덜컹이는 프라하의 트램 위에서 보낸, 늦겨울의 문장들
어쩌면 여행은 익숙한 계절을 낯선 땅에 버리고 오는 행위인지도 모른다.
2월의 체코는 아직 겨울의 꼬리가 길게 늘어져 있었다. 프라하 성으로 향하는 길목, 차가운 돌바닥 위로 내려앉은 안개는 도시의 윤곽을 흐릿하게 지우며 중세의 어느 갈피 속으로 나를 밀어 넣었다. 한국의 2월이 봄을 시샘하는 조급함을 품고 있다면, 이곳의 2월은 지나간 계절을 정중하게 배웅하는 성숙한 침묵을 닮아 있었다.
코끝을 스치는 공기는 날카롭지만 결코 무례하지 않았고, 블타바 강물은 얼어붙은 시간을 천천히 녹여내며 카를교 아래를 흐르고 있었다. 나는 그 강물 위에 뜬 백조들의 무심한 움직임을 보며, 우리가 삶에서 놓치고 살았던 ‘기다림’의 미학을 다시금 복기했다.
프라하의 붉은 지붕들은 회색빛 하늘 아래서 더욱 선명한 온기를 뿜어냈다. 화려한 색채보다는 빛바랜 질감이 주는 위로가 더 컸다. 골목마다 배어 있는 빵 굽는 냄새와 이름 모를 악사의 바이올린 선율은 차가운 공기 층을 뚫고 들어와 마음의 빈 구석을 채웠다. 2월의 체코는 여행자에게 많은 것을 요구하지 않았다.
그저 걷다가 힘들면 이름 없는 카페의 삐걱이는 목재 의자에 앉아, 뜨거운 쇼콜라 한 잔의 온기에 전적으로 의지하면 그만이었다. 그 순간만큼은 세상의 속도감이 무의미해졌다. 시계탑의 인형들이 정각을 알리며 춤을 출 때, 사람들은 저마다의 시간을 멈추고 찰나의 경이로움에 시선을 고정했다.
문득 깨달았다. 우리가 여행에서 마주하는 것은 낯선 풍경이 아니라, 그 풍경에 투영된 ‘나 자신’의 이면이라는 것을. 체스키크룸로프의 좁은 계단을 오르며 숨을 고를 때, 나는 내 안에 쌓여 있던 소란스러운 생각들이 하나둘 발치 아래로 떨어져 나가는 것을 느꼈다. 성벽 너머로 펼쳐진 동화 같은 마을은 현실감 없는 아름다움으로 다가왔지만, 그곳을 부유하는 바람은 지극히 현실적으로 내 뺨을 어루만졌다.
비어 있는 계절이기에 오히려 더 많은 것을 담을 수 있었다. 2월이라는 이음새의 시간은, 무언가로 꽉 채워야 한다는 강박으로부터 나를 해방시켜 주었다. 채우기보다 비워내는 것이 더 우아한 여행이 될 수 있음을, 체코의 늦겨울은 온몸으로 말해주고 있었다.
여행의 끝자락, 다시 돌아온 프라하 역의 차가운 철제 벤치에 앉아 수첩을 펼쳤다. 그곳엔 적힌 단어들보다 적히지 않은 여백이 더 많았다. 누군가에게 이 여행은 단순히 유럽의 한 나라를 방문한 기록이겠지만, 나에게는 2월이라는 계절의 끝을 붙잡고 보낸 긴 고백과도 같았다.
도시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을 것이고, 계절은 다시 흐르겠지만, 내 기억 속에 박힌 프라하의 푸른 새벽빛은 쉬이 바래지 않을 것이다.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나는 가방 깊숙이 넣어둔 작은 마리오네트 인형을 만져보았다. 보이지 않는 실에 묶여 살아가면서도, 가끔은 그 실을 끊고 낯선 바람 속에 나를 던져두는 용기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이제는 안다. 안녕, 나의 2월. 안녕, 나의 체코.
늦겨울 프라하에서 찾은 나를 위한 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