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도화지 위에 나만의 색을 칠하는 법, 2월의 홋카이도
눈이 내리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온통 눈으로 지어지고 있었다.
신치토세 공항에 발을 내딛는 순간, 눈앞에 펼쳐진 것은 끝을 알 수 없는 순백의 미학이었다. 2월의 홋카이도는 겨울의 절정 그 자체였고, 모든 소음을 흡수해버린 듯한 고요가 도시를 덮고 있었다.
사람들은 흔히 홋카이도의 추위를 방어하기 위해 두꺼운 검정 패딩 속에 몸을 숨기곤 하지만, 나는 이번 여행에서 조금 다른 선택을 하기로 했다. 무채색의 겨울 풍경 속에 나만의 색깔을 한 방울 떨어뜨려 보는 것. 그것은 단순히 예뻐 보이기 위함이 아니라, 차가운 계절을 대하는 여행자로서의 작은 저항이자 설렘의 표현이었다.
비에이의 하얀 설원 위에 섰을 때, 내가 고심해서 골라온 선명한 코트의 색감은 마법처럼 빛났다. 패딩의 둔탁함 대신 겹겹이 껴입은 옷들 덕분에 몸은 가벼웠고, 풍경과 나 사이의 거리감은 좁혀졌다. 삿포로 시내의 오래된 붉은 벽돌 건물 앞에서도, 오타루 운하의 가스등 아래에서도 나는 풍경의 일부가 되기보다 풍경을 완성하는 마지막 조각이 되고 싶었다.
추위를 견디는 법은 단순히 두꺼운 옷 하나에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따뜻한 온기를 품은 여러 겹의 옷을 정성껏 챙겨 입는 과정에 있었다. 그 수고로움 덕분에 카메라 렌즈 속의 나는 계절에 압도당하지 않고, 겨울의 한복판에서 가장 나다운 모습으로 기록될 수 있었다.
인생샷이라는 말은 어쩌면 그 순간의 공기와 나의 기분이 완벽하게 일치했을 때 터져 나오는 감탄사일지도 모른다. 펑펑 쏟아지는 눈송이를 맞으며 털모자를 깊게 눌러쓰고 웃음을 터뜨리던 순간, 나는 내가 이 겨울을 진심으로 즐기고 있음을 깨달았다.
기능성만 강조했다면 놓쳤을 미묘한 감성들이, 부드러운 머플러의 질감과 장갑 끝에 닿는 차가운 눈의 감촉을 통해 온전히 전해졌다. 홋카이도의 2월은 냉혹한 추위가 아니라, 우리가 잊고 지냈던 순수함을 일깨워주는 따스한 초대장이었다. 잘 준비된 옷차림은 낯선 추위 속에서도 내가 더 멀리 걷고, 더 깊이 사유할 수 있게 해주는 든든한 용기가 되어주었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 사진첩을 넘기다 보면, 배경보다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그날의 내 표정이다. 눈부신 설원보다 더 빛나던 나의 미소는, 아마도 '준비된 여유'에서 기인했을 것이다. 겨울 여행은 모험이지만, 그 모험을 아름답게 기록하는 것은 여행자의 다정한 노력이 필요한 일이다.
2월의 홋카이도가 내게 가르쳐준 것은, 계절에 순응하되 그 속에서 자신만의 색을 잃지 않는 법이었다. 가방 속에 가득했던 옷들은 이제 세탁소로 향하겠지만, 눈밭 위에서 나눈 뜨거운 호흡과 찬란했던 색채의 기억은 내 마음속에 지워지지 않는 풍경화로 남을 것이다. 겨울은 춥지만, 우리의 기억은 충분히 따뜻할 수 있다.
"검정 패딩만 챙기셨나요? 홋카이도에서 '인생샷' 남기는 코디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