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을 고르는 것은 요리를 시작할 때 꼭 거치는 관문 같은 것이다. 내 경우에는 잘 모르는 상태에서 선택하고 시행착오와 고생을 적당히 거친 뒤에 맞는 칼을 알아볼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얼마 전에 그 시행착오의 흔적인 수많은 칼들을 정리하면서, 칼에 대해 글을 써두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쓰기 좋다고 생각하는 칼의 특성은 최상의 날의 상태를 유지하는 데 문제가 없고 목표로 하는 작업을 하는 데 있어 편하면서도 최선의 효율을 내기에 적합한 것이다. 칼날의 유지는 날구조와 재질, 연마 방법을 알아야 하며, 편안함과 목적에 맞는지의 문제는 칼의 형태, 무게, 그리고 작업 내용에 따라 훨씬 다양한 요소와 연결된다.
날구조
칼날의 구조에서 가장 먼저 파악해야 할 것은 두께와 면의 갯수이다. 두꺼운 칼은 튼튼하고 얇은 칼은 잘 파고든다. 칼등은 두껍고 칼날은 얇은데, 그것을 일직선으로 만들면 1개의 면이 만들어지고 중간에 각을 다르게 하면 2개, 3개 면을 만들 수 있다. 그리고 이런 변화는 칼날 양쪽에 다르게 줄 수도 있다. 면이 1개이면 칼날의 각도가 가장 예리하며, 구조적으로 칼이 밀리지 않고 곧게 자를 수 있다. 하지만 이 구조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칼을 연마할 때 모든 면을 함께 연마해야 한다. 면이 늘어나면 칼날 끝의 각도가 커지며, 예리하게 파고들기보단 베고 나서 밀어내는 느낌이 강해진다. 칼날 끝쪽 면의 면적을 늘릴수록 각도는 줄일 수 있지만, 연마해야 할 양과 난이도는 올라간다. 아무리 예리한 칼을 원해도 양쪽을 다 1면으로 만들어 쓰기는 어렵고, 안쪽을 1개의 면으로 하고 바깥쪽에는 2개 면으로 만들어 쓰는 경우가 많은데, 안쪽 면에 재료가 달라붙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약간 오목함을 주어 만든 칼도 있다.
재질
전통적으로 좋은 칼의 재질은 탄소강이다. 철에 숯을 약간 섞은 것이라 생각하면 된다. 이 탄소 입자가 곱게 골고루 퍼지면 시멘트 속 모래처럼 철을 단단하게 만드는 성질이 있으며, 미세한 차이로도 단단하지만 잘 부러지거나, 약간 연하지만 연마를 자주 하면 쓰기 좋은 적당한 칼이 될 수 있다. 철을 다루는 과정에서 탄소 알갱이를 얼마나 잘게 부수어 골고루 분산시켰는지에 따라, 미세한 얇기가 되는 칼날 끝의 최종적인 예리함이 결정된다.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써보면 느껴지는 차이가 여기서 생긴다. 내가 연마를 아무리 잘 해도 애초에 만든 대장간에 따라 칼의 기본 성능이 달라지는 이유는 이 기술이 각자 다르기 때문이다.
탄소강의 단점은 녹이 스는 것이다. 현대적인 대안으로 탄소강에 크롬을 추가해 녹이 슬지 않게 하는데, 이 때 크롬은 탄소와 결합해 큰 분자를 만들기 때문에 순수 탄소강 칼날의 미세한 예리함을 유지하기 어렵다. 눈에 보이지 않는 수준에서 조금 더 울퉁불퉁해지는 것이다. 하지만 그 차이는 굉장히 섬세한 작업이 아니면 걱정할 정도가 아니며, 녹이 슬지 않음으로 인해 얻는 편리함의 이익이 압도적으로 높기 때문에 가장 많이 사용된다. 표면의 미끄러움이 강해지기 때문에 연마하기는 좀 더 어렵다.
더 좋은 재질은 꾸준히 개발되고 있다. 이미 스테인리스 스틸도 몰리브덴이나 바나듐 같은 금속을 추가하거나 공법을 바꾸어 고급화된 제품이 나오고 있다. 서로 다른 재질의 철판을 중심과 주변에 나누어 쓰기도 하는데, 칼날 쪽에 물결무늬로 여러 장의 철판을 사용한 흔적이 남는다. 하지만 무늬만 흉내낸 유사품도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연마
칼을 연마하는 방법은 많지만 현대 주방에서 가장 흔한 방법은 연마봉이나 숫돌을 이용하는 것이다. 연마봉은 칼을 쓰는 중 아무 때라도 빠르게 날을 세울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유럽의 전통이 발달한 방식인데 이 지역에서 숫돌로 칼을 갈아내는 것은 어쩌다 한번씩 전문가에게 맡겨서 하는 일이었으며, 지금도 그런 전통이 남아 개인이 숫돌로 칼을 직접 가는 경우는 거의 없다. 평평한 숫돌의 사용을 염두에 두지 않고 칼을 만들기 때문에 뒷부분을 두껍게 디자인하여 무게 조절, 안전에 의미를 둔 제품이 많다.
연마봉은 원래 평범한 철봉의 형태였으며, 미세하게 구부러진 칼날을 다시 세우는 것이 목적이다. 동그란 형태는 접촉면을 최소화하며 압력을 높여 적은 힘으로 날을 세우게 한다. 타원형 연마봉은 상대적으로 접촉면이 늘어나 과도한 압력을 방지한다. 연마봉으로 날을 세우려면 철이 너무 단단하지 않아야 한다. 일반적으로 연마봉 사용에 권장되는 칼의 경도는 58 이하이다. 상대적으로 단단한 고탄소강 칼도 함께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세라믹이나 다이아몬드 등의 소재를 이용한 연마봉이 만들어졌다. 이런 연마봉은 펴는 용도가 아니라 숫돌처럼 갈아내는 용도이다.
숫돌은 인류가 오래전부터 금속 날붙이를 만드는 데 이용해왔다. 요즘 사용하는 네모난 주방용 인조숫돌은 1960년대부터 일본에서 현재의 형태로 대중화되었는데, 연마제인 단단한 물질의 알갱이들을 점토나 수지에 넣어 굳혀 만드는 것이다. 평평한 면을 잘 유지하면 칼의 한 면을 통째로 연마할 수도 있고, 원하는 각도를 유지하며 면을 나누어 연마할 수도 있다. 경도가 낮은 칼에 적합한 연마봉과는 달리, 칼의 경도가 낮을수록 압력에 의해 미세한 날 끝이 뭉개지거나 연마된 칼날 끝에 생기는 찌꺼기가 잘 떨어지지 않아 끝날을 예리하게 연마하기 어렵다.
숫돌은 단위길이를 채우는 연마제 입자의 개수에 따라 숫자로 구분되며, 높을수록 고운 연마제가 들어 있는 셈이다. 용도에 맞추어 사용하면 된다. 연마제도 닳기 때문에, 연마력을 유지할 수 있도록 물을 함께 사용해 점차 깎고 씻으며 새 연마제가 노출되도록 설계되어 있다. 딱 적당할 때 깎여나가 낭비가 없으면서도 소리나 손끝 감각으로 연마하는 느낌이 계속 전달되는 것이 밸런스가 좋은 제품이다. 물과 갈린 숫돌이 섞이면 슬러리가 생기는데, 연마제 가루가 들어 있기 때문에 마치 치약 속에 있는 미세가루가 이빨을 닦아내듯 부드럽게 칼날을 연마하는 효과가 있다. 하지만 숫돌에 대한 직접 접촉면을 줄여서 빠른 연마에는 방해가 되므로 필요에 따라 씻거나 활용하면 된다.
칼의 디자인은 수없이 많으나, 다용도칼로 쓰이는 유형은 전통적인 요리 문화에 따라 대체로 정해져 있다. 다음의 목록은 다용도칼 중 내게 맞는 것을 고를 때 우선적으로 고려할 만한 것들이다.
길이
길수록 한번에 자를 수 있는 재료의 양이 많아진다. 길이에 맞는 큰 도마와 작업공간이 요구된다. 긴 칼은 같은 각도를 움직이는데 팔을 더 많이 움직여야 하므로 키와 팔 길이에 비해 너무 길면 몸에 무리가 생긴다.
날높이
칼이 짧고 작아질수록 자연스레 날높이도 낮아지는데, 적어도 손잡이를 쥔 주먹이 도마에 닿지 않을 정도의 높이는 확보해야 한다. 날이 높은 칼은 눕혀서 활용하기 좋다. 예를 들어 단단한 재료를 옆면으로 치거나 눌러서 으깨거나, 수평으로 칼을 움직여 포를 뜨거나, 자른 재료를 칼 위에 담아 도마에서 용기로 옮기는 동작에는 넓은 면이 유용하다.
칼끝의 위치
얇은 칼끝을 활용한 섬세한 작업을 안정적으로 하려면 칼끝이 아래를 향하는 것이 좋고, 충분한 곡선을 활용해 적은 힘으로 부드러운 칼질을 하기엔 칼끝이 높고 곡선이 확실한 것이 좋다. 칼은 베듯이 써야 힘이 안 들어가는데, 곡선 부위는 적은 움직임으로 길게 벤 것 같은 효과를 준다.
무게
장시간 이용을 염두에 둔 칼은 무게에 부담이 없어야 한다. 적당한 무게감과 밸런스도 중요하지만 그런 것은 일단 그 무게를 견딜 수 있는 힘과 기술이 전제되어야 한다. 직업으로 삼는 경우라면 적어도 천 번 정도는 무리없이 들었다 내릴 수 있는지 스스로 물어보자.
손잡이와 무게중심
손 크기에 비해 굵기가 적당해 단단하게 쥘 수 있어야 한다. 손에 땀이 많다면 나무를 찾자. 손잡이와 칼날을 함께 잡지 말고, 손잡이 중심을 잡은 상태에서 무게중심이 무너지지 않아야 한다. 평소대로 길게 잡으면 무게와 길이를 충분히 활용할 수 있으면서도 필요할 땐 약간 짧게 잡아 컨트롤에 유리하게 조절할 수 있으면 적당한 무게 중심이다. 짧게 잡아야만 쓰기 편하다면 본인에게 맞지 않는 칼이다.
요리를 시작하면서 칼을 선택할 때 꼭 생각해야 할 것은 몸에 맞는 편안함이다. 불편함은 일의 양이 늘어났을 때 신체적 부담이 되고, 쌓이면 병이 된다. 칼의 성능이 불편함을 줄여주지만, 요즘에는 아주 저질의 제품이 아니면 그런 문제가 품질 탓은 아니다. 내 몸에 잘 맞는지 확인하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 칼의 예리함을 유지하는 관리도 중요하다. 잘 드는 칼은 힘이 덜 든다. 1개씩 자를 것을 5개씩 자를 수 있고 5분 걸릴 일을 1분에 끝낼 수 있다. 오래 써도 손목과 어깨가 덜 피곤하고 더 집중할 수 있다. 힘조절이 잘되니 칼에 베일 일도 적으며, 칼에 베인 살조차 더 빨리 아문다. 물론 잘린 재료들도 세포벽이 덜 파괴되어 신선도를 오래 유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