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버리지 못하는 거지? -자칭 미니멀리스트의 고뇌

연재칼럼-8

by 오숙하

자칭 미니멀리스트로 살기 시작한 지 10년이 훌쩍 넘었다. 하지만 지금 내 책상 위에는 미처 처분하지 못하는 종이들이 쌓여있고, 스마트폰에는 지우지 못한 사진으로 인해 저장공간이 부족하다. 며칠 동안 정리를 하려고 시간을 내고 있지만 좀처럼 진전이 되지 않고 있다. 처분하지 못하는 이유를 생각해 보니, 미련과 집착인 것 같다. 병원에서 철분 부족이라는 진단을 받고 철분 섭취에 대한 안내문을 받았는데 그게 뭐라고 계속 책상 위에 두고 있었다. 아마도, 그 내용을 꼼꼼하게 숙지하고 싶지만 지금 하기는 귀찮으니 미루다 보니 계속 책상 위에 남게 되었던 것 같다. 폰 속의 사진들도 마찬가지다. 책을 읽다가 마음에 드는 부분을 꽤 많이 찍어 놓고는 언젠가 필사를 하고 정리를 해야겠다고 미뤄두는 것이다. 문득 정리에 관한 워크숍에서 들었던 한 문장이 떠오른다. 'Every clutter is a delayed decision' 즉, 정리되지 않은 물건은 보류된 결정이라는 것. 정리를 하려면 그때그때 바로바로 그 물건의 운명을 결정해 주어야 한다. 이것은 재활용함, 이것은 쓰레기통, 이 사진은 삭제, 이 사진은 지금 빨리 필사하고 삭제. 그 결정을 단 하루라도 미루면 대부분은 영원히 잊히거나, 오늘처럼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순간에 결국 찝찝함과 함께 대충 버려지고 만다. 지금 벌써 몇 시간째 사진을 정리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몇 해 전부터 매일 자기 전에 그날의 사진을 정리하고 하루를 마무리하겠다는 목표를 세워만 두고 실천을 하지 못했다. 오래전에 사둔 외장 하드에도 이제 여유 공간이 서서히 줄어들고 있다. 외장 하드를 사서 앞으로의 사진을 그냥 무지성으로 백업을 해도 되겠으나, 솔직히 이 사진들을 언제 보게 될지 알 수 없다. 백업을 하는 동시에 잊히게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가장 이상적인 방법은 매일 밤 사진을 정리하면서 꼭 저장하고 싶은 것은 블로그에 글과 함께 올리거나, 비공개 글에 사진만 저장해 두는 것이다. 이런 부지런함을 매일 발휘할 수 있을까? 이 작업이 귀찮으면 사진을 찍지 않으면 될 일이다. 언제부터 사진으로 기억을 저장해야겠다는 강박이 생긴 것일까. 눈으로 찍고 가슴으로 저장해도 사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데 말이다. 이상, 몇 시간째 폰에서 외장하드로 사진을 옮기며 지칠 대로 지친 가짜 미니멀리스트의 푸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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