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추는 우리에게 특별한 작물이다. 고추를 이용한 여러 고유한 양념과 요리가 있으며, 1인당 고추 소비량도 세계에서 가장 많은 편에 속한다. 다소 생소하게 들릴 수도 있겠으나, 우리가 고추를 관세를 매기는 민감 품목으로 관리한다는 점 또한 그 특별함을 드러낸다고 할 수 있다.
예전에는 아예 수입이 제한된 품목이었던 것이 WTO 가입 후 개방하는 조건으로 270%의 관세를 부과했고, 그 후 30년이 지났다. 고추에 관해서는 전 세계에서 가장 높은 장벽이다. 물론 농가 보호와 식량 자급은 중요한 가치다. 하지만 시간이 흘렀고 가볍게 여기기 힘든 부작용이 보이기 시작한다. 개선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지적을 해 보자면, 관세는 우리가 먹는 고추의 품질을 낮추는 방향으로 작용하고 있다. 고추를 쓰는 수많은 한국 음식을 생각하면 아쉬울 수밖에 없는 부분이다.
한반도는 고추 농사에 최적화된 곳은 아니다. 원산지인 멕시코, 최대 산지인 중국 서부와 인도처럼 고온이면서도 건조한 기간이 보장된 곳이 유리한 기후다. 애초에 가격 경쟁이 성립하기 어려운 구조다. 한국의 고추는 이 맛을 사랑한 우리가 여러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스스로에게 필요한 생산을 해 온 것임을 전제해야 한다. 지켜내지 않으면 사라질 수밖에 없는, 우리의 소중한 문화이자 자산이다.
문제는 품질이다. 농산물의 품질은 기후의 한계를 벗어나기 힘들다. 기술과 관리로 극복할 수 있는 부분이 있지만 불가능한 영역도 있다. 우리 음식에 맞게 발전해 온 국내산 고추의 풍미도 훌륭하지만, 비싼 관세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유지되는 고가의 수입 고춧가루는 그 필요성을 역설한다. 한국 음식의 범주가 점점 넓어지고, 그중 고추나 고춧가루의 역할이 중요한 메뉴 또한 많은 현실 속에 더 다양한 옵션을 가질 기회가 없어진다는 점은 아쉽다.
고추의 품질에 있어 더 큰 문제는, 이런 보호무역에도 불구하고 자급률이 점점 떨어지고 있기 때문에 발생한다. 부족한 분량을 관세 때문에 정상적인 수입으로 채울 수 없으니 꼼수들이 등장했다. 냉동식품의 낮은 관세율을 틈타 냉동고추를 수입해 국내에서 고춧가루로 만드는 방법과, 원물이 아닌 양념의 관세가 낮은 점을 이용해 부재료가 들어간 다진 양념 형태로 수입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냉동 채소를 해동하면 원물과 품질차이는 매우 크다. 물이 많이 생기며 여러 성분이 빠져나가고, 곰팡이나 세균에 취약해지기 때문에 빠르게 고온으로 건조해야 고춧가루로 만들 수 있다. 우리가 최고로 치는 태양초의 원리가 천천히 낮은 온도에서 말리는 것임을 생각하면, 풍미의 관점에서는 쓸 수 있는 가장 나쁜 방법을 쓰는 셈이다. 필요 없는 재료가 들어있는 고추 복합식품을 다시 말려 만드는 고춧가루에 대해 대부분의 소비자는 모르겠지만 업소용, 공장용 원료로는 흔한 상품이다. 고춧가루의 자급률은 50% 이하로 알려져 있다. 나머지 절반은 방금 이야기한 것으로 먹고 있는 현실이니, 모두가 알 필요가 있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지난 수십 년 간 저질식품의 대명사였던 중국산 고춧가루는 사실 관세를 피하기 위한 꼼수가 만들어낸 상품이다. 한국행 수출 통관만을 위한 기형적인 공정이며, 중국 내수 시장에는 이렇게 불필요하고 복잡한 과정을 거친 고춧가루는 유통되지 않는다. 국내 생산이 감당하지 못하는 수요를 관세로 막고 있는 데서 생기는 부작용인 것이다. 적어도 필요한 만큼은 제대로 된 식품을 수입하는 것을 목표로 변화가 생기길 기대한다. 고추가 들어가는 한국 음식의 맛이 전반적으로 좋아질 것이다.
국내산 고춧가루의 가격은 국제 평균 가격의 10배가 넘는다. 압도적인 사용량을 생각하면 우리 생활과 물가에 미치는 영향은 비교할 곳이 없다. 이 프리미엄은 뛰어난 품종에서 오는 것일까?
고추는 원산지인 중남미에서 이미 6000년 이상 재배하였고, 처음에 유럽으로 수입되던 때부터 다양한 품종이 소개되었다. 이들이 수백 년에 걸쳐 세계로 전파되며 각 지역에 맞는 개량이 이루어졌다.
다양한 고추가 있지만 의외로 한국의 모든 고추는 하나의 종에 속한다. ‘캡시컴 안눔’이라는 이름의 이 고추는, 세계적으로 가장 널리 재배되는 종이다. 청양, 피망, 파프리카 등 국내산 고추와 수입이지만 익숙한 할라피뇨, 카이엔, 페페론치노 등을 포함한 수많은 품종이 여기에 속한다.
청양고추, 오이고추, 아삭이고추처럼 원물을 소비하는 고추의 품종 이름은 익숙하지만 고춧가루용 고추의 품종이 무엇인지는 소비자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다. 한국의 고추 중 80-90%는 고춧가루용으로 생산되는 점을 생각하면 한 번 짚어 볼 일이다.
다른 많은 주요 농작물처럼, 고춧가루용 고추도 지속적으로 종자가 개발되며 관리되고 있다. 우리나라 고추의 종자 교체 속도는 유례가 없을 정도로 빠른 편인데, 개량의 주요 지표는 내병성과 수율, 그리고 색과 맛이다. 최근 몇 년 동안은 기후 변화와 칼라병, 탄저병 등 새로운 질병에 저항성이 좋은 품종이 인기다. 몇 가지 신품종의 이름을 소개하자면, 칼탄패스, 스피드칼탄, 한방에 등이다. 민간 종자 회사 입장에서 구매자인 농부에게 어필하려는 의지가 담긴 작명이다.
생존력만을 우선시하면 상대적으로 고추의 풍미는 점점 단순하고 개성이 없는 방향으로 나아간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2010년대에 주력 품종과 재래종 중 하나인 수비초를 비교한 연구에 따르면 향미 성분의 가짓수는 확실히 많이 줄어들었다. 고추를 매운맛과 빨간색을 주는 기능성 식품으로만 생각하고, 복합적인 맛은 조미료나 다른 재료가 내면 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이 우리가 자랑스럽게 내세우고자 하는 고추장이나 불닭 소스의 유일한 방향성이라고 생각하면 씁쓸하다. 식량 증산을 목적으로 개발되어 한때 전국에 재배된 ‘통일벼’가 결국 맛없음을 이유로 역사 속으로 사라진 것처럼, 소비자가 요구하는 가치에 따라 고추 시장에도 새로운 변화의 반작용이 생길 수 있을 것이다.
좋은 고추의 맛은 구체적으로 무엇일까?
고춧가루의 풍미와 신선도는 냄새로 금방 구별할 수 있다. 좋은 고춧가루에서는 잘 익은 대추에서 날 법한 그윽하면서도 달달한 향, 그리고 마치 사과가 약간 들어있는 듯한 상큼한 향이 느껴진다. 그러나 현실은 많은 고춧가루에서 이 향의 농도가 매우 떨어진다. 특히 냉동고추를 열풍건조했다면 기대할 수 없는 향이다.
대체로 한국 고추는 매운맛이 중간 정도이며 단맛이 강한 편이라고 평가된다. 고춧가루의 매운 정도는 먹어봐야 알지만, 대부분은 표기하여 판매한다. 당도가 높은 고추는 김치의 발효에 유리하고 기름에 볶는 요리에서 캐러멜화 효과가 크다. 고추의 향은 대부분 기름 성분이기 때문에 겉보기에 푸석푸석한 것보다는 윤기가 도는 것이 좋다.
표면의 왁스층은 원래 비로부터 내부를 보호하기 위한 방수층이기 때문에 건조 속도를 늦춘다. 잘라서 속을 노출하면 빨리 마르지만 풍미 손실도 감안해야 한다. 건조 온도는 40~50도 사이를 유지하는 것이 좋으나, 대량 생산 시에는 비용이 증가하고 식품 안전에 중요한 습도조절이 어려워 55~65도 사이에서 건조가 이루어진다.
제대로 잘 익은 고추를 선별해 통으로 저온건조하는 것이 본래의 풍미를 보존하기에 최선이다. 건고추는 잘 상하지 않지만, 지용성 성분이 농축되어 산패에 취약하다. 분쇄한 뒤에는 산패와 향미성분의 휘발이 빨라지니, 고춧가루를 쌓아두고 쓰는 것은 좋지 않다.
좋은 고춧가루를 얻는 기술 자체는 다 알려져 있고 어렵지도 않다. 그것을 알아보는 방법도 간단하다. 심지어 우리는 불리한 자연환경을 극복하고 고추 재배를 이어온 노하우도 많다. 그런데도 좋은 고춧가루는 너무 비싸고, 그 대안이 전 세계 어디서도 볼 수 없는 기형적인 상품뿐이라는 현실, 바꿀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애써봐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