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 아버지이지만, 손주들인 아이들이 그것도 한창 젊은 20대에 주말에 밖에 친구 만나러 나가지도 않고 할아버지를 돌보기 위해 집에 있는 것이 너무 미안했습니다. 실제로 천안에서 대학교를 다니고 있던 둘째는 거의 모든 주말마다 집으로 내려왔습니다. 친구들을 만나고 밖에 나가는 것을 좋아하는 둘째가 이렇게 친구 만나는 것도 포기하고 주말마다 집에 내려온 것은 자기가 없으면 형 혼자서 할아버지 대소변을 치워야 하기 때문입니다.
엄마는 주말만큼은 좀 쉬게 해주고 싶었고 또 형 혼자서 하면 너무 힘들다는 것을 알았기에 우리 집의 자유영혼이었던 둘째는 자유를 포기하고 매주 집으로 내려왔습니다.
집에서 직장을 오가던 첫째 역시 할아버지를 돌보기 위해, 즉 할아버지 기저귀를 갈기 위해 퇴근하면 매일 바로 집에 들어왔습니다.
조금이라도 엄마를 도와주기 위해 자신들의 시간을 포기한 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고맙다 못해 미안했던 마음이 아버지의 똥칠사건으로 이제는 죄책감으로 변했고 결국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커져버렸습니다.
그날 밤에 ‘이게 맞나’라는 생각을 하며 밤새 잠을 못 이루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를 요양병원이나 요양원으로 보내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다시 올라왔습니다. 아이들에게 너무 큰 짐을 지게 한 것 같아 마음이 점점 힘들어졌습니다.
다음날 온 가족이 모인 저녁 식사시간에 저는 할아버지가 벽에 다시 똥칠하신 것을 이야기하며, 아이들에게 엄마가 너무 미안하고 고맙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리고 집에서 계속 모시는 것은 너희들에게 너무 큰 짐을 떠맡기는 것 같아 이제 요양원에 보내드려야겠다는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그러자 아이들이 바로 반대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할아버지가 매일 벽에 똥칠하시는 것도 아니고, 그리고 할아버지가 왜 벽에 똥을 묻히시는지 이해가 간다고 까지 말해주었습니다 기저귀에 똥을 쌌는데 바로 치워주지 않아 답답해서 손으로 똥을 만질 수밖에 없으셨다고 할아버지를 변호하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속으로 눈물을 삼켰습니다.
아이들은 기저귀 가는 타임을 지금보다 좀 더 자주 하고 할아버지 침대를 벽에서 떨어진 곳에 두면 된다는 구체적인 해결방법까지 제안하였습니다. 그리고 요양원에서 어렵게 집으로 오신 할아버지와 같이 집에서 좀 더 살고 싶고, 비록 어제 벽에 칠한 똥을 치우는 것은 힘들었지만 평소에는 그리 힘들지 않았다며 저를 위로해 주었습니다.
특히 둘째는 “벽에 똥칠한다”, “벽에 똥바를때까지 산다”는 이야기들이 속담이나 농담, 격언같은 이야기 인줄로만 알고 있었는데 실제 자기 눈앞에서 일어나는 현실임을 확실히 알게 되었다고 이야기해서 우리 모두 배꼽을 잡고 웃었습니다.
집에서 계속 할아버지를 모시자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저는 하나님께서 아이들의 이러한 마음을 축복해 주시길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어제와 달리 감사한 마음으로 잠을 청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