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아이들과 벽에 똥칠하신 할아버지.

by 현성은

저희 부부가 잠시 외출하고 요양보호사님도 없었던 어느 휴일 아침, 아이들이 할아버지 기저귀를 갈기 위해 방에 들어온 순간 아이들은 할아버지가 똥 묻은 손으로 벽을 닦고 있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멘붕이라고 하지요. 말 그대로 충격에 충격이었습니다. 전에 엄마가 할아버지가 벽에 똥칠하셔서 혼자 치웠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이렇게 엄마도, 돕는 요양보호사님도 없는 상황에서 오로지 둘이서만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현실이 온 것입니다. 저도 아버지가 벽에 처음 똥칠하시는 모습을 보았을 땐, 잠시 아무 말도 못 하고 굳어있을 정도로 어이없고 황당하고 힘들었습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로는 할아버지의 그런 모습을 본 순간 두 아이 모두 정지 상태가 되어 버렸다고 하네요. 아이들을 도울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냉혹한(?) 현실 속에서 아이들은 이런 상황을 마주치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예전에 제가 알려주었던 방법들을 생각하며 열심히 치웠다고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아이들은 먼저 같은 방에 계신 할머니가 할아버지 똥에 묻지 않도록 거실로 대피시켰습니다. 할머니 역시 치매이시기에 이 상황에서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할머니가 똥 치운다고 손이나 옷에 묻히시면 정말 일이 두 배가 됩니다. 아이들은 할아버지가 똥칠한다고 걱정하는 할머니에게 괜찮다고, 자기들이 치울 테니 할머니는 걱정 말라고 이야기해 주며 깨끗한 거실로 모셨습니다.


그리고 마스크를 쓰고 손에 고무장갑을 끼고 이불을 갈고, 할아버지를 욕실로 옮겨 깨끗이 씻기고 새 옷으로 갈아입혀드렸습니다. 엄마가 알려준 대로 똥 묻은 이불은 애벌빨래를 한 후 세탁기로 가져가고 똥이 너무 많이 묻은 옷은 비닐봉지에 넣어 밖의 쓰레기통으로 버렸습니다. 벽과 침대 모서리에 묻은 똥도 세제로 깨끗이 닦고 마른 수건으로 다시 닦은 후 아이들은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깨끗한 침대에 다시 눕혀드렸습니다.


나중에 집에 와 이야기를 들으니 처음에는 너무 멘붕이었지만 빨리 치워야 한다는 생각에 정신없이 치웠다고 하네요. 안치우면 할아버지가 똥 묻은 손을 닦기 위해 계속 여기저기 묻히니까요…


할아버지 대소변 기저귀를 갈아주는 것만으로도 말할 수 없이 고맙고 미안한데, 내가 없는 상황에서 벽에 똥칠하신 할아버지를 오롯이 아이들끼리만 치우게 했다는 사실에 저는 울컥하여 잠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너무 미안하고…

너무 고맙고…


이 말 외에는 어떤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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