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칼럼-19
새 학기가 시작하고 반이 바뀌면서 새로운 학생들과 수업을 하고 있다. 호주에 도착하지 얼마 되지 않은 다양한 국적의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는데, 호주의 학교 생활을 좋아하는 모습을 보면 보람을 느낀다. 고맙게도 몇몇 학생들은 학교 생활의 즐거움에 대한 감사함의 기분을 나에게 작은 선물을 주면서 표현해 준다. 도화지에 스티커와 인형을 붙여서 '선생님, 사랑해요'라고 쓰고 하트 모양을 잔뜩 그려 넣은 수제 카드는 순도 높은 순수함이 듬뿍 담긴 최고의 선물이다. 받으면 사진을 찍어두고, 틈틈이 꺼내 보기도 하는데, 마땅히 자랑할 곳이 없다. 다른 교사들에게 자랑하면, 같은 학생을 가르치는데 선물을 받지 못한 경우도 있기 때문에 조심스럽다. 나도 다른 선생님들이 선물 받은 것을 자랑하는 것을 종종 듣기 때문이다. 나도 저 학생 가르치는데, 나한테는 별로 안 고마웠나 보군. 개인 취향이라는 게 있으니 당연하지만, 짧은 순간, 핑, 하고 서운함이 스치고 지나가는 건 어쩔 수가 없다. 요 몇 주 사이, 학생들이 음식도 나눠주고, 그림도 그려주는 등 소중한 선물들을 계속 받다 보니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턱까지 차올랐나 보다. 오랜만에 만난 엄마에게 속사포처럼 자랑을 쏟아냈다. 엄마는 처음에는 관심을 갖고 들어주시다가, 내 말이 길게 이어지니, 응, 응, 하며 고개를 끄덕여 주시기만 했다. 앗차, 이거 내가 제일 싫어하는 모습이다. 자기 자랑만 길게 늘어놓고 듣는 사람의 관심사와는 상관없는 이야기만 계속하는 사람들이 최악의 대화 상대라고 생각했는데, 내 모습이 바로 그랬다. 뭘 그렇게 자랑하고 싶었을까? 엄마한테 자랑해서 뭐가 좋지? 딸이 교사로서 행복하게 일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드리고 싶은 것일까? 아니면 나 자신에게, 내 일에 보람을 느끼고 있고, 승진은 못해도 학생들에게만큼은 인정받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시키려는 무의식적인 자기 위로였을까? 머릿속에서는 너무도 소중했던 선물들이, 자랑거리로 내 입 밖으로 튀어나오면서, 내 자존감을 지키는 얄팍한 도구로 전락해 버렸다. 자랑을 멈추고 입을 다물었지만 느껴지는 씁쓸함은 마음 깊숙한 곳에 남겨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