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치매의 종류

착한 치매. 나쁜 치매 그리고 고마운 치매

by 현성은

이 글을 처음 쓰면서 말씀드렸듯이 저희 어머니와 아버지는 모두 치매를 앓고 계십니다. 어머니에게 먼저 치매 증상이 나타나셨고, 몇 개월 후에 아버지께서도 치매에 걸리셨습니다.


처음 어머니께서 치매인 것을 알았을 때 치매 부모님을 가진 자녀들이 모두 느끼는 것처럼 그 충격은 말로 다할 수 없을 만큼 컸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아버지마저 치매인 것을 알았을 때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하나님께

”왜…왜…?!!“ 라는 질문만 하였습니다.


어머니께서 치매인 것도 너무 속상하고 힘든데

왜 아버지마저 치매이셔야만 하는지 울며 기도했던 기억이 나네요…


어머니 아버지는 두 분 다 치매이시지만 치매로 인해 나타나는 증상들은 확연히 달랐습니다


먼저 어머니께서는 오늘 하루 있었던 일을 기억하지 못하셨고 점차 기억을 못 하는 시간이 짧아져. 나중에는 5분 전의 것도 기억을 못 하셨습니다. 사실 지금은 1분 전에 일어난 일도 기억을 못 하십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같이 살고 있는 저희들은 기억하고 계셨습니다. 제가 누구인지도 아셨고. 저희 남편과 아이들도 모두 기억하셨습니다. 어머니께서는 어머니가 어렸을 때 아주 옛날 기억 일부와 지금 현재만을 인지하고 계셨습니다.


감사한 것은 어머니께서는 사람들이 흔히 이야기하는 <착한 치매>이셨습니다.


화를 폭발하거나 짜증 내는 것 거의 없이 엄마 말씀 잘 듣는 착한 아이처럼 얌전하게 앉아 계셨습니다. 그리고 제가 말하는 것은 모두 다 들어주셨습니다. 식사하자고 하면은 식사하셨고, 화장실에 가자고 하면은 일어나 화장실에 가셨습니다.


하지만 아버지께서는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나쁜 치매>에 가까웠습니다.


화를 폭발하시고, 소리 지르고 고함치는 일들이 하루에도 여러 번씩 반복되었습니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처럼, 도저히 이유를 알 수 없는 분노가 아버지를 사로잡았습니다. 외식을 하러 식당에 갔을 때 우리 눈에는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아버지 눈에는 식당 테이블이 더러워 사람들 다 듣도록 큰 소리로 욕을 하는 일들이 자주 생겨 결국 외식도 중단했습니다. 그리고 어떤 때는 지나가는 사람들이 아버지 욕을 한다고 분노하셨습니다


아버지 분노는 가족들에게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사실 이런 아버지 분노 행동은 치매가 나타나기 전부터 있었습니다 예전에 어머니, 아버지 두 분만 살 때는 어머니에게 주로 분노를 폭발하셨고, 온 가족이 모이는 명절 때는 모처럼 다 같이 모인 저와 동생들 가족에게 그동안 쌓아놓은 화를 폭발하셨습니다. 정도가 점점 심해지면서 정신과 상담도 받고 약도 처방받았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때는 이런 아버지의 모습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니 이런 아버지 모습은 치매로 인한 초기 증상이었던 것 같습니다.


치매 진단을 받으신 후 아버지의 화는 점점 심해져서 처음에는 화내는 말이 곧 욕으로 바뀌셨고 나중에는 “내가 너 죽일 거야”라는 말까지도 서슴지 않고 하셨지요.


아버지께서 집에 오시기 전 요양원에 계실 때에도 욕을 하시고 화를 내셔서 돌보는 선생님들께서 많이 힘들어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 집에 오셔서 침대에 누워만 계실 때도 욕은 매일 하셨습니다. 다행인 것은 몸이 쇠약해지면서 점차 화를 길게 내지는 못 하셨고 욕하는 소리도 약해진 몸 때문에 점점 속삭이는 작은 소리로 바뀌어 갔습니다. 아버지가 말씀하실 때 귀를 가까이 대야만 욕을 하고 계시는구나 하고 알아들을 수 있었습니다.


저희 집에 오셨던 요양보호사 선생님께서 아버지가 손짓으로 부르셔서 뭐가 필요한지 여쭤 보니 아주 작은 소리로 욕하면서 내가 너 죽일 거야라고 위협 하셨다고 웃으셨습니다. 요양보호사 선생님께 얼마나 미안하고 감사한지….


예전에는 어머니 아버지께서 두 분 다 치매이신데 척추 골절로 거동을 못 하셔서 하나님이 참 원망스러웠는데 나중에 생각해 보니 이 또한 감사한 일이었습니다.


어머니께서는 아버지와 같은 방을 쓰시는 관계로

하루 종일 아버지의 욕을 들으셔야 했지만 치매로 금방 다 잊어버리실 수 있었고,

아버지께서는 치매와 척추 골절로 몸이 점점 쇠약해져서 욕도 속삭이듯이 하실 수밖에 없었으니까요.


저는 두 분을 보면서 치매가 나쁜 일만이 아니라 같이 사는데 도움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감사했습니다.


예전에 아버지가 화를 폭발하며 욕을 하실 때에는 저도 같이 분노하고 화를 냈지만 이제는 아버지의 속삭이는 욕을 들으며 “아빠 많이 속상했구나. 뭐가 속상했는지 이야기해 줄 수 있어요~? ”라고 웃으며 이야기합니다. 어머니가 기억을 못하는 것처럼 아버지의 욕도 치매의 증상이라 생각하니 아버지를 좀 더 편안하게 대할 수 있게 되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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