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

by 병우


해양 생태계의 먹이사슬은 식물성 플랑크톤에서 시작한다. 식물성 플랑크톤은 영양소와 햇볕이 풍부한 곳에서 대량으로 발생하는데, 햇볕은 바다 표면에서 일정 깊이 까지만 닿기 때문에, 결국 중요한 것은 바다 표면의 영양 농도이다. 이것은 두 가지 경로로 공급된다. 육지에서 강을 따라 흘러오거나, 바닥에 침전되어 있던 유기물이 위로 올라오는 경우이다.


서해는 삼면에 강물이 흘러들어오는 육지가 있고, 수직 혼합 작용을 하는 강한 조류가 존재하기 때문에 일조량이 조금만 증가하면 최적의 환경이 된다. 때로는 영양 과잉으로 적조가 발생할 만큼 비옥하다. 식물성 플랑크톤이 풍부해지면 곧 이를 먹이로 하는 동물성 플랑크톤이 늘어나고, 연이어 잔새우나 멸치 같은 작은 개체가 늘어나면 연쇄적으로 먹이를 찾는 해양 생물들이 모인다. 풍부한 플랑크톤은 새로 태어난 치어들의 영양 공급에 가장 유리하기 때문에, 많은 어종이 서해를 산란장으로 활용한다.


남쪽으로 열려 있기 때문에 서해로 회유하는 어종들은 대부분 더 따듯한 바다로부터 오는 것들이며, 겨울에 서해의 수온이 떨어지면 왔던 곳으로 되돌아간다. 회유하지 않는 어종이라도 가능하면 온도 변화가 적은 깊은 곳으로 내려가 월동기를 갖는다. 수온이 낮아지면 효소 반응성이 떨어져 소화기능이 거의 멈추며, 먹이를 구하기도 어려워 활동을 줄이고 단식을 하는 기간이다. 가을에 비축해 놓은 지방으로 이른 봄까지 버티다가 수온이 오르면 다시 플랑크톤 사이클에 맞추어 산란과 먹이활동을 시작한다.



서해의 플랑크톤 사이클에 깊이 연관되어 우리가 활용하는 주요 어종의 생태는 아래와 같다.



젓새우


봄부터 여름에 풍부한 플랑크톤을 먹고 젓새우가 살을 찌우며, 6월이면 육젓으로 쓰일 만큼 커진 뒤 7-8월 금어기 중 산란한다. 산란을 마친 성체는 기력이 쇠하여 자연사하거나 상위 포식자의 먹이가 되어 바다의 영양분으로 되돌아간다. 가을은 새로 성장한 개체가 풍족한 때이며, 이때 잡은 새우로 만든 추젓이 김장에 쓰인다.


대하


4월부터 서해에서 잡히는데, 대부분 암컷이다. 5-6월은 산란기여서 크고 알이 차 있지만 금어기이므로 보기 어렵다. 성체는 이 기간에 산란 후 거의 죽는다. 새로 태어난 세대에게 7-8월은 한창 자라는 기간이기 때문에 가을까지 기다려 상품성이 생기면 어획한다. 9-11월은 짝짓기를 하는데 수컷은 교미 후 대부분 생을 다한다. 암컷들은 겨울에 먼바다의 깊은 바닥에 숨어 월동하는데, 이때는 조업 특성상 살리기 어려워 가을과 달리 냉동으로만 유통된다.



꽃게


산란기를 앞두고 돌아오는 봄 암꽃게 인기가 좋다. 여름내 3-4회 반복해 산란하면서 살이 빠지는데, 이 기간은 금어기이다. 수꽃게는 여름 탈피를 통해 덩치를 키우며 가을쯤이면 다시 단단해지는 반면, 암꽃게는 한 박자 느리게 탈피하기 때문에 늦가을이 되어야 비로소 살이 찬다. 이들은 겨울이 되기 전에 깊은 바다로 돌아가는데, 그 해 태어난 꽃게들은 너무 작아 돌아가지 못하고 뻘 속에 숨어 겨울을 지낸다. 월동기 수온은 이들의 생존율을 좌우하며, 이는 곧 이듬해 꽃게 어획량을 결정짓는 중요한 변수가 된다. 겨울을 한번 넘긴 게는 봄이면 작은 성체가 된다. 2년 차 까지는 꾸준히 몸집이 커지지만, 3년 차부터 암꽃게는 탈피를 멈추고 산란에만 집중하기 때문에 아주 큰 암꽃게는 거의 없다. 반면 3-4년 차 수꽃게는 드물지만 더 성장할 수 있다.



쭈꾸미


겨울을 나고 산란을 위해 3월부터 연안으로 오는데, 이때가 1년의 생애 중 가장 크며 암컷은 알이 차 있다. 6월까지 나누어 산란하며 성체들은 죽는다. 5월부터 8월까지 이어지는 금어기가 지나고, 새로 태어난 개체들이 절반 정도 성장한 가을에 다시 잡기 시작한다. 겨울엔 서해 깊은 곳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잘 보이지 않지만 간혹 잡히면 가을보다 사이즈가 크다.



갑오징어


봄 산란기에 서해로 오며, 알을 낳고 죽기 때문에 이때 가장 크다. 겨울에는 다른 지역에 있기 때문에 많이 잡을 수 있는 이때를 제철로 친다. 금어기는 없으나 햇 갑오징어가 상품성이 있게 성장한 9-11월부터 다시 잡는다.



서해 전어


멀리 이동하지 않고 서해 조금 깊은 곳에서 월동을 하다가 3-6월에 나누어 산란한다. 가장 본격적인 산란기와 치어 성장기인 5-7월 중순까지가 금어기다. 부화하면 플랑크톤이 풍부한 곳을 찾아다니며 빠르게 성장하고 가을쯤엔 산란시기에 따라 10-12cm 크기로 자란다. 같은 햇전어라도 늦게 태어나 작은 전어일수록 뼈가 연해 통째 회로 쓰기 좋다. 겨울 월동을 위해 최대한 지방을 축적하는데, 성체 전어는 봄 산란 이후 꾸준히 살을 찌워 이때 가장 맛이 좋다. 더 자랄 수는 있지만 먹이사슬 아래쪽에 위치하기 때문에 3년생 이상의 전어는 보기 힘들다.




삼치


따뜻한 물을 따라다니며 살다 봄에 서해로 와서 알을 낳는다. 5월 한 달은 산란기이자 금어기인데, 살이 급격히 빠진다. 플랑크톤을 먹고 자란 멸치와 전어를 잡아먹는데, 먹이의 영양상태가 좋은 가을이 되면 삼치도 기름기가 흐른다. 성장속도가 굉장히 빠른 편인데, 3년 차면 80cm 이상이 되고 이후로는 길이 성장보다는 체내 지방을 축적하는 데 집중한다. 가장 살 찌운 상태로 겨울을 나는데, 이때는 연안에서 잡기 힘들고 멀리 나가 대삼치만 잡아오는 조업이 중심을 이룬다.



참조기


서해 회유종 중에선 낮은 수온에서 사는 편이라 이른 봄에 알을 배고 서해로 돌아오는데, 한때 심각한 어획량 급감을 겪은 어종이라 금어기가 4/22-8/10로 긴 편이다. 여름 내내 풍족한 플랑크톤으로 산후조리와 치어 성장을 거친다. 뱃살과 간에 기름을 가득 채운 상태로 겨울이 되면 남쪽으로 내려가 월동하며 서서히 지방을 알이나 정소로 바꾸어놓고 봄이 되면 다시 올라온다.



백조기


따듯한 물을 좋아해 참조기보다 조금 늦은 5월부터 서해로 오는데, 금어기가 없어 산란기 직전인 7-8월에 잡은 알배기가 상품성이 좋다. 산란 후에 맛은 빠지지만 다시 살을 찌운 후인 겨울에 제주 남쪽에서 잡히는 것은 살집이 좋다.



병어


봄에 와서 6-7월에 산란하며 금어기는 없다. 그 해 태어난 것(자랭이)은 너무 작고, 이듬해 돌아오는 1년생은 아직 한창 자라는 중이라 뼈 째 회로 먹을 수 있을 만큼 뼈가 부드럽다. 이들은 아직 생식과 산란을 하지 않기 때문에 여름에도 살이 빠지지 않는다. 2년생 이상은 뼈가 단단해지며, 봄에는 살을 찌우지만 산란 직후에는 1년생만 못하다. 가을에 다시 몸집을 불리고 겨울에는 월동하기 위해 제주 이남으로 이동한다. 여름보다 잡기 어려워 비싸지만 맛은 좋다.



민어


4-10월 사이 서해에 머무는데, 아직까지는 금어기가 따로 없다. 대신 1년생 크기인 33cm 이하의 것을 잡는 것은 불법이다. 4년 정도까지는 길이로 빠르게 성장하는 단계이며 5년 차부터는 성장할수록 살의 두께가 크게 달라진다. 성숙한 개체일수록 산란을 앞두고 알과 이리도 크게 키운다. 수온이 정점에 달하는 7-8월, 십수 회에 걸친 산란과 방정을 반복하며 모든 에너지를 쏟아낸다. 이 과정에서 알집과 이리는 점차 작아지고 살의 탄력과 맛도 약해진다.



농어


연중 대부분 양식 농어가 시장에 있지만, 여름에는 적지 않은 군집이 서해로 먹이활동을 하러 온다. 다른 지역에서 산란을 마치고 올라오기 때문에 금어기가 없으며 겨울에 다시 돌아갈 때까지 꾸준히 살이 오른다. 하지만 일반적인 어종이 여름 금어기나 산란 후 영양손실 상태인 것에 비해 상대적으로 선택 우위에 있어 여름에 인기가 좋은 편이다. 또한 여름에는 새우 등 갯벌생물 위주로 먹기 때문에 살이 특별히 달고, 멸치나 전어 등을 먹는 가을에는 살은 찌지만 특유의 단맛은 떨어진다는 평이 있다.



서해 대구


대구는 찬물을 좋아해 겨울 서해에서 볼 수 있는 몇 안 되는 어종 중 하나이다. 서해의 대구는 회유하지 않고 여름에는 깊은 곳에서 지내다가 겨울에 연안으로 올라온다. 갯벌 생물을 먹으며 11-12월에는 살을 찌우다가 1-2월 중에는 알과 이리를 키운다. 겨울 서해는 춥기 때문에 안전한 3월이 되어서야 산란을 하고 더워지기 전에 깊은 곳으로 돌아간다. 금어기는 3월 한 달이며, 동해 대구가 산란하는 1-2월 보다 늦은 편이다.



가숭어(밀치/참숭어)


회유하지 않고 서해 연안에서 나고 자란다. 뻘을 통째로 삼켜 유기물을 걸러 먹는 식성 탓에 왕성한 먹이활동을 하는 시기에는 살에서 특유의 뻘 냄새가 난다. 여름에 특히 심해지며, 금어기가 없지만 이 시기에는 거의 잡지 않는다. 양식한 것은 흙냄새가 나지 않는다. 12월까지 끊임없이 살을 찌우는데, 지방 함량이 높아질수록 눈의 노란색이 짙어진다. 수온이 떨어지면 활동을 멈추고 겨울 동안 천천히 알과 이리를 만드는데 3월이면 거의 꽉 찬다. 월동 중에는 금식하기 때문에 냄새가 나지 않는다.



보리숭어(개숭어/숭어)


가숭어와 달리 겨울에 다른 지역에서 산란을 하고 봄이 되면 영양 보충을 하러 서해로 돌아오는 어종이다. 바닥 흙을 먹기 때문에 플랑크톤 사이클을 기다리지 않고 일찍부터 살을 찌울 수 있다. 먹이 경쟁이 거의 없어 보리가 피는 5월이 되면 이미 충분히 살이 오른다. 살은 계속 찌우지만, 여름에는 흙냄새를 유발하는 박테리아가 활발해져 숭어의 흙내도 강해진다. 11-12월은 산란하러 떠나는 길목에서 알배기 남획이 이루어지던 시기지만 최근 금어기로 지정되었다.



수산물의 ‘제철’은 여러 가지 의미일 수 있다. 가장 맛있는 때와 가장 잡기 쉬운 때가 늘 일치하지는 않는다. 조업기술이 발달하면서 ‘잡을 수 있는 시기’의 경계는 점점 넓어졌고, 높은 가격이 형성되면 거친 겨울바다를 뚫고서라도 조업에 나선다. 주요 어종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시장의 필요가 만들어낸 ‘틈새 제철’도 존재한다. 산란기 알배기를 최고로 치다가 금어기가 설정되면 별 수 없이 다른 시기가 ‘대안적 제철’로 떠오른다. 우리 입맛보다 생태환경의 보전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면 알이 없을 때를 오히려 제철이라 부를 수도 있다.



한국의 수산물은 다양하고, 제철에 대한 이해는 복잡하다. 서해, 남해, 동해의 환경과 어종이 다르고, 갯벌과 조경수역이라는 특수환경도 있다. 최근에는 수온 변화도 중요한 변수다. 달력에 물고기 이름을 적어놓고 기다리는 것에서 벗어나 바다의 생태를 제대로 이해할 필요성을 크게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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