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만 과거의 것들만 그렇다.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어린 마음에 여쭤, 본 적이 있다. `할아버지, 할아버지도 슬픈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슬픈가요?` 귀가 잘 안 들리셔서 큰 소리로 물어봤던 것 같다.
나는 궁금했다. 어린 나에게 어른들은 세상 많은 것들을 겪고 단련된 단단한 사람들이었다. 불혹의 나이를 겪고 지천명의 나이를 지나온 사람들은 매해 업데이트되고 강력해지는 안드로이드 로봇 같은 것으로 생각했다.
외할아버지 대답은 `그렇다, 나도 슬프단다.`였다. 머리를 무언가로 크게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어른들은 신생아들보다 웃는 횟수가 많지 않다. 이는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더더욱 명확해진다. 나는 그들이 웃지 않는 것이 감정이 상당히 평평해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슬프지 않고 기뻐하지 않는 게 아닐까? 정말 못 느끼게 된 것은 아닐까? 내심 두려웠다. 마음이 요동치는 것도 내겐 경계 대상이지만 매번 고요한 바다처럼 파도가 치지 않는 것도 경계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기뻐했다. 하마터면 내가 현재 겪고 느끼는 모든 것들을 나중에 느끼지 못한다면 슬플 것을 생각했기 때문이다. 정말 다행이다. 평생 영화와 책을 즐길 수 있다는 사실에 너무 기쁜 마음이다.
후에 알게 된 사실은 인간들은 생각하지만 그와 동시에 합리화의 동물이란 것이다. 생각하고 행동한다고 생각하지만, 행동하고 합리화하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내가 겪은 일들도 원했건 원치 않았건 행동된 것들이고, 그것들을 합리화하는 생각을 한다. 그것의 일부가 매년 어머니가 보시는 사주팔자 같은 것일 수 있다. 사주팔자가 그래서 작년에 내가 그랬다는 레퍼토리이다. 수십 년을 겪은 것들에 대해 합리화하면 좋은 방향으로는 멘토가 되고 나쁜 방향으로는 꼰대가 된다. 슬픈 것들은 덜 슬픈 것이 되고 나쁜 기억도 드문드문 생각이 날까 말까 한 게 되는 것이다. 청년시절 겪은 일로 평생을 슬프면 너무 괴롭지 않을까.
할아버지의 감각은 무뎌지지 않았다.
빨간 경상도식 소고기 뭇국은 늘 맛있다고 하셨다. 손자 생일에 먹는 피자도 너무 맛있다고 하셨다. 먼저 죽은 외할아버지의 딸도, 아내도 드문드문 생각났을 것이다. 이어령 선생님은 돌아가 시 전에 가장 보고 싶은 사람이 젊은 시절에 죽은 딸이 아니라 죽지 말라고 당부했던 20살 숙명여대 학생이라고 했다. '나 죽지 않아' 말했어야 한다고 후회하셨다. 그때는 너무 냉철하게 모든 사람은 죽는다고 얘기했기 때문이라고 하셨다. 그립고 슬픈 기억이 드물어지셨다고 하셨다.
과거의 것들만 무뎌진다는 사실이 너무나 기쁘다. 어린아이처럼 생각하고, 그와 동시에 더 이상 엄마 치맛자락을 잡지 않은 채 혼자 카페에 있는 것이 난 너무 좋다. 나는 여권이 없다. 아직 해외여행을 가보지 않았다. 스스로 난 폐쇄적인 사람이 아닐까? 하는 부정적인 마음이 들곤 했다. 지금 아니면 안 되는 걸까? 생각했다.
노년의 나이가 되어서도 내가 같은 것을 보고 느낄 수 있다니! 다행스럽다. 조금 더 미뤄도 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맞다. 합리화하고 있다. 마음 같아서는 꼭 아껴놨다가 80대에 이리저리 유럽 국가를 돌아다니고 싶다. 더 이상 신경 쓸 게 없을 때, 더 많은 지성을 갖추게 되었을 때를 위해 아껴두고 싶다. 그때의 나도 소고기 뭇국과 콜드 브루를 즐기는 사람일 테지만, 과거의 감정만 일부 뭉뚝한 훌륭한 안드로이드 로봇이 아닐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