일이었다.

학교에서는 조선어를 쓰면 벌을 받았고,
신문과 방송에서는 점점 더 모국어의 흔적이 사라졌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자신의 말로 답조차 할 수 없도록 만든 침묵의 강요였다.

그 시절 태어난 아이들 중 일부는
정작 자신이 쓰던 말로 자신을 표현하는 방법도 모른 채 자라났다.
그것은 단지 언어의 상실이 아니라, 자아의 결핍, 기억의 공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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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다행히도, 우리는 서로의 소리를 기억했다.
몰래 속삭이고, 마음으로 이어가며 말을 잃지 않기 위한 저항을 이어갔다.

그리고 마침내, 우리는 말을 다시 꺼내 쓸 수 있었다.
그것은 단지 '언어'가 아니라, 관계의 회복, 존재의 회복이었다.

언어를 기억하는 민족만이 가질 수 있는,
가장 단단하고 오래된 생존의 본능이었다.


꿀먹이새는 기억을 잃은 채 노래를 흘리고 있다.
우리는 기억을 되살려, 다시 말하기 시작했다.


말이 지워진다는 건, 존재의 끈이 끊어지는 일이다.

꿀먹이새처럼 침묵에 갇히지 않기 위해, 우리는 오늘도 서로에게 말을 건넨다.

월, 수,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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