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채소

by 병우

우리는 땅속에서 캐내는 채소들을 통틀어 편의상 '뿌리채소'라고 부른다. 하지만 식물학의 눈으로 보면 이들은 제각각이다. 무와 당근은 진짜 '뿌리'지만, 감자와 생강은 '줄기'이고, 양파와 마늘은 '잎'이다. 그렇지만 이들에게는 한데 묶을 수 있는 공통점이 있다. 땅속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흙을 뚫고, 영양분을 저장하고, 추위를 견디는 생존 전략을 공유한다는 점이다. 요리사의 관점에서는 함께 알아두는 것이 더 도움이 된다.


뿌리가 흙을 뚫는 법(종 구조)


뿌리는 씨앗에서 아래쪽으로 자라난다. 땅을 뚫고 내려가기 위해, 맨 아래 끝에는 단단하고 거친 뿌리골무 조직이 있다. 이 조직에서는 점액을 분비해 주변 흙을 부드럽게 만든다. 뿌리골무 위에는 세포 분열이 활발한 생장점이 있으며, 여기서 만들어진 새 세포들이 물을 흡수하며 급격히 길어지는 구간을 신장대라고 한다. 더 위쪽에는 다 자란 세포들 위주로 구성된 성숙대가 생긴다. 물관과 체관이 튼튼하게 구조를 갖추면서 심지를 이룬다. 심지는 목질로 형성되어 줄기와 연결된다.


맛과 식감의 층위(횡 구조)


뿌리의 가장 바깥쪽은 껍질이다. 흙 속 환경과 분리될 수 있는 질긴 성분이 있고, 식물에 따라 해충을 막기 위한 쓴맛 성분이나 향이 집중되어 있다. 껍질 안쪽에는 영양분 저장 조직이 있다. 세포벽이 얇아 부드럽고 물의 투과성이 좋다. 중앙에는 상대적으로 단단한 목질의 관다발이 있는데 맛은 약하고 식감은 불편하기 쉽다. 오래 익히면 섬유질이 부드러워져 먹기 편해진다. 이런 구조들은 당근, 우엉 같은 곧은 형태의 채소에서 가장 명확하게 볼 수 있다.


추위가 만드는 단맛


뿌리는 식물이 살아있는 동안 끝없이 자라는데, 땅의 온도가 내려가는 겨울이 오면 잠시 성장을 멈추고 얼지 않기 위한 준비를 한다. 저장해둔 영양소를 쪼개 저분자의 당, 아미노산, 무기질 농도를 높여 어는점을 내리는 것이다. 그래서 겨울을 버티는 중인 뿌리채소는 달다. 이런 월동은 꼭 뿌리로만 하는 것은 아니며, 양배추, 배추, 봄동, 시금치, 대파 등은 잎이나 줄기에 영양소가 집중되는 것을 이용해 재배한다.


겨울을 못 나는 뿌리채소


우리나라에 수입되기 전 태생이 따뜻한 곳인 채소의 뿌리는 겨울을 버티지 못한다. 고구마는 10도 아래만 되어도 냉해를 입어 수확 후에도 냉장보관을 하지 않는다. 생강, 토란, 야콘 등도 겨울을 버티지 못해 적어도 늦가을엔 캐내야 한다. 무와 당근은 영하 근처에서는 겨우 버티지만 더 추워지면 얼기 때문에 김장철 전에는 수확한다. 김장철은 혹한기가 오기 전에 채소들을 다룰 수 있는 마지막 기간이었던 것이다. 남부 지방은 혹한이 오지 않기 때문에 늦게 심은 제주당근, 월동무가 이듬해 봄까지 생산된다. 얼어 죽지 않을 만큼의 적당한 추위를 오랫동안 견뎌냈기에 당도를 비롯한 풍미가 가장 진하다.


혹한도 견디는 뿌리채소


아무리 추워도 언 땅 속에서조차 살아남는 뿌리도 있다. 땅이 녹으면 바로 캐서 먹는 냉이, 씀바귀, 고들빼기 등이다. 특유의 진한 향과 단맛이 이때 특히 강한 것도 그래서이다. 돼지감자, 칡, 도라지, 더덕 등도 마찬가지이나, 늦가을 월동 직전에 최대한 에너지를 비축한 것도 그 나름대로 상품성이 있다. 마늘과 양파는 겨울에 강하지만 두해살이 작물이어서 타이밍이 약간 다르다. 일단 가을에 심어 내린 뿌리로 겨울을 난 뒤, 봄부터 초여름에 집중적으로 뿌리와 줄기를 덮어버리는 두툼한 잎에 양분을 저장한다. 그 양분을 꽃을 피우는데 다 써버리기 전에 한 철 수확해서 저장해두고 먹는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숯불구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