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영이를 닮은 무언가
시끄럽고 땀냄새로 가득한 여름의 고등학교 교실, 점심 식사 후 삼삼오오 교실로 돌아온 남학생들이 버즈의 ‘가시’를 모창하고 있다. 남학생들은 성인 남성 못지않은 굵직한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는 본인의 모습이 멋있을 것이라는 착각에 흠뻑 심취해 있다. 여학생들은 교실 문옆에 자리 잡은 전신 거울 앞에 앉아 떠든다. 거울 앞자리는 사춘기 여학생들이 가장 선호하는 자리다. 쉬는 시간 거울 앞에 앉을 수 있다는 것은 그 교실에서 가장 영향력이 있다는 증거다. 수학여행 버스 안 가장 뒷좌석을 앉을 수 있는 것과 같다. 자리 배치를 할 때에도 거울 앞에 앉을 수 없게 되면 거울 앞자리가 된 학생과 교환을 해서라도 자리를 차지하려 한다. 여학생들이 거울 앞자리를 앉으려 하는 이유는 단 한 가지다. 거울 속 자기 모습을 들여다보며 본인의 외모를 확인하기 위해서다. 아무리 살이 쪘다 해도, 예쁘지 않다 하더라도 사춘기 여학생들 마음속에는 ‘내가 쟤보다는 났지.’라는 생각이 자리 잡고 있다.
남녀공학 고등학교 교실의 풍경은 짝을 찾는 짐승들을 한 곳에 모아둔 것 같다. 남학생들은 주먹과 돈으로 힘을 과시하고, 여학생들은 외모로 자기 매력을 과시한다. 누군가를 유혹한다기보다 동성끼리의 경쟁이다.
하영이의 학교는 인서울 4년제 대학을 간 학생이 최근 10년 까지 없을 정도로 동네 환경이 좋지 않다. 게다가 하영이의 집은 공장과 유흥업소가 많은 곳이다. 최근 지하철을 사이로 두고 건너편 쪽으로 높은 아파트가 생기면서 그 주변에 학원이 하나 둘 늘어났지만 하영이의 학교는 아파트 단지 학생들이 오는 곳은 아니다. 하영이의 학교는 가장 공부 못하고 불량한 학생들이 많은 학교로 유명하다.
점심시간, 10분 정도의 시간을 남겨두고 하영이가 친구들과 거울 앞에 모여 앉아있다. 그런데 여자 아이들이 가장 싫어하는 홀수 무리다. 홀수는 한 명이 언제나 애매하게 남는다. 그리고 그 한 명은 언제나 하영이의 몫이다.
서로의 머리를 예쁘게 따주는 친구 가희와 정우, 예능 프로에 나온 최애 연예인 이야기를 하는 두 친구 시현이와 아연이. 하영이는 그 아이들 사이에서 어디에도 참여하지 못한 채 어색한 미소를 짓고 있다. 그때 학교에서 인기 많은 인선이가 맑고 청량한 목소리로 하영이를 부르며 하영이에게 말을 건다. 인선이는 점심시간 동안 대체로 윗 학년 오빠들과 지낸다. 일진은 아니지만 그 누구도 인선이를 함부로 하지 않는다. 오빠들과 잘 지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소위 말하는 발랑 까진 학생도 아니다. 오히려 그와는 반대로 선생님들에게 예쁨 받고 공부 열심히 하는 학생이다. 게다가 얼굴도 예쁘장하고 밝은 성격에 모두가 미워하지 않는 그런 호감 가는 학생이다.
인선이는 점심시간이 끝날 때가 되면 반으로 돌아오는데 그럴 때는 하영이가 있는 무리로 자연스럽게 들어와 밝게 말을 건넨다.
“하영아! 하영아! 나 어제 너 닮은 거 찾았어~!! 아니, 하영이 너를 볼 때마다 분명 어디서 본 것 같은 거야. 그래서 누굴 닮았는지 계속 생각했거든?! 그러다가 어제 아는 오빠랑 영화 보다가 알아냈잖아!!”
친구들의 시선이 하영이에게 꽂혔다. 친구들의 눈빛이 기대에 차있다. 하영이는 불안하다.
그도 그럴 것이 하영이는 눈이 작고 코가 낮다. 피부는 여드름 때문에 얼굴 전체에 언제나 기름이 반지르르해서 하교 때쯤이면 얼굴 가까이에 있는 머리카락이 서로 뭉쳐 있다. 거기에 홍조까지 있어서 피부톤도 고르지도 않다.
인선이가 말하는 하영이를 닮은 사람, 아니 사람이 아닐 수도 있는 그것은 예쁘지도 귀엽지도 않을 것이 분명했다. 하영이는 이대로 점심시간 종료 종이 울리고 선생님이 들어와 이 순간을 벗어나기를 바랐다. 하지만 점심시간은 아직도 5분이나 더 남았다. 하영이에게 그 5분을 지옥 같았다. 모두가 하영이의 얼굴을 쳐다봤다. 반 아이들 모두가 하영이의 눈, 코, 입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닮은 무언가를 찾는 듯 보였다.
그때 함께 앉아 있던 시현이가 소리쳤다.
“야!!! 최인선! 너 존나 못생긴 거 얘기하려는 거 아냐~?!”
친구들 중 가장 솔직하고 거침없는 시현이가 인선이에게 따지듯 말했다. 하영이가 점심시간 가장 인기 많은 자리인 거울 앞에 앉는 것도 시현이와 함께 있기 때문이다. 시현이는 공부를 열심히 한다. 인서울 4년제를 겨우 갈 수 있을 정도다. 그건 시현이의 머리가 나빠서가 아니다. 시현이는 가정형편이 좋지 못하다. 엄마는 암투병 중이시고 아빠는 시장에 작은 떡볶이집을 하신다.
‘나는 우리 엄마가 아파서 더 공부를 못해. 학원 갈 돈 엄마 병원비에 써야지. 내가 어떻게 학원을 가. 지금도 부족한데. 나는 혼자서 할 수 있어!’
시현이가 자기 최면을 하듯 시험 보고 난 후에 하는 말이다. 시현이는 마음도 얼굴도 예쁜 아이다. 굳이 인선이와 비교를 한다면 시현이는 눈, 코, 입이 또렷해서 누가 봐도 예쁜 아이다. 공부도 인선이보다 잘하고 씩씩한 아이다. 그런 시현이의 말에 인선이는 당황한 듯 눈동자가 잠시 흔들렸지만 금세 눈빛이 바뀌며 시현이를 바로 마주 보고 쏘아붙였다.
“나 아직 뭐 닮았는지 말도 안 했는데 왜 그게 못생겼다 판단해? 너 하영이가 못생겼다 생각한 거야?!"
인선이의 말에 시현이는 당황한 기색을 숨길 수 없었다. 얼굴이 발갛게 달아 올라 떨리는 목소리로 인선이를 향해 소리쳤다.
“야! 누가 그렇데?!”
금방이라도 화를 낼 것 같은 시현이에게 등을 돌려 인선이는 하영이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그리고는 하영이를 아기 달래듯 인선이가 말을 이어갔다.
“하영아, 시현이 진짜 못됐다. 그렇지? 저런 애랑 놀지 마. 아라찌?”
그 말에 시현이는 책상을 박차고 일어났다. 그 순간 점심시간 종료 종이 울렸다. 인선이는 그 틈을 타 잽싸게 애교 섞인 말투로 한마디 하며 자기 자리로 뛰어갔다.
“아, 뭐야~!! 최시현 일진이야~?! 꺄~ 선생님 오신다~!!”
하영이에게 향했던 아이들의 시선이 인선이와 시현이에게로 쏠렸다. 하영이는 놀림거리가 되지 않았다는 것에 다행스러웠다. 하지만 하영이는 남은 수업 시간 내내 시현이와 인선이의 말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아 선생님의 말도 아이들의 쉬는 시간 잡담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존나 못생긴 거 아니야?”, “뭐 닮았는지, 왜 그게 못생겼다 판단해?”. 시현이도 내가 못생겼다고 생각하고 있었구나. 나를 볼 때마다 그 생각을 했을까? 나의 어디가 가장 못생겼다 생각했을까? 나의 작은 눈을 보며 답답했을까? 언니가 항상 말하는 것처럼 나의 눈이 억울하게 생겼다고 생각했을까? 나의 낮은 코를 보며 자기 코는 높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을까? 인선이가 말하는 나를 닮았다는 게 사람이 아니었구나. 차라리 더 나을지도 몰라. 사람이면 더 창피할 것 같아. 차라리 “그것"인 게 나을지도 몰라. 현실적이지 않은 거잖아. 어떻게 사람이 무엇을 닮겠어? 뭐가 되었든, 내가 무엇을 닮았는지는 오늘은 듣지 않아도 되었어. 그걸로 된 거야. 그러니까 인선아 못생긴 그것을 제발 나에게 알려주지 말아 줘. 제발. 부탁이야.’
학교가 끝나고 하영이는 학원으로 향했다. 시현이와 다른 친구들은 학교에 남아 야자를 하기 때문에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학교 앞 트럭에서 떡볶이를 먹으러 향했다. 학원으로 향하는 하영이에게 시현이가 함께 떡볶이를 먹으러 가자며 초대하였다. 하영이는 학원에 결석해도 신경 쓸 사람이 하나도 없기 때문에 시현이의 초대에 응했다.
“하영아, 학원 늦지 않아? 이모, 여기 떡볶이 3인분이랑 어묵 하나씩 4개 주세요.” 시현이가 떡볶이를 시켰다.
“응 조금 늦는데 괜찮아.” 하영이가 답했다.
“이모, 저희 단골이니까 4인분 같은 3인분으로 주세요. 얘들아, 오늘 야자 시간에 학주가 돌아다닌대. 망했어~!!! 오늘 동고동락 들으려고 엠피 안 듣고 있었는데!! 아 짜증 나.”
시현이는 짜증 가득한 목소리로 일행 친구들에게 하소연했다.
하영이는 시현이를 좋아한다. 밝고 호탕한 성격이 하영이와는 정반대여서 좋아한다. 게다가 부모님을 생각하는 착한 마음과 항상 하영이를 챙겨주는 것이 고맙다. 하영이는 아이들이 이야기를 하는 것을 듣고 있는 것만으로도 외로움이 덜하다. 대화에 끼고 싶지만 하영이는 티브이를 보지 않아서 아이들의 관심사를 공감할 수 없어 끼어들 수 없다. 그래서 듣고 있을 때가 가장 마음이 편하다. 아이들은 순식간에 떡볶이와 어묵을 다 해치웠다. 그런데 모두 현금을 애매하게 가지고 있다. 총 4500원이 나왔는데 가지고 있는 지폐 단위 수가 5000원이다.
“뭐야 다들 오천 원짜리밖에 없어? 아, 뭐야. 어떻게 계산하지? 나 이거 말고는 오늘 돈 안 써서 거스름돈 안 나오는데~”
시현이가 곤란한 듯 말했다.
“시현아, 우리 빨리 들어가야 돼. 오늘 학주 뜬다며!”
함께 온 친구 가희가 말했다.
“내가 낼게. 어서 들어가.”
하영이가 말했다.
“진짜? 그럼 다음에는 내가 살게! 미안, 오늘 학주 뜨는데 늦으면 우리 죽어. 진짜 고마워. 미안, 학원 잘 가고. 잘 먹었어~!!”
시현이와 친구들은 하영이의 말에 연신 고맙다 말하며 떠났다.
아이들이 떠난 자리, 적막함만 남았다. 하영이의 마음에도 공허함만 남았다. 하영이는 떡 하나 없는 떡볶이 국물을 보며 몰려오는 공허함을 이겨내려 했다. 그런 하영이를 떡볶이 이모가 깨웠다.
“학생, 계산은 학생이 하는 거야?”
이모가 말했다.
정신이 든 하영이는 만원 지폐를 꺼내 이모에게 건넸다.
“학생 오천 원은 없어? 아님 천 원짜리라도. 이렇게 주면 다른 손님 잔돈 거슬러 주기 힘들단 말이야.”
이모는 만 원권을 건네는 하영이에게 한껏 짜증을 내며 말했다. 그런 이모에게 하영이는 죄송스러운 얼굴을 하며 사과했다.
“어, 죄송해요. 제가 이것밖에 없어요.”
“아이고 참, 학생이 무슨 그렇게 큰돈을 들고 다녀. 그러니까 그렇게 호구로 살지. 아이고 갑갑하다.”
하영이는 볼매 소리하는 이모의 말에 친구들이 떠나 허전했던 마음의 이유가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동고동락: 2007년부터 2010년까지 방송된 하하와 엠씨몽의 라디오 프로그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