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칼럼-27
최근에 듣고 있는 오디오북에서 주인공의 딸이 학교에서 괴롭힘을 당했는데 알고 보니 사실은 학폭 가해자였다는 반전이 있었다. 주인공은 사랑스러운 자신의 딸이 그럴 리가 없다며 부정하다가, 결국 사실을 마주하고 상황을 수습하기 시작했다. 그 장면에 감정이입을 하고 있는 나 자신이 의아해서 생각해 보니, 나에게도 비슷한 경험이 있다. 바로 동거 중인 두 마리의 고양이 중 하나인 햇살이 때문에 현재 진행형으로 비슷한 감정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햇살이는 코로나시절 우리 집에 밥을 먹으러 오던 길고양이였을 때부터 귀여운 외모와 금방 골골거리며 행복을 표현하는 낙천적인 성격으로 내 마음을 사로잡은 녀석이다. 중성화 수술을 시키고 집안에 처음으로 들였을 때, 갑자기 엄청난 성량으로 골골거리면서 나에게 머리를 사정없이 비비며 날 황홀하게 만들었다. 요즘에도 내 배 위에 앉아서 꾹꾹이를 하거나, 누워있는 내 품속으로 파고들기도 한다. 아침에 일어나면 내 옆에서 새근새근 자고 있는 모습을 보여줘서, 내가 전생에 착한 일을 좀 했었나 보다, 생각하게 만든다. 얼마 전 인터넷에서 본 인생의 성공의 기준에 의하면 난 꽤 성공한 것인데, 햇살이가 안 보일 때 이름을 부르면, 어딘가에서부터 토도도독 발소리와 함께 나한테 와주기 때문이다.
개냥이는 삼대가 덕을 쌓아야(?) 영접할 수 있다던데, 이런 고양이가 나에게 와주다니 로토 당첨급의 행운이다. 하지만, 이렇게 사랑스럽고 애굣덩어리인 햇살이는 자매인 달빛이에게는 수시로 괴롭힘을 일삼는다. 두 마리는 사이가 안 좋아서 대부분의 시간을 떨어져서 보내는데, 가끔 달빛이가 내 옆에서 잠을 자거나 앉아있으려고 자리를 잡으면 햇살이가 쏜살같이 달려와서 솜방망이 펀치를 날린다. 둘이 투닥투닥 싸우는 장면을 지켜보면 늘 햇살이가 먼저 때리고 달빛이는 방어하는 상황이다. 처음에는 너무 당황스러웠다. 나한테는 예쁜 짓만 하는데, 달빛이한테는 왜 이리 못된 거야? 내가 달빛이를 예뻐하는 게 싫어서 견제하는 것도 같고, 달빛이가 자기보다 체구가 작고 소심하니, 만만하게 보고 괴롭히는 게 딱 왕따 주도자같다. 나에게 애교를 부리며 골골거리는 햇살이의 얼굴을 바라볼 때면 복잡한 심정이 된다. 이 고양이를 계속 예뻐해도 되는 건가? 이런 못된 고양이가 나한테만 잘한다고 귀여워하면 나는 뭐가 되나?
복잡한 심경이지만 어쩔 수 없다. 고양이는 훈육이 되지 않고, 나는 이 작은 생명체를 마지막까지 돌보기로 이미 약속했다. 성격이 못됐다고 이 고양이를 어디로 쫓아 보낸단 말인가. 햇살이와 달빛이를 격리시키는 것은 불가능하고, 난 이 둘과 함께 앞으로도 오랫동안 함께 하고 싶다. 내가 사랑하는 대상의 전부를 받아들이는 과정은 사람이든 동물이든 쉽지 않다. 호주 뉴스에서 정신병력이 있던 총기 살인범의 부모의 기사를 접한 적이 있다. 자신들도 돌보기 힘들어서 시설에 보냈는데, 그곳에서 탈출을 하고 범행을 저지른 것이었다. 다행히 대부분의 여론은 부모에게 책임을 묻지는 않았지만, 그들의 참담한 심정은 상상도 되지 않는다. 이 세상은 수많은 피해자를 만드는 가해자들로 가득 차있다. 그 가해자가 내가 사랑하는 사람 중 하나임을 알게 되었을 때, 즉각 사랑하는 감정을 멈출 수 있는 이들은 많지 않으리라. 다행히도 사람에게는 동물과는 달리 반성과 교화의 여지가 있는 경우가 있기도 그 희망마저 없는, 동물은 어떻게 해야 하지? 답은 정해져 있다. 오래전 봤던 일본 드라마의 제목처럼 '그래도 살아간다'. 살인범의 가족이 마주하게 된 고립된 삶에 대한 내용인데,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그냥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것뿐이다. 괴로움을 그대로 떠 안은채, 찝찝한 감정들, 피해자를 향한 미안함과 공존하는 수밖에 없다. 심성이 못된 고양이와 같이 살게 된 나는 전생에 어떤 잘못을 했길래 이런가? 팟쥐처럼 누군가를 괴롭혔었나? 씁쓸한 상상을 해본다.