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하는 다짐
시간을 때운다는 표현을 개인적으로 좋아하지 않는다. 불을 때는 것도 아니고 시간을 장작 삼아 때우는 것 같은 이미지를 준다. 불쏘시개로 쿡쿡 찔러서 아궁이 밑에서 불태울 거 같다. 사전적 의미에서 시간을 때우는 것은 '남는 시간을 다른 일로 보내다'이다. 이때 '다른 일'이 대개는 빠르게 시간을 보낼 것들, 생각하지 않고 할 수 있는 것들, 즉 내가 해야 하는 주요한 일이 아닌 그 외의 것들로 채운다는 말로 이해했다.
시간을 돈으로 환산하면 얼마일까? 를 계산한 사람들
시간을 소득, 세율, 생활비 등을 조합하여 만든 모형으로 계산하고자 했다. 영화 '인 타임'은 시간을 소재로 한다. 시간을 화폐로 사용하며, 시간을 많이 소유한 사람들은 늙지 않고 영생을 누린다. 흔히들 시간을 아껴라. 하는 일반론적인 조언을 많이 한다. 크게 공감하는 이야기이다. 내게 시간은 너무너무 소중하다. 다만 너무 일반적이어서 바른생활 교과서를 보는 느낌이 든다. 물론 시간은 계산할 법한 그렇게 딱딱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그 가치를 숫자로 생각한다면 더욱 와닿을 것으로 생각한다.
'아버지의 죽음 앞에서'를 쓴 저자이자 호스피스 의사인 레이철 클라크의 이야기를 소개하고자 한다.
이 책의 주제가 시간을 숫자로 확인해보자는 이야기는 아니었을 것이다. 다만 괜찮은 생각을 건네주었다.
저자와 아버지는 더 이상 치료가 불가능한 상태의 환자들, 즉 죽음을 앞두고 있는 환자들을 돌보는 호스피스 의사이다. 수많은 죽음을 눈앞에서 지켜보고 그들을 편안하게 해 주려 노력한다. 책에서는 죽음을 앞둔 다양한 사람들이 소개된다. 매주 체스 모임 가서 체스를 두고 호스피스로 복귀하는 노년의 환자, 죽음을 앞둔 젊은 신부는 병원에서 결혼식을 치렀다. 호스피스에 들어온 환자들은 이미 적극적인 치료를 어느 정도 거부한 상태이다. 죽음을 알고 있다. 그들은 본인들이 가장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것들에 마지막 시간을 사용했다.
엉뚱한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그러한 호스피스 병원에서의 생활은 얼마나 많은 비용이 들까? 2015년 호스피스 돌봄에 건강보험이 적용되기 전 병동에서 본인이 부담해야 할 금액은 평균적으로 한 달에 500만 원이었다. 현재 건강보험이 적용된 후에는 간병 서비스를 포함해 월 60만 원 수준이라고 한다. 만약 친구들과의 체스 모임이 월 60만 원의 회비를 걷는다면 어떨까? 나는 개인적으로 참여하고 싶지 않다. 같은 돈으로 결혼식을 치르고 신혼생활을 한다면 어떨까. 음.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꽤 가치 있어 보인다.
앞서 말했듯이 소득, 세율, 생활비 등으로 시간을 돈으로 계산한 모형은 쉽게 찾아볼 수 있고, 이를 본인 상황에 대입해서 값을 얻어낼 수 있다. 그렇지만 책에서 소개된 사례만 보았을 때 그 가치가 늘 나에겐 합리적인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난 60만 원으로 더 많은 모임과 취미를 만들 수 있다. 나의 지금 한 시간이 그들의 한 시간과 같은 가치를 가진다고 생각해보자. 난 그들보다 더 건강하다. 더 생산적인 것들로 하루를 채울 수 있다. 그들이 최고로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내 가치관에 따라서 더 가치 있는 것들로 하루를 몽땅 채울 수 있다. 권태로워 괴로울 때마다 생각한다.
나는 아직 호스피스로 복귀하지 않아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