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바람이 먼저 말을 거는 섬
설레임은 늘 출발보다 도착 직전에 가장 선명해진다.
비행기 창밖으로 섬의 윤곽이 보이기 시작했을 때, 1월의 제주도는 생각보다 조용한 얼굴로 나를 맞이했다. 관광 성수기의 들뜸 대신, 바람과 구름이 주인이 된 시간이었다. 공항을 나서자 차가운 공기가 뺨을 스쳤고, 그 순간 이 여행은 이미 여름의 제주와 다르다는 걸 알았다. 이 섬은 계절에 따라 표정을 바꾸는 게 아니라, 아예 다른 사람처럼 살아간다.
1월의 제주는 말을 아낀다. 바다는 더 낮은 소리로 출렁이고, 오름은 풀 대신 숨을 고른다. 텅 빈 주차장과 느린 신호등, 닫힌 카페 앞에서 괜히 오래 서 있던 시간마저 여행의 일부가 되었다. 무엇을 해야 할지 정해지지 않은 일정은 오히려 마음을 가볍게 했다. 걷다 멈추고, 멈추다 다시 걷는 일만으로 하루가 채워졌다.
그 적막 속에서 설레임은 더 또렷해졌다. 화려한 풍경 때문이 아니라, 아무도 방해하지 않는 나만의 감각이 살아났기 때문이다. 바람 소리 하나에도 귀를 기울이게 되고, 돌담 사이로 스며드는 햇빛에 이유 없이 웃게 된다. 이곳에서는 특별한 감동을 애써 찾지 않아도 된다. 계절이 이미 충분히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까.
여행이란 결국, 낯선 장소에서 나를 다시 만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1월의 제주도는 질문하지 않는다. 다만 조용히 곁에 서서, 지금의 나를 그대로 두는 법을 알려준다. 그래서 이 계절의 제주는 설레임이라는 단어보다, 안심이라는 말에 더 가깝다. 떠나기 전보다 조금 느려진 마음으로,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 같아서. 그게 이 여행이 남긴 가장 따뜻한 선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