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입원한 대학병원에서는 병원에서 할 수 있는 치료를 다 했음에도 차도가 없고 오히려 욕창과 같은 질병이 더 심해졌기에 아버지를 집으로 돌려보냈습니다. 이제 언제 돌아가실지 모르니 집에서 준비를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대학병원에서 집에 오신 후부터 아버지는 영아에서 태아가 되신 것 같았습니다.
정말 뼈가죽만 남으실 정도로 마르셨고,
태아자세와 같이 구부정하게 허리를 숙이며
누워 계셨습니다.
피부는 전체적으로 불그스름해지고
진한 적색과 흑색 반점으로 가득 찼습니다.
또한 하루의 대부분을 주무시고,
아버지의 표정 또한 TV에서 보던 미숙아의 표정과 같아졌습니다.
소식을 전해 들은 동생 가족은 놀라서 저희 집으로 달려왔습니다. 그리고 침대에 누워 계신 아버지, 할아버지 손을 붙잡고 울면서 마지막 임종 준비를 했습니다.
좋은 아버지, 좋은 할아버지셨어요. 살아 계시는 동안 정말 감사했어요.
하늘나라에서 아프지 않고 편히 계세요
사랑해요…
동생가족이 아버지를 붙잡고 울며 마지막 인사를 했지만, 아버지는 집에 오신 후에도 1년을 넘게 저희와 함께 계셨습니다.
놀라운 사실은 오히려 병원에서 보다 의료진도 없는 집에서 아버지의 상태가 점점 더 좋아지신다는 것입니다. 비록 오랜 시간이 걸리기는 했지만 매일 욕창 상처를 소독하고 치료하면서 새까맣던 욕창 상처도 연해져 갔습니다. 병원 침대시트에 베어서 피가 나도록 벌어진 다리의 상처도 회복되었습니다 또한 이버지의 얼굴도 점차 살이 올라왔습니다.
마음이 편해서일까요?
병원보다 모든 것이 부족한 집인데 아버지의 상태가 점차 좋아지는 것이 놀라왔습니다.
그런데 이버지가 퇴원 후 집에 계시면서 다른 문제가 나타났습니다. 점차 아버지 상태가 좋아지시면서 대학병원에서 퇴원할 때 차신 소변줄을 손으로 뽑아버리신 것입니다. 아마도 차고 계신 소변줄이 답답해서 그러신 거겠지만, 소변줄은 일반인이 아닌 의료인이 와야만 다시 채울 수가 있기 때문에 여러 가지로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특히 휴일이나 한 밤 중에 아버지가 소변줄이나 콧줄을 빼시면 정말 난감했습니다. 방문 간호사 선생님도 본인의 스케줄이 있으시고 특히 휴일에는 가족과 함께 쉬셔야 하는데 불러야 하니 많이 죄송했습니다. 소변줄은 기저귀로 대처한다고 해도 콧줄이 빠지면 식사를 하실 수 없기 때문에 전화를 안 드릴 수도 없고 정말 정말 죄송했습니다
결국 저희는 간호사 선생님의 권고에 따라 아버지의 손을 침대에 묶어야 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루에도 여러 차례 소변줄과 콧줄을 빼시기 때문입니다. 아버지의 육체와 정신은 이미 미숙아가 되셔서 말도 통하지 않았습니다. 간호사 선생님께서는 손과 발을 다 묶어야 한다고 하셨지만 저는 차마 그럴 수 없어 손만 묶었습니다. 그리고 선생님께서는 손목을 침대 모서리에 바짝 묶어놓으셨지만. 저는 간호사 선생님이 가신 후에 아버지가 손목을 조금은 움직일 수 있도록 아주 조금, 살짝 풀어 묶었습니다.
아버지 손을 묶는다는 것이 너무 마음이 좋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요양원에서 할머니 할아버지를 묶어놓았다는 뉴스를 보며 어떻게 저럴 수가 있냐고 분개했었는데 내가 아버지의 손을 묶어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너무 힘들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저의 어설픈 마음이 결국 문제가 되고 말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