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많이 잡히는 물고기 가운데 하나가 멸치다. 먹이사슬 아래에 자리한 종 특성상 생물량이 풍부하고 적응력이 뛰어나, 플랑크톤만 풍부하다면 다양한 지역에서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세계에는 무려 140여 종의 멸치류가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우리는 각자의 바다에서 각각의 멸치를 잡는다.
그런데 그 소비방식은 의외인 점이 있다. 이 중 열에 아홉은 어분, 어유로 가공되어 다른 양식 물고기의 사료용으로 쓰인다. 인간이 직접 먹는 것 중에서도 거의 절반은 액젓(피시소스)의 형태이다. 멸치를 원래의 형태로 먹는 식문화는 그 어마어마한 어획량에 비하면 매우 적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의 멸치 식문화는 타당하면서도 특이해 보인다. 많이 잡히는 것을 다양하게 소비하는 것은 당연해 보이지만 남들도 꼭 그렇게 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유럽식 통조림 멸치가 잘 알려져 있고 동남아시아나 인도 일부 지역에서는 튀기거나 카레에 넣어 먹지만 활용방식이 제한적이다.
이에 비해 우리는 멸치를 회부터 시작해 액젓, 멜젓, 볶음, 술안주, 조미료, 그리고 요리의 기본으로 쓰이는 육수의 주재료로까지 활용한다. 뿐만 아니라 용도와 크기별로 세세히 구분하는 유통 시스템이 자리 잡았으며 백화점에서 명절 선물용으로까지 멸치에 진심을 보이는 것은 분명 특별한 모습이다.
남들이 그리 하지 않은 데에도 이유가 있다. 부패는 빠른데 개체가 작으니 일일이 손질, 가공할 수 없기 때문이다. 통째로 말리려고 해도 자가소화가 더 빨라 배가 녹고 터지니 영 먹기 그러하다. 그래서 개중 큰 것을 골라내 쓰거나(앤초비 절임, 멸치회) 아예 내장이 적은 아주 작은 것(시라스)만 쓰는 것이 합리적이었다. 한국에서도 전통적으로는 어장, 젓갈 아니면 일부 해안가의 향토 음식에 그 쓰임이 머물렀다.
그랬던 멸치의 활용을 획기적으로 개선한 것은 데친 후에 말리는 기술이었다. 익혀서 자가소화가 멈추면 온전히 말릴 수 있기 때문이다. 20세기 초부터는 어선들이 팀을 이루어 대량의 멸치를 잡을 수 있게 되었으며, 아예 멸치 데치는 배를 데리고 다니는 쪽으로 점점 발달했다. 이때부터 말린 멸치는 전과 비교할 수 없는 품질과 수량으로 공급이 가능해졌다.
찌개, 국수, 조림, 국 등에 당연하게 사용하는 멸치육수는 사실 전혀 전통적인 식재료가 아니다. 구한말까지도 국물요리의 재료는 신선한 해산물 아니면 소나 꿩, 닭이었으며 동물성의 감칠맛 진한 국물은 모든 사람이 쉽게 접할 수 있는 음식이 아니었다. 대중화된 마른 멸치를 이용한 육수는 저렴할 뿐만 아니라 만들기에도 빠르고 간편하여 근대 한국음식에 큰 영향을 미쳤다.
따뜻한 물을 좋아하는 멸치는 겨울 동안 먼 남쪽 바다에 살다가 봄부터 남해와 서해를 찾기 시작한다. 플랑크톤을 쫓아다니며 먹이활동과 산란을 시작하며, 일부 남해안 지역에서는 이 시기에 멸치 축제가 열린다. 그런데 사실 4-6월 사이에는 주요 산란기 보호를 위해 대부분의 멸치 조업이 금지된다. 생태계에 무리가 가지 않는 선에서 일부 소형 어선에게만 어획이 허가된다.
본격적인 멸치잡이는 7월에 시작한다. 업계에서는 일종의 멸치 달력을 만들어 쓰는데, 잡는 시기에 따라 초사리, 오사리, 중사리, 늦사리로 구별한다. 초사리는 갓 태어나 자란 어린 멸치 비중이 높고, 오사리에는 온갖 크기의 멸치가 들어있는데 먹이가 풍부할 때라 기름이 오른다. 먹이활동이 줄어드는 11월 이후, 중사리만 되어도 오사리와 차이가 나며, 느(늦)사리 멸치는 가장 지방이 적은 편이다. 멸치의 기름기는 신선할 땐 고소함을 주지만 오래 보관하거나 국물용으로 쓸 때는 방해가 되기도 하므로 중요한 구별 요인이다.
한편 소비자 시장에서는 잡힌 시기에 상관없이 크기에 따라 세멸, 소멸, 중멸, 대멸 등으로 구별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아직 일본식 명칭으로 분류하는 경우도 많은데, 그 뜻도 알고 보면 단순히 크기를 의미하는 것일 뿐이다. 크기에 따라 분류하는 이유는 주 용도가 다르기 때문인데, 꼭 이에 매일 필요는 없다. 효율의 차이는 있지만 잔멸치를 육수에 넣어도 맛있고, 큰 멸치를 잘 손질해 볶아 먹어도 훌륭하다.
알은 성어인 대멸이 되어야 밸 수 있다. 그런데 시중에는 알배기 멸치라 하여 작은 크기임에도 배 쪽이 불그스름한 상품이 많은데, 실제로는 알이 아니라 갑각류 플랑크톤을 먹은 상태에서 잡힌 것이다. 오히려 진짜 알을 품은 멸치는 높은 지방 함량이 산패에 취약하므로 건조에 적합하지 않다. 대신 지방산 함량이 많으면 맛있는 젓갈의 고급 원료로 많이 쓰인다.
마른 멸치의 품질은 친절히 설명되어 있지 않다. 직접 먹어보거나 외관상 보이는 특징을 확인해야 판단할 수 있다. 경매사들이 멸치 등급을 매기는 기준을 소비자 시각에서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촉감으로 수분감을 확인하여 덜 마른 것을 피한다.
부스러기가 많을수록 하품. 과하게 말리거나 운반, 저장과정 문제가 있는 경우다.
몸에 은분이 많이 남아있는 것은 그물에서 건지자마자 잘 삶아낸 것이므로 상품이다.
작은 멸치는 탁하지 않고 투명도가 높은 것이 신선할 때 바로 삶은 것이다.
먹어보아 과도하게 짠 것은 피한다. 신선도가 떨어지는 것을 기준보다 짠 물에 삶았을 가능성이 높다.
오사리 멸치는 맑은 황색이 도는 것이 정상이나, 눈에 보이는 기름기나 산패취가 없어야 한다.
새우나 꼴뚜기 같은 잡어가 섞이지 않은 것이 선별과정을 잘 거친 상품이다.
이러한 기준들을 종합해 보면, 마른 멸치의 품질은 잡힌 시기 못지않게 어선 위에서의 초기 대응과 가공업체의 숙련도에 따라 크게 달라질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요즈음은 간편한 다시팩에 가려져 그 온전한 모습을 마주할 일이 꽤 줄어들었지만, 멸치는 여전히 우리 주방에서 많이 사용되고 있다. 특히 MSG에 대한 혐오와 멸시가 여전히 남아있는 한국의 가정식에서, 멸치는 꽤 오랫동안 요리하는 이에게 일종의 ‘도덕적인 안도감’을 주는 식재료이기도 했다.
비록 고조리서에 기록된 뼈대 있는 전통은 아니지만, 멸치는 이 시대를 살고 있는 대부분의 세대에게 집밥의 따뜻한 기억과 뗄 수 없는 우리 음식문화의 깊은 뿌리다. 아마 앞으로도 꽤 오랫동안, 멸치는 한국 음식의 확실한 특색이자 기본기로서 널리 사랑받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