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상황, 가정생활, 건강 그리고 자의식
이어령 선생님의 말씀으로 글을 시작하고자 한다. 젊은이는 늙고, 늙으면 병들어 죽는다. 사람의 삶은 유한하다. 하루하루의 삶이 이미 가득 찬 물독이 아닌 두레박이어라. 꾸준히 행복의 뒤꽁무니를 좇아야 할 것이다. 우리는 꾸준히 행복을 좇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코스모스의 상태는 되려 결핍의 상태이다.
리처드 이스털린의 <지적 행복론>은 이스털린의 역설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소득이 증가할수록 행복이 증대되지 않는다는 역설이다. 이는 전통 경제학과는 배치되는 의견으로, 'MORE IS BETTER' 기조의 이야기와 상반된 이야기이다.
소득의 증가가 행복으로 연결되지 않는다는 다양한 근거들이 소개된다. 짧게만 이야기하자면 다음과 같다. 경제 상황은 사회적 비교가 수시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모두가 같이 소득이 증가한다면 행복지수가 전혀 올라가지 않는다. 남들의 소득보다 가파르게 나의 소득이 올라가더라도 이내 행복지수는 이전의 상태로 회귀한다. [갖고 싶은 것 - 갖고 있는 것]은 늘 상수(constant)로 고정된 값이기 때문이다. 많이 가진다 한들 갖고 싶은 것도 같은 수만큼 늘어난다. 늘 결핍의 상태에 있는 것이다.
경제 상황이 아닌 가정생활, 건강은 '과거의 나'와 비교하는 개인적인 지표이기 때문에 나아지면 나아질수록 행복지수가 올라간다. 쉽게 말해 과거의 나보다 현재의 내가 건강하다면 나는 행복해진다. 다른 사람의 건강과 내 행복은 무관하다.
<지적 행복론>에서는 성인의 행복이 이렇듯 세 가지로 결정된다고 보았다. '경제상황, 가정생활, 건강'이다. 나는 여기에 한 가지를 더 보태고 싶다. '자의식'이다.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보면 유대인 수용소에 수감된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끔찍하게 수용소를 묘사한 이야기가 아니다. 정신과 의사이자 수용된 사람으로서의 프랭클의 눈으로 본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이들에게 행복을 가늠할 수 있는 '경제상황, 가정생활, 건강'은 모두 없다. 그들은 벌거 벗겨졌으며 가진 것은 모두 나치 장교에게 빼앗겼다. 아내와 생이별했으며, 극한의 노동과 더불어 하루 빵 한 두 조각으로 연명했다. 제대로 씻지도 못했다. <지적 행복론>의 이야기에 따르면 이들은 전혀 행복할 수 없다. 세상에서 제일 불행한 사람에 속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실제로 불행하게 묘사된다. 수시로 이뤄지는 구타와 야위어가는 자신의 몸, 2000여 명의 수용소에서는 하루 평균 6명이 죽어나갔다. 약도 제대로 보급되지 않았고, 그들은 자신의 배변 위에 누워 자기도 했다. 영양실조는 기본이고 정신 착란을 일으키며 무감각의 상태로 살았다. 말 그대로 '살아만' 있었다. 라이프가 아닌 리빙의 영역이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들도 행복을 말할 때가 있었다. 앞서 말한 행복의 요건들이 모두 결핍되었지만 말이다. 언젠가 전쟁이 끝나서 수용소에서 탈출한다는 희망뿐 아니었다. 그들은 수용소 안에서도 시를 읊고 노래하기도 했다. 자신이 수용되기 전에 했던 일을 부풀려 이야기하기도 했으며, 탈출한다면 이루어갈 꿈을 이야기하기도 했다. 작게는 콩으로 만든 죽에 콩알이 몇 알 더 들어있다는 사실에 그들은 기뻐했다.
극한의 환경에서 누가 살아남았을까? 프랭클이 말하길 스스로의 가치를 포기한 사람은 모두 죽었다. 스스로를 포기한 사람들은 고압의 전류가 흐르는 철조망에 몸을 던졌다. 프랭클은 이 환경이 주는 고통을 또렷하게 보고자 노력했다. 최소한 자신의 존엄을 유지하고자 했던 것이다. 학자로서의 가치를 유지하고자 자신이 했던 연구 내용의 키워드를 곳곳에 새겼다. 의사로서의 자신을 잃지 않기 위해 탈출할 수 있던 기회도 포기했다. 환자들 곁에 남았다. 어디 있을지 모를 아내와 마음으로 소통하며 행복을 느꼈다고 했다.
과연 현대인의 행복을 '경제상황, 가정생활, 건강'으로 지수화할 수 있을까? 무언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래도 그것은 '자의식'일 것이라 생각한다. 자신대로 살아가고 있는가? 자신의 가치를 만들고 있는가? 자신의 이야기로 살아가고 있는가? 이러한 질문을 품고 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매우 큰 차이라고 생각한다. 건방지게도 비로소 나는 행복을 조금 이야기할 수 있게 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