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량리 할아버지, 할머니들
제가 사는 동네는 도시 근교에 있는 지량리라는 이름의 예쁜 시골입니다. 동네 주민들께서 꽃을 좋아하셔서 겨울 한 두 달을 빼고 언제나 동네에 꽃이 피어 있습니다. 그리고 저희 동네에는 꽤 큰 하천이 있어서 언제나 새들이 놀러 옵니다. 청둥오리 같은 철새들과 왜가리, 까마귀, 까치, 참새, 이름도 알 수 없는 여러 새들이 쉬었다 가는 곳입니다. 운이 좋으면 수달도 볼 수 있지요.
지량리에는 저희처럼 도시에서 살다가 집 짓고 새로 이사 온 사람들과 지량리 동네가 고향인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모여 살고 있습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함께 사시는 집은 일곱 집 정도이고 나머지는 전부 할머니 혼자 사십니다. 다른 시골과 마찬가지로 압도적으로 할머니가 많이 계십니다.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혼자 움직이실 수 있을 때까지 텃밭을 경작하십니다. 솔직히 농사 초보자인 제 눈에는 텃밭이 아니라 밭농사처럼 보이는데, 그분들에겐 작은 텃밭입니다. 왜 이렇게 힘들게 농사를 하시냐고 여쭈어보니, 주말에 오는 자녀들에게 주기 위해서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고추밭, 마늘밭, 배추밭도 크게 하시고 텃밭에 심는 상추나 오이, 깻잎도 많이 지으셔 저희는 마을 어른들에게 자주 얻어먹고 있습니다.
도시 사는 많은 분들이 시골에 이사 오고 싶지만 일이 너무 많을 것 같아 주저하고 계시는데, 그분들에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잔디 깔지 않으시면 풀 뽑을 일 없습니다.
농사 걱정도 하지 마세요.
시골에서는 내가 직접 농사짓지 않아도 주변 분들에게 얻어먹는 것 만으로 충분합니다.
저희 가족은 부모님을 모시고 살고 있지만 처음부터 같이 살았던 것은 아닙니다. 서로 다른 동네에서 각자 살았고 명절과 특별한 날에만 만났지요. 그러다 부모님이 조금씩 나이 들어가시면서 저희가 사는 곳 근처로 이사 오시고, 그러다 더 나이 들어가시면서 같은 건물 4층과 5층에서 살았습니다. 저희가 식사를 준비하면 내려와서 식사하시고 본인들 집에서 계시다가 심심하면 다시 내려오시고…이렇게 한 건물에서 함께 또 따로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부모님의 나이가 80대가 되시면서 노화가 급격히 진행되어 갔습니다. 냉장고에 있는 음식들이 썩어 가고. 싱크대와 집안 곳곳이 곰팡이 투성이가 되어 갔으며, 저희가 아무리 부모님 집 청소를 해도 집안에 안 좋은 냄새가 가득 찼습니다. 결국 저희는 두 집 살림을 하나로 합쳐야 한다는 결정을 하게 되어 지금 살고 있는 시골로 부모님과 같이 이사를 왔습니다.
지금 살고 있는 집은 잔디밭과 작은 텃밭도 있는 예쁜 2층집입니다. 거동이 불편하신 부모님은 일층에 그리고 저희 부부와 아이들은 2층에 살고 있어서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지만 서로의 사생활보장도 되고 부모님도 바로 돌볼 수 있어 아주 만족합니다.
그런데 시골에서도 부모님과 자녀가 함께 사는 집은 저희 집 밖에 없습니다. 저희 세 아이들도 친구들과 이야기해 보면 할아버지, 할머니와 사는 집은 자기가 유일하다고 말합니다. 할머니와 함께 사는 손주, 즉 조손가정은 있어도 부모님과 할아버지, 할머니, 손주가 사는 집은 우리 집 외에 한 곳도 없었다고 이야기해 깜짝 놀랐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는 부모님께서 할아버지 할머니를 모시고 사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었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자녀와 따로 혼자 사시다가 기관(주간보호센터, 요양원, 요양병원)에 들어가시는 것이 당연한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노후에 대한 어르신들 이야기를 들으면 “언제 자녀와 합치겠다”라는 말씀보다는
“어디 요양원이 좋더라”는 말씀들이 훨씬 많습니다.
사실 노후에 어떻게 살아갈지는 할아버지 할머니뿐만 아니라 중년인 저희들도 진지하게 생각하고 준비해야 하는 주제입니다. 그래서 저도 가끔은 내가 70대, 80대가 되었을 때 어떻게 살아갈지 생각해 봅니다. 특히 한 집에 살며 부모님을 모시고 있기에, 제가 부모님 나이가 되었을 때 어디에 있을지 상상해 볼 때도 있습니다.
지금처럼 시골에 살면서 건강이 허락할 때까지 작은 텃밭을 일구면서 주말에 아이들이 오는 것을 기다릴지, 아니면 도시로 나가 병원 가까운 작은 아파트에서 부부가 살지, 그것도 아니면 부부가 함께 들어갈 수 있는 좋은 요양원을 찾아 그곳에서 살고 있을지 상상해 봅니다..
그러다가 문득 “나는 부모님을 모시고 살면서 왜 아이들과는 같이 살 생각을 안 하고 있지?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저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주변에도 있었습니다. 특히 자신의 부모님이 할머니할아버지와 함께 살면서 고생을 많이 한 것을 본 사람들은 자기 자녀와 같이 사는 것을 망설입니다
부모님이 할머니 할아버지를 모시며 얼마나 힘들었는지를 알기에, 내 자식에게는 그런 부담감과 짐을 주고 싶지 않은 것입니다.
그런데 제가 부모님과 살아 보니
분명 힘든 것도 있지만
부모님으로 인해 나의 자녀들이 받은 좋은 점도 많았습니다.
먼저 아이들끼리 우애가 끈끈해졌습니다. 매일 할아버지 똥을 치우며 형제가 서로 위해주고 배려하는 동지가 되었습니다. 제가 앞에 쓴 브런치 글에서 <똥 동지>라고 표현했는데 엄마와의 관계 보다 형제끼리 더 깊어진 관계가 되었습니다. 아들 키우는 부모님들은 아들들의 관계가 사실 만만치 않음을 아실 것입니다. 저희 집도 예전에는 형제끼리의 묘한 경쟁과 서먹한 관계였는데 할아버지 똥을 치우며 정말 우애 깊은 관계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들들이 아빠를 진심으로 존경하게 되었습니다.
아버지를 모시며 이런 큰 선물을 받았기에 저는 우리 아이들에게도 이런 선물을 주고 싶네요.
그래서 저희 부부가 더 나이 들어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었을 때 아이들에게 물어볼 것입니다.
“엄마 아빠랑 같이 살고 싶은 사람, 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