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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탈잉 Feb 09. 2022

일단 집에 그림 하나를 걸고 나면 #1

아트 컬렉팅을 할 수 밖에 없는 이유

생각해보면 우리 집 벽은 늘 미술로 가득했다. 시작은 벽지였다. 기억도 잘 안나는 어린 시절, 나는 벽에 그림을 그리느라 크레파스 한 통을 다 비웠다고 한다. 꼬마 예술가를 키우던 엄마는 매일 내 낙서를 지우고 지우다 결국 포기하셨고, 6살이 만든 위대한 드로잉은 벽 아래에 영영 남게 되었다. 시간이 흘러 나는 그 벽에 잡지에서 오려낸 유명한 화가의 작품 사진을 붙이기 시작했다. 어디선가 가져온 팸플릿, 전시회에서 구매한 엽서와 포스터들도. 그러니까 좋아하는 미술 작품을 소유하고 싶어진 건, 스스로도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마치 어느 드라마에 나오는 재벌 남자 주인공의 대사처럼, 좋아하면 갖고 싶어 진다. 요즘 미술 작품을 사는 2030 컬렉터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뉴스에 힘입어 본격적인 아트 컬렉팅을 시작해볼까 싶었지만, 막상 어떻게 하면 되는지 감이 오지 않는다. 그동안 가봤던 갤러리에서 작품을 팔고 있었던가? 작품을 구매하려면 누구한테 말해야 하는 거지? 아직 그들만의 리그처럼 느껴지는 아트 컬렉팅, 어렵다 어려워!


매력적인 현대 미술을 알리는 메신저이자 세계가 주목하는 14년 차 아트 컬렉터, 이소영 튜터님


아트 컬렉팅은 왠지 전문적이고 어려운 느낌인데요, 쉽게 설명해주실 수 있나요?

가장 쉽게 말하자면 좋아서 수집하는 게 아트 컬렉팅이에요. 그런데 수집을 하다 보면 각자의 테마가 생겨요. 내가 좋아하는 분야가 초상화였구나, 혹은 조각이었구나 깨닫기도 하고요.


그렇게 꾸준히 컬렉팅을 하다가, 일부 소장품의 가격이 상승하는 경우가 있어요. 옥션에서 고가에 낙찰받거나, 해당 작가가 좋은 뮤지엄에서 전시를 하거나 대중 인기가 생겼을 경우요. 그럴 때 아트테크, 즉 아트 재테크가 되기도 하죠. 하지만 아트 컬렉팅이 무조건 아트테크가 되는 건 아니에요. 최소 3년에서 10년은 소장하고 있어야 과거보다 가치가 올랐다고 이야기할 수 있거든요. 요즘 아트 컬렉팅으로 빠르게 이익을 보려는 경향이 있는데, 저는 빠르게 할 수 있는 취미는 아닌 것 같아요.



부동산이나 주식을 떠올려 보세요. 부동산에 가보고, 포털사이트에 시세 흐름도 찾아보고, 직접 아파트에 방문해서 물이 잘 나오는지 아닌 지도 확인하죠. 주식도 처음 시작할 땐 상장이라는 용어도 잘 모르다가, 차차 유명한 종목은 어떤 건지도 알게 되고, 천천히 익숙해져요. 아트 컬렉팅도 마찬가지예요. 한 사람이 특정 분야를 잘 알게 되기까지는 빠르면 2~3개월, 천천히 공부하면 1년 이상이 걸려요. 미술 시장도 전문 용어가 있고, 에티켓과 흐름이 있어요.


그래서 아트 컬렉팅이 무조건 재테크가 된다고 보는 건 무리가 있어요. 아트 컬렉팅이 재테크가 되는 경우가 있는 것뿐이죠. 우리가 다이어트를 할 때도 하루 만에 살이 빠지지 않잖아요. 서서히 기초 대사량이 높아져서 몸이 좋아지는 거죠.


아트 컬렉팅이 건강한 아트테크가 되려면




Part 1. 시간을 붙잡는 매력, 미술



다양한 예술 장르 중에서도 미술이 가지고 있는 매력은 무엇인가요?

미술은 시간을 붙잡을 수 있어요. 연극은 그 시간이 지나면 볼 수 없고, 영화나 음악은 정지 버튼을 누르면 멈춰버리죠. 하지만 어떤 미술 작품을 감상하다가 너무 좋으면 1시간이고 2시간이고, 심지어 10시간 동안 그 앞에 머무를 수 있어요. 스스로 시간을 능동적으로 늘릴 수도, 줄일 수도 있어서 다른 예술보다 조금 더 스테디한 것 같아요.



이 작품을 우리 집에 걸어놓는다면 어떨까, 나와 같이 살아간다면 어떨까 떠올리게 하는 매력이 있죠. 요즘엔 모든 것들이 너무 빠르게 흘러가는데, 미술은 마음에 드는 부분을 접어놓을 수 있는 책처럼 계속 볼 수 있는 게 좋아요.



미술을 사랑하시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저는 어렸을 때부터 미술을 좋아할 수밖에 없었어요. 어머니가 미술 선생님이셔서 미술하고 가까웠거든요. 미술을 일상적으로 접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미대에 가게 되었어요. 그런데 미술에 좀 더 빠지게 된 건 미대를 졸업하고 난 후였어요. 미술 교육과 미술사 같은 이론 공부를 하다 보니까 창작자보다는 감상자의 입장에서 미술을 보게 되었거든요. 제가 올해 마흔이 됐는데, 미술을 좋아하게 된 지 벌써 30년이 넘은 것 같네요.



“시계나 달력처럼, 미술 작품을 걸 수는 없을까?”


미술품 감상을 넘어 소장까지 마음먹으시게 된 이유가 궁금해요.

억지로 결심한 것은 아니고요. 어느 날, 현대 미술을 검색해보다가 의외의 사실을 알게 됐어요. 오래된 근대 미술 작품들은 굉장히 높은 가격으로 거래되고 있지만, 현대 미술 작가들의 작품은 명품 가방 가격 정도에 소장할 수 있는 거예요. 특히 판화 작품의 경우에는 충분히 월급을 모아서 구매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미술 작품을 산다는 게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된 거죠.


‘시계나 달력은 우리 집 벽에 걸려 있는데, 왜 미술 작품을 걸자는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하면서 미술품을 구입하기 시작했어요. 사실 이 생각을 스무 살 때부터 했었으면 더 좋았을 텐데, 많이 늦었다고 느껴요. 그래서 지금 고등학생이거나 막 성인이 되신 분들이 아트 컬렉팅에 대해 물어보시면 너무 좋아요. 매우 긴 인생에서, 천천히 여윳돈을 모아서 나만의 미술 작품을 사는 것은 굉장히 좋은 취미니까요. 


다만 아트 컬렉팅을 하고 나니 너무 좋아서 더 일찍 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거지, 언제 아트 컬렉팅을 시작하든 절대 늦지 않아요. ‘영 컬렉터’라는 말은 젊은 컬렉터를 지칭하는 게 아니라 이제 시작하는 컬렉터를 뜻하거든요. 70대에 시작해도 되고요, 80대에 시작해도 상관없어요.



첫 번째 소장 작품은 무엇이었나요?

저는 회화나 드로잉이 아니라 판화로 시작했어요. 비슷한 시기에 두세 점의 판화를 함께 샀죠. 데미안 허스트, 쿠사마 야요이, 그리고 요시토모 나라 등의 에디션이었어요. 판화는 작가마다 만드는 방식이 달라서 어떤 작품은 오리지널 판화이지만, 어떤 작품은 디지털 프린팅 에디션이기도 해요. 이들을 사보면서 무엇이 더 가치가 있고, 의미가 담겼는지, 또 어떤 것이 더 예술적인지 알게 됐던 것 같아요. 



언젠가 꼭 소장하고 싶다고 생각하시는 작품도 있나요?

예전에는 미술사 공부를 하거나 박물관에 가면 볼 수 있는 헬렌 프랑켄탈러 같은 작가들의 작품을 갖고 싶었어요. 제가 정말 좋아하는 여성 작가이기도 하고요. 하지만 그런 작품들은 평생 돈을 벌어도 살 수 없을 정도로, 놀라운 가격이에요.



오히려 요즘에는 사라진 화가들을 좋아하게 됐어요. 우리가 이미 놓쳐버리는 바람에 미술사에서 간과된 작가들이죠. 지금 그들에 대해 글도 쓰고 있어요. 생전에도, 그리고 사후에도 오랜 시간 묻혀 있는 작가들이 있어요. 가끔 그런 작가의 과거 행적들이 다시 발굴되거나 소개될 때, 시대를 놀랍도록 앞서 갔던 걸 목격해요. 어떻게 나보다 몇 백 년 앞선 시대를 살면서 이런 생각을 했을까 하며 감탄하죠. 감동을 많이 받곤 해요. 꼭 사지 않아도 이런 작가들은 세상에 널리 알려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이제 제가 갖고 싶은 작품은 아직 제가 모르는 작가의 작품이에요.




Part 2. 아트 컬렉팅이 주는 무수한 가치와 행복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아트 컬렉팅을 지속해오시면서 깨닫게 된 꿀팁이 있으신가요?

제가 생각했을 때 진정한 꿀팁은 ‘무엇을 하든지 자신의 마음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에요. ‘내가 아트 컬렉팅을 왜 하게 되었지? 왜 열심히 일해서 번 돈으로 미술 작품을 사려고 하는 거지?’에 대한 해답을 스스로 찾지 않는다면 아트 컬렉팅을 시작하지 않는 것이 맞다고 봐요. 이건 주식이나 비트코인, 부동산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예요. 남들이 한다고 해서 따라 하면 절대 안 되죠.


구매할 작품을 선택할 때도 마찬가지예요. 그 그림은 타인의 집에 걸리는 게 아니니까요. 나의 집이나 사무실에 걸어두고 매일 봐야 하는 작품이기 때문에, 좋아하지도 않는데 억지로 사는 건 정말 후회밖에 남지 않아요. 그런 컬렉팅이 엄청난 아트테크가 될 가능성도 없고요.




좋은 작품을 고르는 튜터님만의 특별한 기준이 있을까요?

저는 처음 딱 봤을 때 바로 이해가 되지 않는 작품이 더 매력적이라고 생각해요. 훗날 그런 작품이 더 좋은 작품이었던 경우가 많은 것 같거든요. 우리가 어떠한 미(美)를 발견했을 때, 세상에 있었던 기존의 미라면 표현할 수 있어요. 예쁘다, 귀엽다, 상큼하다 같은 말들로요. 그런데 태어나서 처음 보는 감정은 정의를 내릴 수 없어요. 하지만 오히려 그런 감정들이 예술이 갖고 있는 새로움인 것 같아요. 그래서 작품을 보면서 표현할 수 없는 복합적인 감정을 느꼈을 때 좀 더 끌리는 것 같아요.


반대로 사람마다 취향이 있기 때문에 좋아하는 주제나 형식에 이끌릴 수도 있어요. 저는 추상을 좋아해서, 추상 작가들의 작품은 다른 것들보다 더 관심 있게 보고 있어요.



코로나 이후 미술계에도 변화가 있었나요?

아트 페어가 주로 해외에서 열리는데, 코로나 이전에는 저도 일 년에 열 번은 해외에 있었어요. 하지만 2020년 1월 대만 아트 페어를 마지막으로 코로나가 심해지는 바람에 해외로 나갈 수 있는 길이 막혔죠.


그런데 이제는 온라인으로 아트 페어가 열려요. 침대에 누워서 바로 작품과 가격을 볼 수 있게 된 거예요. 비행기를 타고 가야 했던 물리적인 시간과 비용을 아낄 수 있죠. 처음에는 좀 어색했는데, 요즘은 온라인이 얼마나 편한지 체감하고 있어요. 마이애미에 직접 가지 않아도 그곳에 무슨 작품이 있는지 온라인 뷰잉을 할 수 있거든요. 물론 직접 보는 게 제일 좋지만, 모든 시간을 쏟을 순 없으니 효율적인 방법이죠.


온라인 아트 페어의 또 다른 좋은 점은 대중에게 열려있다는 거예요. 원래 통상의 아트 페어는 VIP 카드를 가져야만 입장이 가능한 복잡함이 있었어요. 하지만 이젠 문턱이 낮아져서 누구나 참여할 수 있어요. 바빠서 외국에 가지 못했던 분들, 아트 컬렉팅을 처음 시작하려는 분들에게 상당히 좋은 변화인 것 같아요.


출처: frieze.com

추천하는 아트 페어가 있으신가요?

그럼요. 때마침 올해는 정말 좋은 해예요. 곧 LA에서 세계적인 아트 페어인 프리즈도 열리고, 원래 2년에 한 번씩 열리던 베니스 비엔날레도 한 해 늦춰지면서 올해 개장하죠. 5년에 한 번씩 열리는 카셀 도큐멘타도 올해고요, 스위스의 아트 바젤도 상당히 재밌고 굵직한 아트 페언데 코로나로 잠시 멈췄다가 이번 초여름에 다시 시작한다고 해요.


제가 지금 교육인이라서 함부로 이동할 수는 없지만, 코로나 상황이 괜찮아진다면 이런 행사에 참여하고 싶어요.



작품을 구매한 후 배송은 어떻게 진행되나요?

미술품 전문 운송 업체인 아트 핸들러가 따로 있어요. 갤러리가 정한 업체에서 무진동 차량으로 구매한 작품을 옮겨주죠. 연약한 작품들도 아주 꼼꼼하게 배송해줘요. 그러다 보니 시간도 서로 맞춰야 하고, 한 작품이 나에게 오기까지 많은 사람들을 만나야 해요. 하지만 이런 것도 또 하나의 재미 같아요.


물건을 살 때 택배비가 들듯이, 미술품 운송에도 비용이 들어요. 그래서 미술품을 구매하고 나서 추가적인 운송비가 든다는 것도 알고 계셔야 해요. 크기가 작은 작품의 경우에는 갤러리에서 직접 가져가시겠냐고 물어볼 때도 있어요. 크기와 위험도에 따라 다르지만, 그럴 경우엔 직접 가져가도 되고요.




이소영 튜터님의 못다 한 이야기는 곧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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