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의 외투를 입고 걷는 2월의 독일, 그 서늘한 온도에 대하여
계절의 경계에서 가장 정직한 색을 내보이는 도시는 우리에게 침묵으로 말을 건넨다.
2월의 독일은 채도가 낮은 수채화 같다. 베를린의 브란덴부르크 문 앞에 서면, 잿빛 하늘은 대지의 무거운 역사를 짓누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안온하게 감싸 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한국의 2월이 봄을 향한 조급함으로 들떠 있다면, 독일의 2월은 여전히 겨울의 심장부에 머물며 스스로를 깊게 응시하고 있었다.
코트를 뚫고 들어오는 공기는 날카로운 금속성을 띠었지만, 그 서늘함 덕분에 오히려 정신은 맑게 깨어났다. 나는 이 낯선 계절의 온도를 사랑하기로 했다. 화려한 꽃구름 대신 차가운 돌바닥 위로 길게 늘어진 가로등 그림자를 밟으며, 보이지 않는 철학자들의 발자취를 뒤쫓는 일은 이 계절만이 허락한 사유의 특권이었다.
여행 가방을 채웠던 건 단순히 방한용품만이 아니었다. 독일의 변덕스러운 겨울 날씨를 견디기 위해 챙긴 겹겹의 옷들은, 낯선 환경에서도 나를 잃지 않으려는 최소한의 방어 기제였다. 하이델베르크 고성으로 향하는 길, 갑자기 흩날리는 진눈깨비에 외투 깃을 세우며 나는 깨달았다.
준비물이란 결국 불확실한 여정 속에서 우리가 가질 수 있는 유일한 '확신'이라는 것을. 튼튼한 우산과 방수 부츠는 젖은 길 위에서도 내가 망설임 없이 걸음을 내딛게 해주었고, 얇은 옷을 여러 겹 껴입은 덕분에 실내외의 큰 온도 차 속에서도 체온과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었다. 잘 준비된 리스트는 여행자의 몸을 보호하는 것을 넘어, 풍경을 온전히 감상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선물해 주었다.
독일의 2월은 정적 속에서도 치열하게 움직인다. 뮌헨의 시청사 앞 광장에서 사람들은 털모자를 깊게 눌러쓴 채 바삐 움직이고, 노천 시장에서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글루와인 한 잔에 몸을 녹인다. 그 풍경 속에 섞여 들며 나는 '적응'이라는 단어의 무게를 다시 생각했다.
날씨를 통제할 수는 없지만, 그 날씨에 어울리는 태도를 갖추는 것은 가능하다. 따뜻한 팩 하나가 주는 온기에 감사하고, 바람에 흩어지는 낙엽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법을 배우는 과정. 그것은 독일의 겨울이 내게 준 예상치 못한 철학적 화두였다. 비어 있는 숲길을 걸으며 나는 내 안의 소란스러운 소음들이 차가운 공기에 얼어붙어 바닥으로 투명하게 떨어지는 것을 느꼈다.
여행의 끝에서 다시 가방을 꾸린다. 독일의 겨울바람을 견뎌낸 외투에는 이제 낯선 도시의 향기와 묵직한 시간이 배어 있다. 2월의 독일을 여행한다는 것은, 화려한 색채를 걷어내고 세상의 뼈대를 마주하는 일이었다. 준비물 리스트에 적혀 있던 항목들은 이제 내 기억 속의 감각들로 치환되어 저장되었다.
도시는 여전히 무채색의 고요를 유지하겠지만, 그 속에서 내가 발견한 온기만큼은 서울의 따뜻한 방 안에서도 오래도록 식지 않을 것이다. 짐을 줄이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어떤 날씨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을 마음의 옷 한 벌을 챙기는 일임을 이제는 안다. 안녕, 차가웠으나 누구보다 뜨거웠던 나의 2월, 나의 독일.
"단순한 짐 싸기를 넘어, 독일의 계절을 온전히 누리기 위한 날씨별 꿀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