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은 수명에 따라 1년생, 2년생, 다년생으로 구분한다. 각자의 원산지 환경에 적응하다 보니 생긴 특성이다. 수만 년 이상의 진화를 거쳐 정착한 이들의 ‘원산지’는 우리가 재배하기 편한 곳으로 옮겨 심은 현재의 ‘주요 산지’와는 엄연히 다르다.
1년생 식물은 씨앗이 새 종자를 남기고 죽기까지의 과정이 한 해 안에 이루어진다. 이들의 원산지는 버티기 어려운 건기 또는 겨울이 있는 지역이다. 생존에 불리한 시기를 피하고, 유리한 기간의 생육에 집중하도록 진화한 것이다. 환경이 일정한 열대 우림을 원산지로 하는 1년생 작물은 거의 없다.
에너지 분배의 관점에서, 1년생 작물은 한 철 쓰임을 다하고 사라질 뿌리나 줄기보다는 종자 자체에 집중한다. 다음 세대를 위한 ‘도시락’을 싸는 셈이다. 동물 이동이나 발아에 도움이 되도록 영양이 풍부한 열매나 곡식을 만드는데, 먹는 우리 입장에서는 가장 효율적인 작물이다. 벼, 밀, 콩, 옥수수 등 전통적으로 식량 자원의 중심이 된 것들은 대부분 1년생이다.
하지만 어떤 식물들에게는 자리 경쟁이 덜한 겨울이 오히려 기회일 수 있다. ‘혹독하지만 견딜만한 추위’에 적응한 식물은 겨울을 전후로 두 번의 생장 시기를 가지며, 이를 2년생이라 부른다. 겨울 전에는 땅 속에 숨거나 지면에 달라붙은 상태로 양분을 모은다. 봄이 오면 지체 없이 저장해 둔 에너지를 이용해 꽃대를 세우고 종자를 만든다.
이들은 보다 긴 시간을 영양 덩어리 상태로 버텨야 하므로, 동물이나 곤충에게 먹히지 않기 위해 화학적 방어 성분을 만들어내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방어 기제는 요리에서 매력적인 향의 원천이다. 2년생 작물 중에는 독특한 향을 가진 뿌리와 잎, 향신료로 쓰이는 씨앗 등이 많다. 겨자, 미나리, 고수, 셀러리, 회향 등은 우리에게도 익숙하다.
우리가 먹는 대부분의 2년생 작물은 2년 차 생장이 시작되기 직전의 것이다. 추위를 버티면서 뿌리, 결구, 꽃대 등에 영양을 저장했을 때 수확하기 때문이다. 당으로 동결을 방지하기 때문에 추울수록 달아진다. 무, 당근, 배추, 양배추, 브로콜리 등이 여기에 속한다. 타이밍을 놓치고 추대가 시작되면 조직이 스펀지처럼 푸석해지는데, 우리가 흔히 '바람이 들었다'라고 표현하는 현상이 바로 이것이다.
1,2년생 작물들은 인간 입장에서 쉽게 길들일 수 있었다. 오히려 식물이 번식을 위해 인간을 이용했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하지만 다년생 식물을 먹는 것은 쉽지 않았다. 먹히지 않아야 오래 살 수 있으니 당연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여러 가지 방법을 찾아냈다.
아스파라거스, 죽순, 두릅처럼 매년 새로 생기는 새순을 먹거나, 생강과 감자처럼 땅속줄기에 영양이 모이는 시기를 노려 수확하기도 한다. 더덕, 인삼 같은 뿌리는 수년 동안 겉보기엔 침묵하며 땅을 차지하지만 결국 그 오랜 시간을 응축한 상품을 만든다. 과일은 식물이 종자를 퍼뜨리는 것을 도와달라는 신호다. 씨앗은 보호하기 위해 단단한 견과 속에 가두지만, 우리는 그것도 놓치지 않는다.
원래는 다년생 식물이지만 작물로서는 1년 또는 2년생이 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고추는 우리나라에서는 겨울을 넘기지 못해 1년생으로 키운다. 마늘과 양파는 원산지와 다른 여름 장마철의 습한 토양을 견디지 못해 2년생처럼 키운다.
1년생 작물은 단순하지만 효율적인 영양 공급원이다. 2년생 중에는 특별한 향이 있으면서도 먹기 좋은 줄기나 뿌리가 많다. 오래 사는 작물일수록 먹기는 어렵지만 복합적인 풍미를 제공하는 경향이 있다. 식물의 수명은 갑자기 바뀌지 않지만,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방식에 따라 그 지역 작물의 특성은 달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