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영이의 엄마는 족발집을 한다. 오랫동안 한 자리에서 했던지라 단골손님도 많고, 족발을 먹으러 오는 지방 손님들도 많다. 24시간 운영을 하는 곳인데 최근에는 연예인들의 회식 장소로 유명해졌다. 그 덕에 1시간 대기줄까지 생겼다. 하영이네 족발집이 돈을 긁어모은다고 동네 사람들에게 소문이 자자하다.
하영이의 엄마는 자식밖에 모른다. 할 수 있는 대로 좋은 건 다 해주고 싶어 한다. 안 아픈 곳이 없지만 자식들을 위해서라면 뭐든 할 수 있다는 마음으로 하루도 쉬지 않고 일한다. 친척 장례식도 가지 않을 정도로 독하게 일을 하는 엄마의 주변 사람들은 인정머리 없고 돈에 미친 괴물이라며 혀를 찬다. 그래도 엄마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럴 때마다 ‘내가 누구 때문에 괴물이 됐는데!’라며 아빠를 향해 화를 낸다.
하영이의 엄마는 아빠와 사이가 좋지 않다. 아빠가 귀가가 늦거나 주말에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 다니며 집에 들어오지 않는 것에 불안해했다. 툭하면 싸웠고 엄마는 속상한 마음에 술을 자주 찾았다. 술에 취해 ‘이럴 거면 그년이랑 결혼하지!!’라는 말을 반복했다. 엄마가 말하는 “그년”은 아무래도 아빠가 대학생 때 만났던 아빠의 여자친구다. 아빠가 오래전에 술에 취해서는 “내가 당신을 선택하는 게 아니었어!! 그렇게 착하고 예쁜 신영이를 두고 당신과 살다니. 내가 미쳤지. 내가 돈에 미쳤던 거야!!”라며 엄마에게 고함쳤던 일이 있었다. 그 후로 엄마는 술만 마시면 아빠에게, 아니 아빠가 없는 허공에도 “그년”을 언급하기 시작했다.
하루는 하영이에게 휴대폰을 들이밀며 아빠가 보낸 문자를 보여줬다.
- 바람났냐, 식당에 손님이 이렇게 많은데 나가 놀고 싶냐. 정신 차려라.
“네 아빠가 이렇게 저질이다. 나는 이렇게 열심히 사는데 네 아빠를 봐라. 돈만 쓰는 주제에 엄마가 친구라도 만날라 하면 지랄염병이니. 이래도 엄마가 괴물 같냐? 아빠야말로 진짜 괴물이지!!”
하영이의 엄마와 아빠는 고용주와 고용인의 관계였다. 둘이 처음 만났을 때, 아빠는 그 당시 대학생이었고 생활비가 필요했다.
대학생이던 아빠는 엄마의 족발집에서 서빙 일을 하며 영업 종료 후 비어 있는 식당에서 하숙을 하였다. 엄마에게는 공부도 일도 열심히 하는 대학생 아빠가 멋져 보였다. 둘은 나이도 같고, 서울로 상경했다는 것도 같아서 고용인과 고용주의 사이를 금방 넘어섰다. 아빠는 자신의 꿈을 지지해 주는 엄마에게 고마웠다. 군대에 간 동안에도 아빠의 여자친구 신영이보다도 하영이의 엄마가 더 자주 방문했다. 그렇게 엄마의 구애 끝에 제대 후 둘은 혼인 신고를 하고 함께 살게 되었다.
그 후로 엄마는 아빠가 공부에만 매진할 수 있도록 경제적으로 큰 버팀목이 되었다. 덕분에 아빠는 대학을 무사히 졸업할 수 있었다. 하지만 졸업과 동시에 엄마가 임신을 하면서 아빠는 취직을 하지 못하였다. 대신 아빠는 식당을 운영해야 했다. 하영이의 언니가 돌이 될 때까지만 하자 했던 아빠의 족발집 일이 연년생 하영이를 가지는 바람에 또다시 미뤄지게 되었다. 그렇게 하영이가 태어나면서 엄마와 아빠의 사이는 멀어지고 말았다.
엄마는 아빠의 창창한 앞길을 막았다는 죄책감에 아빠가 하는 일에 반대하지 못했고, 아빠는 결혼 생활이 자신의 미래를 망쳤다는 생각에 누군가의 아빠로 사는 것이 아닌 본인 이름 석자 ‘박한태’를 알리며 사는 것에 목숨을 걸며 사업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사업은 순탄치 않았다. 사업의 실패를 겪을 때마다 족발집에서 번 돈으로 그 빚을 마련해야 했다. 아빠는 스스로가 쓸모없음을 느끼는 것이 두려웠다. 가정에서도 사회에서도 설 자리가 없는 것이 어두운 동굴 속에 갇힌 것 같이 공포스러웠다.
불안과 공포로 박한태라는 남자는 가족들에게 괴팍한 존재가 되었다. 정확히 말하면 아내와 둘째 딸 하영이에게 괴팍했다. 아빠는 중졸인 엄마를 가방끈이 짧다며 무시하고, 족발집의 고된 노동으로 퉁퉁 부은 몸을 비난했다. 그리고 엄마를 쏙 빼닮은 하영이와 본인을 닮은 똑똑하고 예쁜 첫째 딸을 비교하며 아빠는 하영이와 엄마의 자존감을 갉아먹었다. 아빠가 그럴수록 엄마는 하영이를 더 미워하고 아빠와 똑같이 무시했다. 엄마는 본인을 닮아 둔한 머리와 외모를 가진 하영이를 혐오했다.
하영이는 그런 엄마가 언니처럼 무서웠다. 기분이 좋으면 웃으면서 맛있는 것도 해주고 따뜻한 눈으로 바라봐 줬지만 아빠가 엄마의 마음을 쑤셔놓는 날이면 하영이를 향해 폭언을 하였다.
엄마 역시 첫째 딸에게는 그러지 않는다. 첫째 딸은 엄마에게 희망과 행복 버팀목이었다. 아빠와 공유할 수 있는 행복과 기쁨이었다. 더 나아가서는 아빠와 다시 연결시켜줄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중요한 열쇠 같았다. 왜냐하면 하영이의 언니는 엄마 아빠의 축하할 수 있었던 첫 번째이자 마지막 아기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둘째 하영이의 임신 소식은 아빠의 꿈을 파괴하는 나쁜 소식이었고, 그런 아빠의 마음 때문에 엄마 역시 행복하지 않았던 임신이었다. 그래서일까? 엄마는 오늘도 술에 취해 하영이를 붙잡고 푸념한다.
“네가 아들로 태어나기만 했어도 지금이랑은 다를 텐데…. 네가 아들이었으면 아빠가 정말 행복했을 텐데….. 그럼 나도 이렇게 불행하지 않았을 텐데….”
하영이는 아들로 태어나고 싶다. 그럼 하영이도 엄마 아빠에게 사랑받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영이는 딸로 태어난 것이 미안해서, 세상에 존재하는 것이 미안해서, 술에 취해 울고 있는 엄마를 똑바로 쳐다볼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