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기후와 작물에 대하여
식물은 제자리에서 외부 환경을 견뎌야 하기 때문에 기후에 민감하다. 기후가 맞지 않으면 자라지 않는 것이 자연의 이치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가 키워 먹는 작물들은 다양하고, 그 원산지의 기후는 우리와는 판이한 경우가 허다하다. 어떻게 이런 재배가 가능한 것일까? 한국의 작물이 어떻게 재배되는지를 알려면 기후 특성과 연관 지어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일교차는 밤과 낮의 온도차를 뜻한다. 낮의 온도는 일조량이 결정하기 때문에 위도가 비슷하면 차이가 적지만, 밤에 얼마나 온도가 떨어지는지는 강/바다와의 거리, 습도, 지형과 바람에 따라 차이가 커진다. 한반도는 해안보다 내륙에서, 건조한 봄과 가을에 일교차가 크다.
식물은 빛의 양에 따라 에너지를 모으는 ‘광합성’을, 주변 온도에 따라 에너지를 쓰는 ‘호흡’을 조절한다. 우리가 일과 식사를 하고 나면 쉬는 시간이 필요하듯, 햇볕을 쬐는 낮동안 호흡과 광합성을 한 식물도 밤에는 휴식이 필요하다. 식물은 온도로 주변을 살피고 일할 때와 쉴 때를 결정하기 때문에 결국 그들의 하루 일과는 일교차가 결정하는 것이다.
식물마다 요구되는 ‘적당한’ 일교차는 다를 수 있다. 하지만 견딜 수 없는 고온 또는 저온에 노출되면 안 되기 때문에 일교차가 과도한 곳에서는 키우기 어렵다. 일교차가 너무 적으면 밤에도 호흡이 줄어들지 않아 낮에 모은 영양소를 소비한다. 원래는 다른 용도로 쌓아놔야 할 전분, 당, 유기산이 모두 쓰이고 빈자리를 수분이 채우면 싱겁고 밀도가 낮아진다. 결국 밤낮으로 빨리 성장했지만 속은 제대로 못 채운 작물이 된다.
특히 열매를 맺는 시기에는 ‘적당한’ 일교차가 있어야 식물이 제 페이스대로 훌륭한 열매를 완성할 수 있다. 동물을 매혹할 향기와 멀리서도 보이는 밝은 색소, 조직을 단단하게 만드는 펙틴과 칼슘까지. 이들을 차곡차곡 쌓아두려면 꽤 많은 자원과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쌀이 유명한 철원, 여주, 이천 지역이나 과일로 유명한 청송, 김천, 상주 등 많은 내륙 지역이 일교차가 필요한 농작물에 특화되어 있다. 달고, 단단하고, 향이 좋은 작물의 비밀 중 하나는 그 지역의 일교차다.
연교차는 한 지역의 겨울과 여름 기온이 얼마나 다른지를 나타낸다. 한 지역의 연교차는 기후가 다른 원산지에서 온 다양한 농작물들을 재배할 수 있는 스펙트럼을 결정짓는 핵심 요소다.
보통은 내륙 지방의 연교차가 큰 편인데, 한반도는 바다와 접하면서도 여름과 겨울이 확실하다. 이것은 대륙 동안의 특정 위도 지역에서만 발생하는 독특한 기후적 특성이다. 연교차가 큰 지역에서는 열대성 작물과 한대성 작물을 동시에 재배할 수 있다. 각각 특성이 다른 삼면의 바다와 함께 한반도의 ‘종 다양성’이 굉장히 높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국의 여름은 동남아시아의 쌀, 남미 원산지의 고추 같은 작물을 키울 수 있을 만큼 뜨겁다. 하지만 원산지와 비교하면 효율은 떨어진다. 쌀은 3 모작이 불가능하고, 고추는 원래 다년생인데도 겨울을 나지 못해 매년 새로 심어야 하니 말이다. 그럼에도 오랜 세월 농법을 개발하고 종자를 개량해 기어코 우리의 주요 작물로 만들어낸 것이다.
동시에 겨울은 건조한 중앙아시아에서 온 마늘 같은 작물 재배를 가능하게 한다. 마늘은 마치 수천 년 된 고유의 작물처럼 여겨지지만 사실은 다른 지역에 비해 일찍 수확할 수밖에 없는 기후적 제약이 있다. 습한 여름 때문에 땅 속에서 알이 더 여물고 단단해지기 전에 상해버리기 때문이다.
안데스 출신의 감자도 원래는 다년생 작물이다. 하지만 한국의 겨울이 너무 추워 매년 새로 심어야 하고, 습한 여름을 견딜 수 없어 전분이 충분히 쌓이기 전에 일찍 ‘햇감자’를 캘 수밖에 없다. 즉, 원산지 기준으로 보면 아직 덜 여문 상태인 셈이다. 하지만 결국 이 땅에 정착시키면서 덜 부서지고 쫀득한 특성에 맞도록 조림이나 국물요리 등으로 활용하는 방법을 찾았다.
한국의 더운 여름과 추운 겨울이 한편으로는 작물의 스펙트럼을 넓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비효율적인 재배 환경을 제공한다. 비닐하우스는 이러한 핸디캡을 극복하는 대표적인 현대 농법이다.
습한 장마철에는 필요 이상의 비를 막아주고, 겨울에는 과한 추위로부터 보호한다. 차광막을 더해 지나치게 많은 햇빛을 막아줄 수도 있다. 방충 효과가 있어 농약 사용을 줄이는 수단도 된다. 완전히 덮는 대신 바닥에 타이벡이라는 부직포를 깔아 반사하는 햇볕까지 활용하는 농법도 있다.
단점도 있다. 자외선이 차단되기 때문에, 비닐하우스에서 자란 식물은 자외선 자극이 필요한 물질을 잘 만들지 않는다. 이 때문에 냉이, 달래, 쑥 등의 향이 노지 재배 작물에 비해 훨씬 옅어진다. 자연에서는 바람에 저항하기 위해 식물의 잎과 줄기가 단단해지는데, 비닐하우스 안은 바람이 없기 때문에 얇고 식감이 단단하지 못한 편이다.
그러나 결국 잘 관리된 환경에서 자란 작물은 상품성과 효율성이 훨씬 뛰어난 경우가 많다. 채소 재배 면적의 20%를 차지하는 비닐하우스에서 전체 생산액의 60%가 나온다. 열매를 먹는 채소의 경우 이미 90% 정도가 비닐하우스에서 생산된다.
재배기간이 짧은 1년생 채소는 비닐하우스로 일 년에 여러 차례 재배할 수 있어 의존도가 높다. 그에 비해 무, 배추 같은 2년생 채소들은 대개 서늘한 기후를 좋아하며 땅을 오래, 그리고 많이 차지할수록 노지 재배 비율이 높다. 다년생 작물은 너무 크지만 않다면 한 번 설치해서 오래 쓸 수 있기 때문에 유용하다. 아스파라거스, 부추, 명이 등이 이에 해당한다. 나무 중에서는 무화과, 샤인머스캣처럼 외부 환경에 취약하고 크기가 작은 경우 비닐하우스를 쓰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한반도의 기후가 모든 작물에게 최선의 환경을 제공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일교차가 큰 지역을 중심으로 다양한 특산 작물을 개발해 왔다. 뿐만 아니라 적절한 연교차를 활용해 얻을 수 있는 작물의 스펙트럼을 최대한 확장해 발전시켜 왔기 때문에 결국 계절마다 바뀌는 과일과 채소를 밥, 김치와 함께 먹을 수 있는 식문화가 만들어진 것이다.
다양한 만큼 이들 식재료의 수확 시기와 특성은 복잡하다. 기후와 계절, 지역과 공급에 따른 변화를 이해하고 대비하지 못하면 이 모든 것은 들쭉날쭉한 품질관리 리스크에 불과하다. 하지만 차이를 알고 맞추어 관리한다면 이 모든 것은 그 자체로 이미 갖추어진 우리만의 ‘떼루아’가 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