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칼럼-9
동료와 직장에서의 부조리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다가 이 이야기를 책으로 써서 인세를 받고 은퇴하자는 농담이 나왔다. 깔깔 웃으면서도 그렇게 되면 정말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 속상하고, 억울했던 일들이무의미한 고통이 아니게 되기 때문이었다. 부정적이었던 경험이 예술로, 혹은 하나의 작품으로 승화될 수 있다면 인생에 낭비가 없어지고, 그 힘든 순간들을 버텼던 보람이 생길 것 같다. 그런 의미로 모든 예술가들을 동경한다. 추상화를 그리는 화가는 복잡한 내면세계를 캔버스에 어지럽게 옮겨내면서 새로운 미적 구조를 탄생시킬 수 있다. 연애에서 실패한 음악가는 실연의 아픔을 애절한 사랑노래로 승화시킨다. 영화감독, 극작가도, 자신이 직접, 간접적으로 경험했던 인생의 다양한 기쁨과 고통을 화면에 담아내어 관객의 공감을 이끌어낸다. 그들이 일상에서 필연적으로, 또 우연적으로 마주치는 장면들이 그들의 내면세계에 녹아들어 새로운 세상의 일부로 재창조된다.
그래서 난 단편 소설 작가가 되고 싶다. 긴 호흡의 장편 소설을 쓸 자신이 없기도 하지만, 단편 소설만이 가지는 그 간결성이 좋다. 반나절 혹은 찰나의 순간을 짧은 글로 묘사해 내어, 마치 유리병에 빛나는 구슬을 모아두는 것처럼 보관하는 것이다. 여러 가지 모양의 삶의 깨달음, 모순, 경험, 외로움, 비극과 희극을 사진을 찍듯
글로 포착해내고 싶다. 단편 소설가가 된다면 그런 특별한 순간들을 발견하기 위해서 일상을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게 되지 않을까. 모든 강렬한 경험이 흐르는 시간과 함께 스르륵 사라지는 대신, 짧은 글 안에 보관되어서 영원히 기억될 수 있지 않을까. 비록 현실은 비극적일지라도, 나의 작은 이야기 속에서는 정의를 구현하고 희망을 찾아낼 수 있지 않을까. 삶의 크고 작은 고통을 마주하는 게 좀 덜 괴롭게 되지 않을까? 안 좋은 일이 있을 때마다, '아, 이거 소설로 쓰면 되겠네'라고 최소한 글감을 찾아낸 것을 기뻐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그런데 이런 생각만 할 뿐이다. 글감이 없는 것은 아닌데, 아니, 직장과 개인의 영역에서 크고 작은 파도에 휩쓸리고 있는데, 그 파도가 내 원고지의 모래사장을 쓸고 지나갔다가 다시 썰물처럼 빠져나간다. 모래 위에는 어떤 자국도 남아있지 않다. 능력의 부재일까, 타이밍의 문제일까? 이래서 예술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닌가 보다. 꽃 잎처럼 바람에 흩날리는 글감을 허우적대다가 간신히 손에 잡고 나면, 바로 손아귀를 펴고 그 오묘한 색과 모양을 요모조모 따져보고 재빨리 그 아름다움을 기록해야 한다. 그 꽃 잎이 바스러지기 전에. 특별한 것과 마주한 직후에, 그 여운이 가시기 전에 빨리 써야 한다. 결국은 부지런함의 문제인가. 일상을 부지런히 탐구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자세에, 그것을 바로 묘사하고, 정리하는 부지런함을 갖고 싶다. 나의 글들이 사진 앨범처럼 특별한 순간들의 기억을 영원히 저장할 수 있는 보물함이 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