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의 끝자락, 강물이 먼저 알고 데려온 봄의 전령들
계절의 틈새에서 가장 먼저 온기를 품은 바람이 내 옷깃을 스치고 지나갔다.
섬진강은 언제나 계절의 경계선에 서 있다. 아직 서울의 거리가 회색빛 겨울 코트에 몸을 움츠리고 있을 때, 남쪽의 이 강가는 이미 물밑에서부터 은밀한 소요를 시작한다. 나는 그 소요의 정체를 확인하기 위해 짐을 꾸렸다.
2월과 3월, 달력의 숫자가 바뀌는 그 모호한 경계에서 떠나는 여행은 단순히 풍경을 보러 가는 것이 아니라, 시간의 흐름을 마중 나가는 의식과도 같다. 차가운 대기를 가르고 남도로 향하는 길, 차창 밖 풍경이 무채색에서 조금씩 채도를 높여갈 때쯤 비로소 나는 섬진강 줄기에 닿았음을 직감했다.
강물은 고요했으나 그 속내는 분주해 보였다. 겨울내내 얼었던 땅을 어루만지며 흐르는 강물 위로 윤슬이 보석처럼 부서졌다. 그 반짝임은 마치 봄을 깨우는 신호탄 같았다. 광양 매화마을에 들어서자, 산허리에 하얀 구름이 내려앉은 듯한 풍경이 시야를 가득 채웠다. 눈인가 싶어 가까이 다가가 보면, 그것은 차가운 눈이 아니라 따스한 향기를 머금은 매화였다.
앙상했던 가지마다 팝콘처럼 터져 나온 꽃망울들은 겨우내 참아왔던 생명의 언어들을 일제히 쏟아내는 듯했다. 홍매화의 붉은 빛은 수줍은 듯하면서도 강렬하게 시선을 붙들었고, 청매화의 푸른 기운은 고고한 선비의 기상을 닮아 있었다. 그 사이를 걷는 일은 마치 수묵화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바람이 불 때마다 흩날리는 꽃잎은 봄눈이 되어 어깨 위로, 그리고 마음 위로 소복이 쌓였다.
강을 건너 구례로 향하는 길, 풍경은 또 다른 색채로 옷을 갈아입는다. 매화가 고결한 순백의 서곡이라면, 산수유는 명랑한 노란빛의 왈츠다. 산동마을 돌담길 너머로 피어난 산수유꽃은 마치 누군가 붓에 노란 물감을 듬뿍 찍어 허공에 툭툭 털어놓은 점묘화 같았다.
투박한 고목에서 어찌 저리도 여리디여린 꽃이 피어나는지, 자연의 섭리는 언제나 인간의 이해를 넘어선 경이로움으로 다가온다. 그 노란 꽃그늘 아래 서면, 굳어있던 감각들이 말랑말랑하게 녹아내리는 것을 느낀다. 섬진강 변을 따라 이어지는 이 꽃들의 향연은 겨울이라는 긴 터널을 지나온 우리에게 건네는 가장 화려하고도 다정한 위로였다.
여행은 결국 풍경을 통해 나를 들여다보는 일이다. 섬진강의 봄꽃들이 그토록 아름다운 이유는, 혹독한 추위를 견뎌내고 가장 먼저 꽃망울을 터뜨린 그 강인함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종종 잊고 산다. 화려한 개화 이전에 인내의 시간이 있었음을.
강바람에 실려 오는 꽃향기를 맡으며 나는 생각했다. 내 안의 겨울도 언젠가는 이들처럼 향기로운 봄을 맞이할 것이라고. 섬진강은 단순히 흐르는 물이 아니라, 시간을 싣고 계절을 나르며 우리에게 '시작'이라는 단어를 가르쳐주는 스승과도 같았다. 2월의 끝자락, 그곳에는 이미 완연한 봄이 흐르고 있었다.
섬진강에서 만난 봄은 눈으로 본 풍경보다 가슴에 남은 온기가 더 오래 기억될 것 같다. 꽃은 지더라도 그 꽃이 피어났던 자리에 머물렀던 따스한 햇살과 바람의 기억은 쉬이 사라지지 않을 테니 말이다. 강물은 멈추지 않고 흘러 바다로 가고, 봄 또한 찰나의 순간을 지나 여름으로 향할 것이다. 하지만 오늘 내 마음에 맺힌 이 매화 한 송이와 산수유 한 줌의 노란 빛은, 다시 돌아올 겨울을 견디게 할 단단한 기억의 씨앗으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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