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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영혼에 사랑의 식단을 먹이는
이유

by 미친 에너지


"당화혈색소가 7 입니다. 당뇨약을 드셔야 할 단계에요"


"저는 당뇨를 받아들일 수 없어요. 4개월 동안 살도 갑자기 찌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은 거에요.

아직 아니에요, 일단 운동하고 조절 한번 해볼게요"


나는 빡센 의사다.

당뇨를 집에서 체크하지 않고 그냥 운동하고 음식 조절 해보겠다고 막연하게 얘기하는

환자를 그냥 보낼 수 없다.

애들 키우랴, 직장 출근하고 퇴근하랴, 집안일하랴 ...

얼마나 허기가 지는 순간이 많을까.

지쳐서 당뇨고 뭐고 생각도 나지 않을 순간이 얼마나 많을까.


불보듯 뻔하다.

그렇다고 해서

환자분은 제대로 할 수가 없어요. 무조건 제 말을 들으셔야 해요. 들어보세요.


라고 말하는 것은 내가 초자였을 때다.


이 분야를 경험해보지 못한 환자의 생각이 짧을 수밖에 없는 것은 당연하다.


모든 것은 내가 품는 느낌대로 펼쳐져 나타나는 원리에 벗어나는 것은 없다.


그런 환자를 비난하는 것은 쉽다.

내가 환자의 짧은 생각을 비난할수록 내 안에서 느끼는 이 환자에 대한 부정적인 느낌은

그대로의 결과를 만들어내는데 쓰이는 에너지가 된다.

실제로 그런 느낌에서 환자를 설득할수록 환자는 더 반감을 가지고 자기 고집대로 할 뿐임을

무수히 많은 경험으로 알게 되었다.


나는 내 환자를 건져내는 것이 목적이지, 비난과 지적이 목적이 아니다.


이분을 정말 살리고 싶다면 이 분을 사랑으로 봐야 한다.

내가 사랑을 품을 때 사랑의 결과가 나온다.


사랑은 비난하지 않는 것이고 하나라도 칭찬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당뇨를 체크하지 않는다고

고집부리며 혼자 알아서 하겠다는 이 사람을 어떻게

비난하지 않고 하나라도 칭찬할 것인가.


당뇨를 체크하는 게 뭐가 그리 당뇨 관리에 중요하냐고 묻는다면

그건 내 노하우다. 설명이 길어진다. 그저 나는 빠른 길과 확실한 길을 가르쳐 줄 뿐이다.

실천해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당을 체크하며 느껴가는 환자만이 그 이유를 다시 들으면 무릎을 탁 친다.



첫번쨰, 나는 당뇨를 받아들일 수 없어하는 환자를 비난하지 않고 당뇨 관리 방법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알겠습니다. 일단 3개월 후 다시 검사할 때까지 생각대로 최대한 조절해보세요.

다만 저도 뚫린 입이 있으니 당뇨 조절 하는 요령을 일단 그냥 들어만 두세요"


환자는 이상하게 당을 언제 어떻게 재면서 음식을 조심해야하는지 상세히 설명하는 동안

당을 안 잴 거라고 알아서 할 거라고 반격하지 않고

계속 끄덕끄덕한다.


물론 이 환자는 정말 고집있는 사람이라 당을 재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들어놓는 것이 분명히 영향을 준다.


나는 환자의 의견을 존중했고, 우리는 최대한 빠른 시일내에 당화혈색소를 검사하기로 합의했다.


기회를 받은 이 분의 노력이 성공하면 당뇨약 안 드시고 당뇨 전단계에서 관리하는 것이고,


성공 못 하게 되면 이 분은 순순히 나를 따르기 시작할 것이다.



둘쨰, 나는 이 분을 슬쩍 칭찬한 것이다. 인정하는 것도 칭찬이다.


"그래요. 한번 해보세요. 그렇게 마음 먹으셨으니 한번 해보세요. 대신 빨리 검사해서 그 노력이 제대로 효과가 있었는지 확인해봅시다"



예전에 초짜 시절의 나 같으면

오늘 당장 내 말을 수긍하고 받아들이지 않는 이 환자를 답답해하며

어떻게든 오늘 안에 내 말을 당장 듣게끔

힘을 잔뜩 주면서 강요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내 안의 에너지가 모든 내 앞의 일을 만든다는 것을 이제 안다.


이 환자의 일도 내 앞에 일어난 일인 것이다.


내가 초짜 시절 그렇게 열정적으로 환자에게 일장 연설을 해도 환자들이 말을 안 들었던 것은

내 안에서 이 환자를 답답하게 여겼고, 부족한 생각을 하는 존재로 여겼기에

이 환자는 계속 나를 답답하게 하는 역할로 내 앞에 나타나는 것이다.


나는 에너지가 사건들을 만든다는 것을


하루에 100명이상의 사람들을 만나면서 꺠달았다.


이 분을 바꾸기 위해서는 이 사람에 대한 내 안의 에너지를 (느낌 감정) 바꾸면 따라서 바뀌는 것이다.

오늘도 140명 넘는 환자를 보면서 저항이 걸릴 떄마다

계속 다시 내 에너지를 가다듬었던 이유이다.


나는 내 환자만 잘 되면 되는 것이다.


그러면 나는 이 환자가 잘 될 수 있음을 느끼고


이 환자 안에 있는 잘 실천할 수 있음을 발견하고 봐주면 되는 것이다.


이것이 칭찬이다. 이것이 인정이다. 이것이 사랑이다.


내가 사랑을 실천할 때마다 환자들은 더 잘 되서 나타났다. 나는 그저 도와줄 뿐이다.


매일매일 , 내일도 매 순간... 환자와 나는 사랑을 일꺠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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